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176] 토르구트는 왜 볼가강으로 갔나? ①

2018-02-21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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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러시아의 칼미크공화국

[사진 = 칼미크 공화국]

중앙아시아와 러시아에 걸쳐 있는 카스피해(Caspian Sea)의 북쪽 끝에 보면 아스트라한(Astrakhan:Астрахан)이라는 도시가 있다. 볼가강이 카스피해로 흘러드는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도시다. 바로 카자흐스탄 서쪽 끝 국경선에 인접해 있다. 이 도시는 몽골과 인연이 깊다.
 

[사진 = 아스트라한]

아스트라한은 13세기 킵차크한국 지배당시 몽골인들에 의해 건설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킵차크한국이 무너지면서 생겨난 아스트라 한국의 수도이기도 했다. 거기서 약간 서쪽으로 옐리스타(Elista:Элиста)라는 작은 도시가 눈에 들어온다. 그 도시가 러시아 연방 안에서 칼미크(Kalmuk:Kалмык) 또는 칼묵이라고 부르는 공화국의 수도다.
 

[사진 = 칼미크 공화국 국기]

카스피해 북부 볼가강 서쪽의 저지대에 위치한 칼미크공화국에 살고 있는 사람은 옐리스타의 10만 명을 포함해 30만 명 남짓, 그 가운데 절반을 조금 넘는 54% 전후가 칼미크 인들이다. 러시아인들이 그 다음으로 40%에 육박한다. 특이한 것은 여기에 사는 고려인들도 천 5백 명 전후에 이른다는 점이다.

칼미크인들은 과거 오이라트 부족 출신이기 때문에 칼미크는 오이라트를 부르는 다른 명칭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칼미크인 생활, 몽골인과 비슷
옐리스타 주변 평원 지대에서 살고 있는 칼미크인들은 몽골 초원의 유목민들과 비슷한 모습으로 비슷한 생활을 하면서 살아간다. 생김새가 몽골인들과 같은 유목민들이 이동 천막인 게르에서 살면서 양과 소 그리고 낙타 등 가축을 기른다.
 

[사진 = 칼미크 어린이들]

물론 칼미크인들 중에는 농사를 짓는 농부도, 고기를 잡는 어부도 있다. 몽골 고원에서 무려 3천 Km 이상 떨어진 러시아의 영토 안에서 살고 있는 이들은 몽골인들과 마찬가지로 과거 몽골인 유목민의 전통과 관습을 많은 부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사진 = 샤키야무니 황금사원]

몽골 초원 곳곳에 보이는 서낭당과 같은 돌무더기 오보 역시 이 지역에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칼미크인들은 몽골과 마찬가지로 티베트 불교를 믿고 있다. 그래서 칼미크 곳곳에서 티베트 불교 사원을 쉽게 볼 수 있다. 지난 2005년에는 옐리스타에 ‘샤키아무니 부처의 금빛 사원‘이 세워졌다.
 

[사진 = 샤키야무니 불상]

샤키아무니(Sakyamuni)는 석가모니의 산스크리트 이름이다. 유럽과 러시아에서 가장 큰 티베트 불교사원 가운데 하나다. 이 사원은 칼미크를 방문했던 달라이 라마 14세가 축복한 자리에 세워졌다. 여러 면에서 보면 칼미크는 러시아 속의 몽골이라고 해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실제로 러시아 문학 속에서 칼미크는 ‘러시아 속의 작은 동양’으로 그려지고 있다. 특히 러시아의 대문호 알렉산드르 푸시킨(Aleksandr Pushkin)은 그의 작품 속에서 칼미크인들을 러시아에서 동양 문화를 유지하고 있는 몽골족의 후예들로 소개하고 있다.
 

[사진 = 칼미크 소녀들]

"안녕! 친절한 칼미크의 여인이여! 당신의 눈은 물론 동양적이고 코도 평평하고 이마도 넓다. 당신의 시선과 야성적인 아름다움이 나의 이성과 가슴을 매혹하는구나!!"

푸쉬킨의 '칼미크의 여인'이라는 시의 한부분이다.

▶‘남아 있는 사람들’ 칼미크

[사진 = 칼미크인들]

이들 칼미크인들이 러시아 땅에 살아온 세월은 무려 370여 년이나 된다. 그 오랜 세월동안 그들은 러시아인의 생활 속에 많이 동화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몽골인의 전통을 대부분 그대로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종교도 기독교인 러시아 정교로 개종할 것을 여러 차례 강요당했다.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대신 티베트 불교를 지켰다. 그래서 엘리스타 넓은 들판에 세워진 거대한 티베트 불교 사원을 이들은 민족정신의 본산지로 여기고 있다. 칼미크라는 말은 ‘남은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말은 ‘남아 있다’는 돌궐어 ‘카르마크’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과거 이 지역에 살던 많은 동족인들이 옛 조상이 살았던 지역으로 되돌아갔지만 미처 돌아가지 못하고 러시아 땅에 남은 사람이 칼미크인들이다. 즉 몽골로 돌아가지 못하고 러시아 땅에서 남아 사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이들 종족의 이름에 담은 것이다.

▶칼미크인은 토르구트의 후손
이들은 러시아 땅에 남아 사는 동안 많은 고통의 세월을 보냈다. 20세기 혁명과 내전을 거치는 동안 자치구가 됐던 칼미크는 1,935년에는 자치공화국으로 승격됐다. 이 도시에 살던 칼미크인들은 1,943년 히틀러의 나치 세력과 내통했다는 누명을 쓰고 스탈린에 의해 시베리아와 우랄 등지로 강제 추방된다.

이후 이 지역에 러시아인들이 대거 이주하면서 도시이름도 스쩨프노이(Степной)로 바뀌었다. 1,957년이 돼서야 칼미크인들의 귀환이 허용되면서 이들은 다시 볼가강변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도시 이름도 다시 옐리스타로 환원되고 자치공화국도 부활됐다. 이들이 바로 17세기 초 오이라트 4개 주요부족 가운데 하나였던 토르구트의 후손들이다.

▶케레이트 옹칸의 후손들
토르구트라는 말은 ‘호위’ ‘위병’를 나타내는 돌궐어 ‘토르가구’의 복수형으로 알려져 있다. 이 토르구트 부족은 지금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 근처에 툴 강변에 자리 잡았던 케레이트 옹칸의 후손들이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 근처에 근거지를 두고 헨티 산맥과 항가이 산맥 사이의 지역을 다스리면서 결과적으로 칭기스칸의 등장을 도왔던 옹칸을 기억할 것이다. 그 후손들이 서쪽으로 물러나 형성한 부족이 토르구트다.

할하의 알탄 칸이 오이라트지역을 지배하면서 오이라트의 초로스 부족을 서쪽으로 밀어냈다. 자연적으로 토르구트 역시 더 서쪽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볼가강으로 떠난 토르구트

[사진 = 토르구트 이주로]

17세기 초 당시 토르구트의 수령은 코 오르로크라는 인물이었다. 그는 알탄 칸이 오이라트를 장악했을 때부터 오이라트 지역을 버리고 다른 곳에다 새 삶의 터전을 마련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사진 = 우스투르트 평원(카스피해와 아랄해 사이)]

1,610년부터 코 오르로크는 러시아 지역의 목초지를 노리고 정찰대를 아랄해와 카스피해 사이의 엠바강(Emba River) 유역까지 보냈었다.

3년 뒤에는 4천명의 선발대가 엠바강과 우랄강(Ural River)을 건너 볼가강 유역까지 진출했다. 1,623년 1대 알탄 칸이 살해된 뒤 호쇼트부의 재산 분배를 둘러싼 분쟁이 오이라트 전 지역으로 번져가자 코 오르로크는 그 땅을 떠나기로 했다. 목적지는 미리 정찰해 두었던 카스피해 북부의 볼가강 유역이었다.

[사진 = 카자흐 초원 ]

1,628년 토르구트 부족을 중심으로 일부 호쇼트와 도르베트인들이 포함된 5만여 명의 오이라트인들은 해가 지는 서쪽 방향으로 대장정을 시작했다. 이들은 이동 도중에 마주친 카자흐와 여러 타타르 종족 등을 정복하고 1,630년 마침내 목적지인 볼가 강변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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