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본격적인 경제 회복에 들어서던 레바논이 다시 침체에 빠질 위기에 처했다. 중동에서 수니파 사우디아라비아와 시아파 이란 간 갈등의 불똥이 레바논으로 튀면서 전운이 드리워지고 있는 것이다.
AP통신은 사드 하리리 레바논 총리가 전격 사임한 이후 레바논을 향하던 자금이 갑자기 중단되고 레바논 경제 신뢰도도 급격하게 훼손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우디와 이란의 갈등이 레바논에서 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급격히 높아지면서 급기야 수십억 달러 규모의 도로, 전기, 이동통신 시설과 같은 인프라 재건 공사와 원유 및 가스 부문의 사업이 마비될 위기에 빠졌다고 AP통신은 전했다.
레바논이 사우디와 이란 사이에서 새우등 신세가 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레바논 경제는 내전 후 역내 강대국들의 암묵적 이해 속에서 내전의 상흔을 씻고 회복 궤도를 찾던 참이었다. 1989년 타이프협정 후 레바논과 이웃한 사우디가 나서서 투자와 무역을 이끌었고 레바논 근로자들을 고용했다.
AP는 사우디와 걸프 국가들이 올 여름 카타르에 했던 것처럼 레바논에 이란과의 절연을 요구하면서 레바논을 고립시키고 레바논 근로자들을 퇴출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22만에 달하는 사우디의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레바논으로 돌아갈 경우 매년 20억 달러의 대외수입이 끊기게 된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정국 마비다. 이 경우 2011년부터 시작된 레바논의 경제 성장이 도루묵이 될 수 있다. 이미 하리리 정권은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지 않으려 하고 있지만 헤즈볼라는 알 아사드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하면서 수년째 갈등을 빚었다. 레바논 인구의 4분의1에 달하는 시리아 난민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막대한 사회적 비용도 초래하고 있다. 레바논의 바이블로스뱅크의 나집 고브릴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AP에 "내각은 현 상황에서 아무런 결정을 내릴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프랑스 등 서방은 레바논을 둘러싼 갈등이 무력충돌도 번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주 사우디를 찾아 갈등 자제를 촉구한 데 이어 11일 미국 백악관도 레바논 하리리 정권에 대한 지지 의사를 표명하는 한편 "외세가 레바논의 주권과 안정을 해쳐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고 미국 정치매체 더힐은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