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예산안의 최대 쟁점이었던 '법인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이 2018년도 예산안과 함께 5일 국회의 문턱을 간신히 넘겼다. 막판까지 자유한국당이 반대하면서 표결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재석인원 중 과반을 넘겨 결국 통과됐다. 여야는 '과세표준 3000억원 초과분' 구간을 신설하고, 여기에 적용되는 최고세율을 현행 22%에서 25%로 올렸다.
법인세 인상에 따른 추가 세수 추정액은 2조 3000억원이다. 여기에 연구개발(R&D)과 안전시설 등에 대한 투자세액 공제 축소, 대기업 이월결손금 공제한도 하향 조정 등 '사실상' 법인세 인상과 마찬가지인 세법 개정안들도 통과되면서 최고세율 25%에 해당하는 기업들의 세 부담은 3조원 이상 가중될 전망이다.
대기업의 세 부담을 늘려 세수를 확보하고 양극화도 줄여보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지만, 시행과정에서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는 법인세를 낮추는 추세인 데 반해 우리나라만 '역주행'으로 인상을 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수출 대기업들의 해외 이탈이 가속하고, 우리 기업의 경쟁력이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법인세 최고세율 대상인 과표 3000억원 초과 기업은 77곳이다. 대부분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해외기업들과 경쟁하는 수출 대기업이다.
당장 미국은 지난 2일(현지시간) 현행 35%인 법인세 최고세율을 20%까지 내리는 '세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시행을 목전에 두고 있다. OECD 회원국 가운데 최고치에서 최저치로 내려가는 셈이다.
일본은 투자 등에 적극적인 기업에 대한 실효 법인세율을 현재 29.97%에서 20% 수준으로 경감하기로 한 데 이어 사물인터넷(IoT)·인공지능(AI) 등 혁신 기술에 투자한 기업은 실질 부담을 20%까지 대폭 낮출 방침이다. 영국은 지난 10년간 법인세율을 30%에서 19%까지 인하했다. 프랑스는 33.3%에서 향후 5년간 25%로 낮출 예정이다. 홍콩도 16.5%에서 10%로 낮추기로 했다.
OECD 평균 법인세율은 22.7%로 1985년 39.3%에서 16.6%p 감소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많은 나라에서 자국 경제 및 재정건전성의 빠른 회복을 지원하기 위해 법인세율을 조정했다. 우리나라도 같은 기간 동안 세율이 33%에서 22%로 11%p 감소했지만 OECD 국가와 비교했을 때 세율감소 정도가 여전히 작은 편이다.
한국은 그동안 법인세율을 계속 인하해왔고, 국제적으로도 법인세를 인하하는 것이 큰 흐름이므로 다국적 자본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법인세율을 낮은 수준으로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조세소위'서 지속적 문제 제기
법인세 인상에 따른 문제점에 대해선 그동안 소관 상임위인 기획재정위원회 소위원회에서 지속해서 다뤄졌다.
지난달 22일 조세소위는 법인세율 인상안을 처음 심의했다. 당시 우리나라 대기업이 주요 경쟁국 업체보다 법인세를 많이 내고 있는데, 세 부담까지 커지면 경쟁력을 잃게 된다는 우려가 잇따라 제기됐다.
특히 자유한국당은 '핀셋 증세'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며 초고소득에 해당하는 기업을 대변했다. 이현재 한국당 의원은 "세율 인상으로 영향을 받는 120개 기업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에 기여하는 부분이 얼마나 큰가"라면서 "법인세를 인상하면 소비자에게 세금 부담이 이전되는 문제가 있고 기업이 해외로 탈주하는 문제도 생긴다. 법인세라는 게 외국기업이 국내에 들어올 때도 경제 활성화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법인세 인상에 대한 이유로 양극화 해소를 이야기하는데, 이렇게 시끄럽게 해서 받는 돈이 2조5000억원 밖에 안 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같은 당 이종구 의원 역시 수출기업의 부담이 악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의원은 "기업이 활동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법인세, 상속세 내려서 너도나도 경쟁적으로 뛰고 있다. 일본, 영국, 미국 다 내린다. 특히, 중국이 우리나라 반도체 시장을 넘나들고 있다. 근데 반도체 기업들 삼성전자, SK 하이닉스의 세금을 더 거둬서 어쩌자는 거냐. 중국이랑 경쟁하지 말자는 거냐. 포퓰리즘에 따른 증세는 적절치 않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은 국내 법인의 실효세율에 대한 국세청 자료를 제시하며 법인세 인상을 주장했다. 김정우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기준으로 외국납부세액을 제외한 실효세율을 보면 과표 2000억원 초과 기업은 17.7%다. 200억~2000억원이 19.2%다. 과표구간이 올라가면 실효세율도 올라가야 하는데 오히려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끝까지 반발한 한국당은 법인세율 적용 대상을 과세표준(세금을 매기는 기준) 2000억원 이상에서 3000억원 이상으로 완하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 "사실상 대기업 법인세 증세"…'이중부담' 우려도
이미 해외 경쟁기업보다 높은 수준의 법인세 부담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사실상' 법인세 인상과 같은 효과를 내는 세법 개정안도 함께 통과되면서, 대기업에 '이중부담'을 지게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R&D·생산성향상시설·안전시설·환경보전시설 투자 등에 대한 세액 공제 축소 안의 영향으로 기업들은 5500억원의 세 부담을 지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에 따라 그동안 조세소위에서 '사실상' 법인세 인상과 연계되는 법안을 다룰 때 한국당의 반발은 극심했다. '대기업 이월결손금 공제 한도 하향 조정'을 담은 법인세법 일부개정안이 그 예다. 해당 안을 두고 여야는 지난 30일 조세소위 막판까지 설전을 벌였다.
추경호 소위원장을 비롯한 한국당 의원들은 대기업의 이월결손금 공제 한도를 줄이는 것은 실질적으로 세 부담이 늘어나므로 '사실상 대기업 법인세 증세'라며 반대했다.
최영록 기재부 세제실장이 "중소기업은 제외하고 대기업에 대해서만 적용한다. 분산해서 최소한의 세금은 내자는 것"이라면서 "일본도 도입했다가 강화하는 추세이고, 영국 등 기타 선진국에서도 해당 제도를 도입해서 특정 연도에 결손금 공제가 집중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이현재 한국당 의원은 "법인세 내리는 건 왜 안 따라 하고 이 안만 따라 하는 거냐. 그건 핑계고 증세하려는 목적 아니냐"고 따져 묻기도 했다. 결국, 이월결손금 공제 한도를 '현행 80%-2018년 60%-2019년 50%'로 하려는 기존 안에서 '현행 80%-2018년 70%-2019년 60%'로 완화하는 안으로 지난 1일 통과됐다.
대기업에 대한 '세액공제율 하향 조정'도 마찬가지다. 일반 연구·인력개발비의 경우 증가분 세액공제율을 30%에서 25%로 줄었다.
또 해당 과세연도의 수입금액에서 일반 연구·인력개발비가 차지하는 비율과 상관없이 무조건 1% 공제해줬던 것을 폐지했다. R&D 세액공제 축소의 영향을 받는 기업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기아자동차 등으로 이들에 대한 세제 지원은 각각 1480원, 210억원, 165억원 줄어든다.
엄용수 한국당 의원은 "내년에 대기업에 대한 증세 계획이 있는데, R&D 세액공제를 축소한다는 건 이중부담을 주는 것 아니냐. 문재인 정부는 균형된 감각이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기재위 전문위원은 "재원 확보의 필요성, 소득재분배와 조세 형평성, 법인세율이 일자리와 투자 등 법인의 경제활동에 미치는 영향, 법인세율에 관한 국제적 동향, 세출 구조조정의 필요성 등을 고려해 입법 정책적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