중국엔 네이멍구(內蒙古), 신장(新疆), 시짱(西藏), 광시(廣西), 닝샤(寧夏) 등 모두 5개 자치구가 있다. 소수민족이 집중 거주하는 자치구 특성상 주석은 현지 소수민족 출신이, 당서기는 추진력과 장악력이 검증된 인물이 다수 포진됐다. '하나의 중국'을 내세워 정치적 혼란을 막고 내부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중국 정부의 의지가 엿보인다.
◆ 리지헝 네이멍구 자치구 당서기
리지헝(李紀恒) 당서기는 1976년 공산당 입당 이후 줄곧 자신의 고향인 광시에서 공직 생활을 했다. 2001년 광시 난닝(南寧)시 당서기를 지낸 후 2006년 윈난(雲南)성으로 이동해 2012년 성장을 거쳐 2014년 당서기에 올랐다. 그 뒤 2016년 8월 네이멍구 자치구 당서기로 부임했다. 지난 1997년 제15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44세 나이로 중앙후보위원에 선출돼 당시 가장 젊은 중앙후보위원으로 잠재력을 인정받았다.
리 당서기는 2008년 중국 윈난성 멍롄(孟連)현에서 발생한 집단폭동 사건인 ‘멍롄사건’을 적극적인 대화로 잘 수습해 지도부의 눈도장을 찍기도 했다.
‘멍롄사건’은 2008년 7월 멍롄현의 농민 400여명이 고무 제조공장에 불만을 품고 거센 시위를 벌인 사건이다. 현지 공안은 폭력으로 번지는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총격을 가했지만 시위대의 저항은 더욱 거세졌다. 결과, 마을주민 2명이 사망하고 경찰 44명이 부상당했다.
◆ 부샤오린 네이멍구 자치구 주석
부샤오린(布小林) 주석은 원리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강직한 여성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여성으로는 드물게 네이멍구 자치구 군구에 입대해 1977년부터 1980년까지 3년간 위생병으로 군 복무를 했다.
그는 1984년 베이징(北京)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지린(吉林)대에서 법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네이멍구 정부 법제국에서 오랜 기간 근무하면서 국장 자리까지 오르는 등 사법행정에 밝고 조직 장악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았다.
부 주석은 중국의 '몽고왕(蒙古王)'으로 불리는 우란푸(烏蘭夫) 전 국가부주석의 손녀로도 알려져 있다.
부 주석은 2008년 네이멍구 자치구 부주석을 거쳐 2016년 주석으로 승진해 할아버지 우란푸와 아버지 부허(布赫)에 이어 3대째 네이멍구 자치구 수장을 맡게 됐다. 중국 내 대표적인 ‘훙얼다이(紅二代·혁명 원로, 고위간부 자손)‘로 시 주석 일가와 오랜 교류가 있어 일명 '시자쥔(習家軍·시진핑 측근세력)' 세력으로 분류된다.
◆ 천취안궈 신장 자치구 당서기
허난(河南)성 핑위(平與) 출신인 천취안궈(陳全國) 당서기는 1973년 인민해방군 육군 포병연대에 자원 입대해 1977년까지 4년간 군 생활을 했다. 1981년 정저우(鄭州)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83년 허난성 주마뎬(駐馬店) 지역위원회 비서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천 당서기는 리커창(李克强) 총리의 최측근으로 분류된다. 1998년 리 총리가 허난성 성장으로 부임할 당시 부성장이었던 천 당서기는 리 총리가 2004년 랴오닝(遼寧)성 당서기로 전출되기 전까지 6년간 극진히 보좌해 돈독한 신뢰관계를 구축했다.
2011년에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위상을 지니고 있는 시짱 자치구 당서기로 5년간 부임해 민감한 소수민족 문제를 처리했다. 2016년부터는 또 다른 '화약고'인 신장 자치구로 자리를 옮겨 내부분열 예방을 위한 강경책을 펼치고 있다.
신장 자치구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지역이다. 지난 2009년 7월 200명이 사망하고 1700명이 부상하는 위구르족 독립시위가 발생한 이후, 중국 정부는 소수민족에 대한 관리감독을 꾸준히 강화했다.
천 당서기는 신장 자치구 당서기로 부임한 이후 “분리주의자들을 전쟁의 바다에 묻어 벌벌 떨게 하겠다"고 공언했다. 현재 신장 자치구의 일부 지역은 정교한 감시카메라와 철저한 검문검색으로 주민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쉐커라이티 자커얼 신장 자치구 주석
쉐커라이티 자커얼(雪克來提·扎克爾) 신장 자치구 주석은 문화대혁명 시기인 1970년부터 1972년 2년간 신장 외곽지역에서 사상교육을 받았다. 사상교육이 끝난 1972년부터는 우루무치(烏魯木齊) 지역의 한 초등학교에서 6년간 교사로 재직했다.
1980년 신장 자치구 석유지구물리연구소에서 기술원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한 이후, 2001년 우루무치시 당 부서기와 시장,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민족위원회 부주임을 거쳐 2015년 신장 자치구 주석에 올랐다.
그의 조부 카이우얼 자커얼(凯吾尔·扎克爾)은 신장 지역에서 유명한 진보주의 지식인이다. 국공 내전이 한창이던 1920년대에는 국민당 인사와 군벌 척결 활동에 적극 나섰다.
그의 아버지 압둘라 자커뤄푸(阿不都拉·扎克洛夫)도 과거 소련으로 유학한 엘리트 출신이다. 1948년 12월, 최초 현지 위구르족 소수민족 공산당원으로 선출됐고 이후 신장 자치구 교육청장과 부주석을 역임했다. 비슷한 시기에 서북(西北)군사정치위원회 주석을 역임한 시진핑의 아버지인 시중쉰(習仲勳)과 교류가 깊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 우잉제 시짱 자치구 당서기
산둥(山東)성 창이(昌邑)현 태생인 우잉제(吳英杰) 당서기는 한족 출신이지만 1974년 이후 시짱에서만 30년 넘게 공직생활을 했다. 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주석의 측근으로 후 전 주석이 시짱 자치구 당서기 재직 시, 우 당서기는 시짱 교육위원회 실무를 담당하며 인연을 맺었다.
신장 자치구와 함께 '중국의 화약고'로 불리는 시짱 자치구는 독립을 주장하는 소수민족 시위가 자주 발생하는 지역이다. 2008년 이후 중국 공산당 지배에 반대하는 무력시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지난해까지 중국의 강압 통치에 항의하며 분신한 종교인 수는 무려 120명에 달한다.
우 당서기는 취임 당시 안전하고 자치 수준이 높은 시짱을 만들겠다며 분리주의 세력을 범죄 조직으로 규정해 집중 소탕에 나섰다. 최근에는 성명을 통해 달라이 라마 추종자들도 강력히 단속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중국 당국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을 접목한 감시 시스템을 통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문장과 개인정보를 집중적으로 감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2016년 시짱과 신장 지역에 쏟아부은 안보 비용은 전년 대비 92% 급증한 91억 달러(약 9조7000억원)에 이른다.
◆ 치자라 시짱 자치구 주석
티베트족 출신인 치자라(齊紮拉) 주석은 1979년 윈난성 중뎬(中甸)현에서 청년간사로 공직생활을 시작해 윈난성에서만 30년 넘게 공직을 맡았다.
2010년에는 시짱 자치구 통일전선부 부장에 임명됐으며, 이듬해 시짱 자치구 라싸(拉薩)시 당서기에 부임돼 지역 치안 유지와 환경보호 정책을 추진했다.
2011~2017년 라싸시 당서기 재임 기간 중 치자라 주석은 CCTV와 경비인력을 대폭 늘려 치안불안 해소에 나섰고, 이를 통해 라싸시의 치안은 '2008년 유혈사태' 이전 수준으로 회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치자라 주석은 환경보호에도 남다른 관심을 보이며 적극 실천한 인물로 알려졌다. 과거 1998년 윈난성 디칭(迪慶)주 상무위원 재직 당시 그는 사냥과 벌목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명령을 내려 야생동물 생태계 보존에 앞장섰다. “은과 금으로는 푸른 강산을 살 수 없다”라는 그의 평소 지론과 일치한 행동이다.
치 주석은 최근 한 방송매체를 통해 "시짱 자치구를 오염이 없는 청정지역으로 만들어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도록 만들겠다"며 "생태환경을 충분히 보호하면서 건강산업 등 특색있는 산업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 펑칭화 광시 자치구 당서기
후베이(湖北)성 출신인 펑칭화(彭清華)는 2012년 광시 자치구 당서기에 부임했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주홍콩연락판공실에서 근무했고 지난 17, 18차 당대회에서는 중앙위원으로 선출됐다.
펑 당서기는 베이징대 철학과 79학번으로 자오러지(趙樂際) 현 중앙조직부장의 2년 후배이자, 시 주석의 관료 인맥군인 '즈장신쥔(之江新軍)'으로 분류된다. 후진타오 전 주석과 쩡칭훙(曾慶紅) 전 부주석의 신임도 두텁다. 1983년부터 공산당원 인사를 총괄하는 중앙조직부에 20년 넘게 재직하면서 중앙 지도부의 현안에도 밝다.
대외협력에 적극적인 인물로 알려졌다. 지난 2015년엔 한국을 방문해 상호 통상 및 투자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또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 중·아세안 엑스포 특별초청국 참가 등에 관한 의견도 교환했다.
베트남과 경제협력도 매우 중시하고 있다. 올해 5월부터는 광시 자치구와 베트남 북부 접경지역 2곳에서 양국이 공동 관리하는 국경 검문소가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 남중국해 영유권을 비롯한 현안문제에서 갈등을 빚어온 양국이 경제협력 확대 필요성에 공감한 결과로 풀이된다.
◆ 천우 광시 자치구 주석
천우(陳武) 주석은 광시 현지 소수민족인 장족(壯族) 출신으로 1954년 광시 자치구 충줘(崇左)시에서 태어났다. 1972년 광시 난닝시에 위치한 제1식량창고에서 노동자로 지내다 24살인 1978년 광시대학에 입학해 철학을 전공했다.
다년간의 공직생활 중 단 한 번도 광시를 떠난 적이 없는 그는 광시 자치구의 주요 직책을 두루 역임하면서 대만과의 협력도 꾸준히 추진했다. 대만 유통업체인 룬타이(润泰)와 대만 최대 반도체 업체인 폭스콘이 최근 광시에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천 주석은 도시의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서남아·동남아 지역의 유학생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다. 지난 2015년 천 주석은 대학들의 대외교류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중국-동남아 간 ‘쌍방향형' 인재를 양성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광시 자치구의 유학사업은 눈부신 속도로 발전해 현재는 동남아 학생들이 가장 많이 모인 지역이 됐다. 지난해 기준 광시 자치구의 유학생 수는 1만5000명으로 2004년 대비 4배 증가한 수치를 보였다.
◆ 스타이펑 닝샤 자치구 당서기
스타이펑(石泰峰) 당서기는 1956년생으로 리커창 총리와 베이징대 법학과 동기 동창이다.
1982년 졸업 후 곧바로 베이징대 대학원에 진학해 법학기초이론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2010년까지 25년간 중앙당교에서 법학교육을 담당한 그는 재직 기간 국가통치와 관련된 법제연구를 도맡았고, 여러 핵심 국정과제 총 책임자로 이름을 알렸다.
그가 2011년 중앙당교 부교장 재직 중 장쑤(江蘇)성 당 부서기로 깜짝 발탁된 배경에는 시진핑 주석의 두터운 신뢰가 있었다. 스 당서기는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중앙당교 부교장 기간에 당시 교장이었던 시 주석을 3년간 보좌한 인연이 있다. 장쑤성 당 부서기로 5년간 재직하다 지난해 직급상 한 단계 높은 자리인 닝샤 자치구 당서기로 승진했다.
2016년 5월에는 장쑤성 성장 신분으로 한국을 방문해 구본무 LG 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최태원 SK 회장 등 대기업 총수들을 잇달아 만나 화재를 모으기도 했다. 장쑤성은 한국기업들이 가장 많이 투자하는 중국 지역 중 하나로 삼성전자와 기아자동차, SK하이닉스 등이 현지에 공장을 세웠다.
◆ 셴후이 닝샤 자치구 주석
셴후이(咸輝) 주석은 간쑤(甘肅)성 딩시(定西)현 출신으로 대학 졸업 후 간쑤 지역에서만 30년 넘게 공직생활을 했다. 통전부와 조직부 등 핵심보직을 두루 거쳐 2008년에는 성 적십자회 회장을 역임했다. 간쑤성 재직 기간 중 복지와 민생, 의료체계 개선에 많은 신경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셴 주석의 민생에 대한 관심은 최근 발생한 사건사고에서 두드러진다. 지난 2016년 9월 닝샤 자치구 스주이산(石嘴山)시에서 탄광 폭발 사고가 발생하자 그는 현지 책임자들보다 먼저 현장에 도착해 지휘를 책임졌다. 공안, 소방, 의료진으로 구성된 긴급대응반을 꾸려 적극적으로 대응해 현지 언론의 찬사를 받았다.
2007년 간쑤성 부성장 재직 당시 셴 주석은 민족·종교·법제 분야의 개혁방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통솔력과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그는 75개 지역에 탈빈곤을 위한 맞춤형 금융지원 정책을 실시하는 등 간쑤성의 빈곤인구 감소에 큰 공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닝샤는 간쑤와 더불어 중국 서북지역의 대표 빈곤지역이다. 셴 주석은 2016년 닝샤 자치구 주석 취임 후 자신이 간쑤에서 추진한 탈빈곤 정책을 바탕으로 닝샤의 모든 빈곤인구를 구제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