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을 향해 한·미 연합군사훈련 연기 카드를 꺼내들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9일 서울에서 강릉으로 향하는 대통령 전용 고속열차 안에서 평창동계올림픽 주관 방송사인 미국 NBC와의 인터뷰를 통해 내년 초 평창동계올림픽·패럴림픽 때까지 한·미 군사훈련을 연기할 수 있다는 입장을 확인하고 이를 미국 정부에 제안했음을 공개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이 평창올림픽 기간까지 도발을 멈추면 올림픽의 안전한 개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미국과 북한 간, 한국과 북한 간에 서로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도 조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그렇게 되면 한·미 양국도 올림픽 기간에 예정돼 있는 합동군사훈련을 연기하는 문제를 검토할 수 있다"며 "이미 나는 미국 측에 그런 제안을 했고 미국 측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것은 오로지 북한에 달려 있는 문제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 미국에 평창동계올림픽 기간 한·미연합훈련의 연기를 요청했다고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 대통령이 평창동계올림픽 기간 한·미 군사훈련의 연기를 미국 측에 제안한 것은 지난달 유엔총회에서 평창동계올림픽 휴전결의가 채택된 것처럼 올림픽의 안전 개최를 위해 북한을 자극하고 군사적 긴장을 유발할 수 있는 한·미군사훈련을 올림픽 이후로 연기하자는 취지에서 비롯됐다.
또 문 대통령의 제안은 평창동계올림픽을 평화 올림픽으로 치르기 위해 중국의 대북정책 외교 전략인 쌍중단(雙中斷)을 한시적으로 적용해보겠다는 뜻을 담은 것으로 해석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지난 방중 때 시진핑 국가주석과 이같은 내용에 대해 교감을 나눈 사실이 있느냐”는 질문에 “문 대통령과 시 주석은 한·미관계 등 전체적인 정세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고, 문 대통령은 ‘앞으로 3개월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다만, 중국이 북핵‧미사일 해법으로 제시해온 쌍중단을 전적으로 수용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은 평창동계올림픽을 매개로 북한의 거듭된 도발로 극도로 긴장된 한반도 정세를 이완하고 유화적 남북관계를 비롯해 북·미 간 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전략적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일찌감치 '쌍중단' 방식의 대북접근을 진행할 수 있음을 우회적으로 내비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9일 방영된 싱가포르 채널뉴스아시아(CNA)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핵과 미사일 도발을 중단하고 대화의 장으로 나온다면 1단계로 핵 동결을 위해서, 다음 단계로는 북핵의 완전한 폐기를 위해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상응한 조치를 협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방중 때 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가 남북관계 개선과 동북아 긴장 완화에 기여할 것으로 보고 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중국이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만일 북한이 이에 호응해 추가도발을 유예하고 나아가 북한 선수단이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한다면 한반도 정세의 흐름이 대화국면으로 넘어가는 중요한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제안이 미국이 북한과 대화 국면으로 나아가도록 명분을 주는 매개가 될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한·미연합훈련 한시적 중단'이라는 제안에 미국으로서도 명분상으로나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연례훈련의 파트너 국가인 미국이 자국 선수단도 참여하는 행사라는 점에서 한반도 긴장완화가 긴요하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북한으로서도 한·미 군사훈련이 연기된다면 이를 명분으로 올림픽기간 국제사회의 비난을 살 우려가 높은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또 평창올림픽 기간까지 북한이 도발을 자제하고 한·미가 군사훈련을 연기하기로 할 경우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 가능성은 한층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한반도 정세 전반이 이완되면서 북·미가 대화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은 북한이 평창올림픽 기간까지 핵·미사일 도발을 동결한다면 이를 직접 대화를 위한 신호로 간주하고 적극적 관여정책을 펼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하지만 핵보유국임을 주장하며 추가도발을 예고하고 있는 북한이 이같은 제안을 무시하고, 평창올핌픽 기간 내 도발을 감행할 경우 문 대통령의 전략적 승부수는 무위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미연합훈련 연기를 놓고 한·미 간 정교한 사전 조율이 없었을 경우 ‘파열음’이 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결국 공은 북한으로 넘겨졌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북한이 추가 도발을 감행한다면 내년 초 평창동계올림픽 기간까지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연기하는 문제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재로서는 한·미 합동군사훈련의 연기만을 고려할 뿐, 축소는 검토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