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포커스] ‘귀 닫은’ CJ대한통운

2018-01-23 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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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선 생활경제부 차장]

“(딩동~) 택배 왔습니다. CJ대한통운입니다. 밤늦게 죄송해요.”

고단한 얼굴의 택배기사는 밤 10시가 다 돼 물건을 전하며 미안하다는 말부터 했다. 낡은 등산화는 흙투성이고 한겨울인데도 이마엔 땀이 맺혀 있다. 아침 7시부터 시작, 매일 할당된 물량 배송을 끝내지 못하면 그에게 퇴근이란 없다. 매일 집에서 편히 택배상자를 받는 내게 뭐가 미안하단 말인가.

고된 노동 끝에 받아든 그의 한 달 수입은 차량유지비와 세금을 제하면 250만~300만원이다. 무거운 물건을 배송하다 다치기 일쑤지만, 산재보험 가입자가 거의 없어 대다수는 본인 부담으로 치료한다. 눈길에 발 한번 삐끗하면 하루 배송은 공친 셈. 그런데 이들의 처우는 우리가 믿고 찾는 택배회사에서 책임질까. 그렇지 않다.

언뜻 우리는 택배기사를 택배회사에 고용된 ‘근로자’로 여기지만, 이들은 ‘사용자(택배회사)’와 근로계약이 아닌 용역·도급·위탁 계약을 맺은 ‘자영업자(사업자)’, 즉  ‘특수형태근로자’로 분류된다. 현행법상 택배기사 외에 보험설계사, 학습지교사 등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이들은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없었다. 그러니 택배회사도 택배기사 개인의 근무여건, 처우개선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러다 지난해 11월 택배기사들이 규합해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이하 택배노조)’을 출범시켰다. 고용노동부는 2개월간 검토 끝에 이들이 노조법상 근로자에 해당된다고 판단, 노조설립 신고증을 교부했다. 고용부가 이들을 법적 노조로 인정한 것은 택배사(원청)-택배대리점(하청)-택배기사로 이어지는 계약이 겉으론 ‘용역·도급·위탁 계약’이나, 그 실체는 ‘사용종속관계’와 유사하다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노조법상 ‘근로자성’을 인정, 택배기사들이 처음 단체교섭권을 주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법적 노조로 인정받은 택배노조는 즉각 국내 1위 업체인 CJ대한통운 본사 앞으로 달려가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하지만 국내 택배시장 점유율 46%를 차지하는 CJ대한통운은 ‘묵묵부답’이다. CJ가 교섭에 응하면 한진·롯데 등 다른 택배사들도 잇달아 노조 요구에 응해야 하는 터라, 업계는 그저 조용히 숨 죽이고 있을 뿐이다.

CJ대한통운이 노조 요구에 귀를 막고 있는 것은 정부가 인정한 택배노조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회사 측은 택배기사가 사정상 일을 못해 알바 등 대체인력을 쓰는 ‘제3자 업무대체 가능성’ 때문에 노조로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고용부가 이미 검토를 끝낸 사안이라, CJ대한통운의 ‘시간 끌기’라는 게 노조 측 주장이다.

앞서 파리바게뜨(사용자 파리크라상)는 제조기사(제빵기사)를 ‘직접 고용’하라는 고용부 명령에 순응했다. 정부의 과태료 엄포가 있었지만, 파리바게뜨는 시정명령 4개월 만에 양대 노총과 원만한 합의를 도출해 사회적으로 큰 박수를 받았다. 이를 통해 이제 국민 대다수는 대기업이 다소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원청이 노동자를 책임져야 함을 시대정신으로 여기게 됐다.

하지만 CJ대한통운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고 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혜안으로 2011년 대한통운을 인수·합병(M&A)한 CJ대한통운은 명실상부한 국내 1위 ‘택배 공룡’으로 급성장했다. 박근태 CJ대한통운 사장은 3년 내 글로벌 톱5 달성이 목표라고 말한다.

이런 큰 비전은 전국에서 밤낮없이 뛰고 있는 수만명의 택배기사의 땀과 눈물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CJ대한통운이 언제까지 이런 택배기사들의 외침을 듣고도 계속 모른 체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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