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 칼럼] 남방으로의 긴 여정, 그리고 눈물

2017-11-20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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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초빙 논설위원·동신대 교수(정치학)]


“아세안(ASEAN)에 주목하라”는 말을 처음 들은 건 1970년 대 중반이었다. 당시 한승주 고려대 교수(전 외교부장관)는 동남아정치론을 강의하면서 늘 이렇게 말했다. “위로는 대륙세력에, 아래로는 해양세력에 포위된 한국이 외연을 넓히려면 아세안과의 관계라도 강화해야 한다.” 냉전이 기승을 부리던 시절, 미·소(美·蘇) 양극체제에 묶여 옴짝달싹할 수 없었던 우리로서는 그렇게라도 출구(활로)를 모색해야 한다는 얘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의 ‘아세안 중시론’은 40여년이 지나 문재인 대통령의 신(新)남방정책(The New Sud Politik)으로 개화하고 있다. 대통령은 이번 동남아시아 3개국 순방에서 “미·일·중·러 4대국 중심이었던 한국외교의 축을 아세안으로까지 확장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위해 아세안과의 교류·협력을 4대국 수준으로 격상하고, 아시아 사람들끼리 평화와 번영을 누릴 수 있는 사람공동체, 평화공동체, 상생공동체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우리는 1980년대 말 ‘북방정책’이란 배를 타고 탈냉전의 격랑을 성공적으로 헤쳐 나갔다. 그 경험이 끼친 영향은 외교에 국한되지 않았다. 의식과 문화를 바꿈으로써 냉전시대와의 결별 가능성을 비로소 믿게 됐다. 신남방정책에도 이런 기대를 할 수 있을까? 단순한 지역정책 브랜드화 차원을 넘어 한국외교의 새 지평을 열고, 안으로는 냉전의 마지막 잔재까지도 씻어낼 수 있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명실상부한 ‘문재인 독트린’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낙관적인 듯하다. 그는 지난 14일 마닐라 교민 간담회에서 이번 순방의 성과에 대해 이렇게 자문했다. “이만하면 잘했다, 성공적이었다, 이렇게 평가해 주시겠습니까?” 참석자들은 열띤 박수로 대답을 대신했다. 신남방정책이 긍정적 평가를 받을 만한 많은 요소를 지니고 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외교의 다변화와 교역 면에서 우선 그렇다.

우리는 정치·군사적으로는 미국에 의존하고 경제적으로는 중국에 기대는 치명적인 딜레마에 빠져 있다. 그 충돌이 사드 소동으로 불거져 나왔다. 아세안과의 교역은 대(對)중국 의존도를 낮춤으로써 이런 딜레마에서 벗어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 창설 23년째를 맞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은 이 지역의 대표적인 다자안보 논의기구다. 가끔 남북이 조우하는 곳이기도 하다. 반관반민(半官半民) 형태의 ARF를 좀 더 발전시킬 때도 됐다.

아세안은 세계 3대 시장, 4대 교역국, 5대 경제규모를 자랑한다. 6억4000만 인구는 중국과 인도에 이어 세 번째이고 연 2조4000억 달러에 달하는 GDP는 미국, EU, 중국, 일본에 이어 5위다. 한국은 아세안의 제2 교역국으로 지난해만 교역액이 1188억 달러에 달했다. 아세안 경제는 향후 10년간 연 5.7%의 성장이 예측되고 있다. 중산층의 확대와 젊은 노동인구로 중국, 인도와 함께 21세기 세계경제를 견인할 중심축의 하나다(신윤환, 통일시대 11월호).

신남방정책이 ‘사람 중심’을 천명한 것도 평가받을 만하다. 문 대통령은 “사람 중심의 동북아공동체를 만들어 나가자”고 했다. ‘사람 중심’은 곧 인권과 민주주의를 뜻한다. 사람답게 살려면 이 두 가지가 충족돼야 한다. 그러나 일부 아세안 국가들의 사정은 이와는 거리가 있는 게 사실이다. 미얀마에서 소수민족인 로힝야(Rohingya) 족에 대한 인종청소가 자행되고 있고, 필리핀에선 두테르테 대통령이 적법 절차 없이 마약사범들을 처형해 국제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놓고 인권과 민주주의란 단어를 입에 올리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사람 중심’이란 말로 이에 대한 우려를 에둘러 표명한 셈이다.

1994년 리콴유(李光耀·2015년 타계) 싱가포르 선임총리와 김대중 대통령이 벌였던 아시아적 가치(Asian values) 논쟁도 떠올리게 한다. 리 총리는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민주화를 유보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김 대통령은 양자의 병행 발전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문 대통령은 ‘사람 중심’을 강조함으로써 후자 쪽에 서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40년 전의 우리처럼 근대화와 민주화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을 아세안 국가들에 참고가 됐을 법하다.

신남방정책이 구체적 성과를 내려면 적극적이고 용의주도한 대응이 요구된다. 대(對) 아세안 외교는 국제정치학에서 말하는 이른바 구성주의(constructivism)의 성격이 강하다. 국가 간의 관계가 상호작용과 학습을 통해 구성(형성)되는 것이라면 아세안과의 관계가 딱 그렇다. 대(對) 4강 외교처럼 어떤 구조 아래에서 관계가 ‘주어지는 것(구조주의적 현실주의)'은 아니라는 얘기다. 한국으로 시집온 베트남 신부가 남편의 폭력으로 매일 눈물바람을 한다면, 그 눈물이 쌓여서 한·베트남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 관계란 선의(善意)와 우호(友好), 인정(人情)보다는 환멸과 불신, 증오에 기초한 관계가 될 것이다.

‘뜻은 높게 행동은 낮게’라는 말은 신남방정책 추진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경구(警句)다. 빛나는 기치, 아름답고 확신에 찬 말들, 종횡무진하는 엘리트들, 그 뒤편에서 눈물지을 가난한 베트남 신부를 먼저 살피는 게 남방으로 가는 긴 여정의 첫걸음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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