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백 장관 "더 소리내세요, 뒤는 여가부가 맡겠습니다"

2018-02-12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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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인터뷰

사회 각층에서 뻗어나오는 #미투 용기 응원

여성들의 용기 헛되지 않도록…철저한 대응 시스템 구축

가족의 형태 다양화, 국가의 보육책임은 당연한 의무

내 역할은 '시어머니 장관'…각 부처에 '성평등 의식' 녹이겠다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 8일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미투 운동을 계기로 한국 사회가 한단계 더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성희롱, 성폭력에 둔감했던 한국사회가 사회 각계각층에서 터져나오는 '미투' 고발을 계기로 젠더 문제에 대해 한 단계 성숙해졌다고 본다. 이제 이 여성들의 용기가 헛되지 않도록 여가부가 든든한 방어막을 구축하겠다.”

지난 8일 서울정부청사 집무실에서 만난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은 “서지현 검사의 ‘미투’ 고발은 사회적으로 굉장한 예방 효과가 있다”며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권력기관의 젠더 감수성 부재’를 문제로 받아들이고, 개선을 요구하는 움직임 자체가 사회적 가치가 변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정 장관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어느 때보다 성평등에 대한 문제가 국정 운영의 중심에 서 있다”며 “이러한 국가적, 국민적 관심을 토대로 여가부가 한국사회의 젠더의식을 한 단계 끌어올리겠다”고 강조했다.

◆"소리치는 여성의 용기, 매우 소중해···여가부가 재발 막겠다"

그는 지난해 7월 여가부 장관으로 취임해 7개월 차에 접어들고 있다. 서울대학교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후 독일 보훔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약 30년간 대학교수이자 여성운동가로 왕성한 활동을 펼쳐왔다. 열혈 여성시민운동가인 그를 학계에선 ‘골수 페미니스트’라고 부른다. 그럼에도 스스로 '미투'를 외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그는 “돌이켜보면 교수로서, 운동가로서 많은 성차별을 겪었던 것 같다”며 “젊었을 때는 성희롱, 성차별인지 몰랐고, 사회에 적응한 뒤에는 신고할 용기를 못냈다. 대부분 참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때문에 지금 소리치는 여성의 목소리가 매우 고맙고, 대단하다고 느낀다”며 “이들의 노력과 용기가 ‘역시 말해봐야 소용없어’라는 좌절로 향하지 않도록 철저한 사후관리를 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여가부는 직장 내 성희롱, 성폭력 발생시 사후관리를 지원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방침이다. 정 장관은 “서 검사처럼 용감한 피해자들이 여기저기서 터저나오고 있는데 폭로에 준하는 대응시스템은 없다”며 “밖으로 드러나는 피해자들을 어떻게 보호할 건지, 고발로 인한 직장 내 2차 피해는 어떻게 막을 건지 등 피해자들의 요구를 구체화해서 이를 정책으로 전환하는 역할에 여가부가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여가부로 관련 고발이 끊이질 않아 직원들이 새벽 2시까지 야근하는 경우가 많다”며 “인력과 예산이 한정된데다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지만 우리 사회가 처음 겪는 일인 만큼 제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에 기분좋은 부담감으로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각 부처에 성평등 관점을 녹여내는 게 여가부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사진= 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각 부처 '시어머니' 자처···"모든 정책에 성평등 관점, 녹아들게 할 것"

올해 여가부는 '공공부문 대표성 정책'과 '성별영향평가' 구축에 방점을 찍고 있다. 지난해 말 ‘공공부문 여성대표성 제고' 발표를 통해 올해 고위공무원의 여성비율을 6.5%로 늘리고, 공공기관 및 국립대 교수, 교장·교감의 여성비율을 각각 13.4%, 16.5%, 39.9%씩 맞추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군과 경찰 등의 여성 간부도 각각 6.2%, 12%로 높일 예정이다.

정 장관은 "여성대표성 제고계획은 사실 매년 있던 얘기지만 올해부터 각 부처별, 기관별로 목표량을 할당한 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며 "대통령의 의지가 매우 확고하고, (우리도) 연도별 이행력을 확실하게 점검해 인센티브&페널티를 부여할 계획이라 과거와는 확실하게 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행력이 기대 이하인 부처에 대한 페널티도 고민해놨다. 그는 “실효성 있게 정착되려면 부처별로 상벌 기준을 확고하게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인센티브는 국·과장급 교육훈련 및 국제기구 고용휴직 인원 증원 등을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페널티에 대해서는 "공무원 해외파견 연수 비중을 줄이거나, 예산 삭감, 해외출장 제한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오고 있다”며 “각 부처와의 협의가 필요한 부분이라 고민 중”이라고 덧붙였다.

사실 여가부는 인력과 예산이 가장 적은 부처 가운데 하나다. 모자·청소년 보육업무는 복지부와, 성폭력 및 가정폭력은 경찰 및 법무부, 여성의 근로문제는 고용부 등과 연계되어 있다. 정 장관은 “여가부의 업무는 태생적으로 각 부처와 중복될 수밖에 없다"며 "그러나 어차피 모든 젠더 문제는 중첩되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실 여성의 지위향상이나 성평등은 여가부에서 하는 게 아니다. 각 부처가 성평등 정책을 제대로 녹여내고 있는지 감독하고, 이를 지원하는 게 여가부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부처 장관님들을 뵐 때마다 (제가) 하도 시어머니처험 ‘이거 해라 저거 해라’하니까 민망하긴 하지만 이런 역할을 자처해야 각 부처에 성평등 관점이 제대로 녹아들어 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올해는 성별영향분석, 고위공직자의 성평등 교육 독려, 대학의 성평등 교육 등에 더욱 집중할 계획이다. 정 장관은 "다른 부처들은 맘모스 부서이기 때문에 이런 세세한 곳까지 신경쓰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여가부 같은 중간역할을 하는 부처가 있기 때문에 다양한 민·관 거버넌스를 강화할 수 있고, 이는 새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부처 간의 소통, 국민과의 호흡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보육은 국가의 책임···다양해진 가족의 형태, 맞춤 서비스 제공이 정부의 역할

정 장관은 올해 한부모 및 청소년 한부모 가정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도 피력했다. 그는 “가족구조가 10년 사이에 너무 다양해졌다”며 “한부모 가정, 다문화 가족, 청소년 한부모, 미혼모 지원 등 다양한 가족들이 필요로 하는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고 했다. 특히 다문화 가족과 청소년 한부모, 미혼모를 지원하는 사업은 국가 미래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굉징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정 장관은 “올해와 내년 사이에 청소년, 한부모 지원 사업이 대폭 강화될 것”이라며 “청소년 한부모 돌봄 서비스를 통해 이들이 아이를 기관에 맡기고 공부를 한 후, 직업훈련까지 마칠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청소년 한부모 가정에 임대아파트를 공급하는 방안도 고민 중이다.

그는 “그렇다고 정부가 무조건 퍼주기 지원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라며 “청소년이든 한부모든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돕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처럼 사회적 약자를 정부의 정책 지원 대상자로만 생각하는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며 “보육 문제를 국가가 일정 부분 책임지되, 정책의 기본 원칙은 ‘당사자 주의’”라고 강조했다.

국가의 보육 책임도 강조했다. 정 장관은 “국가가 아이 보육의 어려움을 함께 감당해야지 각 가정, 특히 여성 혼자 '독박육아'와 같이 이를 감당하라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여가부가 지원하고 있는 공동육아나눔터는 영국, 유럽 등 서구에도 없는 보육시스템”이라고 홍보했다.

그는 “그동안 아이돌봄 서비스의 큰 문제는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치”였다며 “올해부터 일대 다(多)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를 통해 공급 부족 문제도 해결하고, 서로 몰랐던 2~3곳 가정을 연결해 공동체성을 살리는 가교 역할도 할 것”이라며 “관계 부처와 연계해 퇴직교사의 재능기부나 초등생(지역사회 상황에 따라 중등생까지) 돌봄까지도 해결하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정 장관은 “중앙정부가 획일화된 보육모델을 만들어 보급하는 것보다 지자체 상황, 각 지역사회 공동체와 결합한 다양한 모델을 자체적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각 지역의 현실을 잘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여가부 직원들이 현장도 더욱 많이 다니고, 초등교사 등 관계자들과 소통도 더 많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최저임금인상이 여성 저임금노동자의 피해로 이어지지 않도록 관계부처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하겠다"고 말했다. [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최저임금 및 디지털 성범죄 모니터링 강화할 것"

최저임금인상이 여성 저임금 노동자의 피해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도 과제다. 실제 통계적으로 여성임금 근로자 4명중 1명은 최저임금 노동자에 해당된다. 

그는 "최저임금이 인상된 후 여성들이 일자리를 잃게 될까 하는 걱정으로 현장방문을 참 많이했다”며 "일자리 감축, 계약기간 줄이기, 일자리 질저하 등 많은 우려가 있었지만 여성 노동계에서는 대체적으로 이를 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장대책반 등을 구성해 근로현장의 최저임금 인상 회피실태를 점검하고 제도 보완을 위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정 장관 취임 후 디지털 성폭력 대처를 위한 대책도 강화됐다. 그는 “디지털 성폭력의 가장 큰 문제는 영상을 내리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또 내리는 과정에서 동영상이 더욱 확산되는 것”이라며 “법무부, 방통위 등과 협의해 관련 범죄에 대해 엄정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몰카 범죄는 대통령도 대책을 지시할 만큼 심각한 문제다.

우선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를 위한 '상담-삭제-법률지원' 등 원스톱 서비스를 마련한다. 피해 영상이 발견되면 상담부터 삭제, 법률적 대응 등을 위한 비용과 절차안내를 여가부가 담당한다. 이를 위해 올해 관련예산도 처음 확보했다.

정 장관은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영상을 발견하는 즉시 삭제해주는 것”이라며 “삭제위탁업무도 여가부에서 선정한 공신력 있는 기관을 통해서 진행되게 할 것이며, 관련 비용은 여가부에서 우선 지원한 뒤 가해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피해자가 소송을 원하는 경우 법률상담도 여가부가 지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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