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리운전기사가 왕복 6차선 한 가운데 술을 마신 운전자를 두고 도망갔다. 운전자가 사고를 우려해 도로변으로 차를 옮겼는데 마침 경찰의 음주단속으로 면허가 취소됐다. 이런 경우 경찰의 처분은 정당할까, 아닐까.
서울지방경찰청은 지난 2012년 12월 22일 오후 9시 50분 경 혈중알코농도 0.126%로 술에 취한 상태에서 승용차를 운전한 혐의로 김영민(가명)씨의 제2종 보통 자동차 운전면허를 취소했다. 김씨의 직업은 배송담당기사. 최근 15년간 교통법규를 위반한 사실도, 음주운전을 한 경력도 없다.
김씨는 교통흐름 방해 및 사고발생을 우려해 3차로 도로변까지 약 7~8m 승용차를 운전했다. 이후 차에서 내려 다른 대리운전기사를 물색했다. 그러나 김씨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던 대리운전기사의 신고로 결국 경찰에 음주운전 사실이 적발됐다. 경찰은 김씨의 혈줄알콜농도 0.126%는 면허취소 수치에 달한다며 그의 면허를 취소했다. 경찰의 처분이 다소 가혹한 것은 아닐까.
결론은 yes다. 서울행정법원은 서울지방경찰청이 김씨에게 내린 제2종 보통 자동차운전면허취소 처분은 부당하다며 면허취소처분의 취소와 함께 소송비용 부담을 주문했다.
이정훈 판사는 판결문에서 “원고의 음주운전 동기 및 경위에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고 원고의 생계수단이 운전면허인 점을 감안했다”며 “원고가 입을 불이익이 공익(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 폐해 방지)목적 보다 더 커 재량권 남용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직업이 배송기사라 운전이 생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김씨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쟁점이 됐던 긴급피난행위에 대한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긴급피난 행위는 형법 제21조에 등장하는 개념이다.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는 주된 내용이다. 이 판사는 “원고의 음주운전 행위가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급박한 위난을 피하기 위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고,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떠한 행위를 긴급피난행위로 볼 것인지에 대한 해석은 재판부마다 다르다. 앞서 도로 한 가운데서 운전자를 버리고 간 대리운전기사를 대신해 음주운전을 한 40대 남성에게 서울남부지법은 '긴급피난에 해당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해당 분야 전문가인 신상훈 변호사는 "긴급피난행위의 경우 객관적 기준이 없고 판사의 재량에 의한 판단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며 "자연재해로 인한 불가피한 사태가 아니라 음주운전, 특히 도심지에서 발생한 음주운전으로 인한 긴급피난 행위는 법원에서 인정받기 매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자동차로 인한 긴급피난행위의 경우에는 차량 통행이 많고 사건 장소가 위험했는지, 운전자가 처한 객관적 상황은 어땠는지, 이후 대처 방법은 적절했는지, 이동거리는 얼마였는 지 등 다양한 상황이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