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은 변하기 쉬워도 (사람과 국가사회의) 본성은 변하기 어렵다.)
“마오 동지, 당신은 마르크스주의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소,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은 '수호전'과 '손자병법'뿐이요.”
당시 그 비난이 시사해주는 바는 매우 크다. 만약 마오가 마르크스를 이해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역설적으로 말해 그는 마르크스 공산주의를 잘 몰랐던 대신 ‘중국의 시공(역사지리)과 본성’을 잘 알았던 덕에 중국 혁명의 최후승리자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베이징에서 장기 체류할때 필자는 마오의 필생 애독서인 '수호전'의 무대인 '양산박(梁山泊)'을 찾아가보았다. 산둥성 성도인 지난(濟南)에서 남서쪽 황허(黃河)변으로 나란히 난 220번 국도를 두시간 쯤 따라가다 보면 왼쪽 시야에 양산박의 중심 양산(梁山)이 나타난다. 사실 3, 허구 7의 '수호전'은 크게 보아 우리의 '홍길동전'이나 '임꺽정전'과 별다를 바 없는 민중반란을 주제로 한 역사소설이다. 그런데도 중국특색적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하의 중국정부는 '수호전'의 양산박을 실제 유적지 뺨치는 테마파크로 꾸며놓고 국내외 '수호전' 애독자를 끌어모으는데 혈안이 돼있었다.
양산박의 여러 볼거리 중 필자의 뇌리깊이 밖혀 있는 지점은 단연 '송강채(宋江寨)'다. 이름과 달리 송강채는 서열 1위 송강이 혼자 살았던 게 아니다. 양산박 108명의 영웅 중 1위 송강, 2위 노준의, 3위 오용을 비롯해 서열 12위까지의 영웅들이 함께 거처했던 곳이다.
마치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의 청와대 격인 중난하이(中南海)가 최고권력자 1인의 가족만이 거처하는 곳이 아니라 시진핑·리커창 등 정치국 상무위원 7인과 그 가족이 들어있는 것과 흡사하다. 이는 중국이 예나 지금이나 1인 독재체제가 아니라 집단지도체제로 움직여 온 수많은 방증자료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집단지도체제의 오랜 전통이 체화된 중국인의 가치관과 세계관은 원형이다. 반만년 노대국의 중화사상 역시 한마디로 중국이 원형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는 자부심 충만한 세계관이다. 그래서일까? 중국인의 일상용어도 서양인의 피라미드형 세계관에서의 ‘최고(Top)’ 보다도 ‘중심(Center)’ 또는 ‘핵심(Core)’을 훨씬 선호하는 편이다. 중국 공산당의 권력구조도 삼각형 또는 피라미드보다는 원형 내지 동심원 구조로 풀어야 직관적으로 이해가 잘 될 것 같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중국공산당이 영도한다. 중국공산당의 권력구조는 정치국 상무위원회를 핵심으로 하는 6중 동심원 구조다. 2016년말 기준으로 13억8271만명 중국인의 중심(엘리트)은 약 8860만 중국 공산당원이다. 중국공산당원의 중심은 2280명의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당대표, 제19대 기준)다. 중국 공산당 당대표의 중심은 204명의 중앙위원과 172명의 중앙위 후보위원으로 구성된 중앙위원회다. 다시 중앙위원회의 중심은 25명의 정치국원이고, 정치국원의 핵심은 7명의 정치국 상무위원회다. 즉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6개 중심이 반복된 6중 동심원 구조의 핵심에 위치한다.
1982년 덩샤오핑 개혁개방 제도화 체제가 확립된 제12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부터 5년에 1회씩 즉 2’와 ‘7’로 끝나는 해 가을에는 어김없이 중국 공산당 당대회를 개최해왔다. 그만큼 중국은 예측 가능한, 루틴(Routine)한 시스템통치 궤도로 오른 지 이미 35년이 지났다.
이들 2200여명의 명목상 당대표들은 실질적 통치기관인 공산당 중앙위원(장관급 이상)과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차관급 이상), 당내 감찰기관인 기율검사위원(133인, 한국 감사원의 감사위원격)을 선출한다. 중앙위원회는 당대회 폐회기간 중에 당대회의 결의를 집행하고, 당의 전체적인 업무를 지도하며 대외적으로 중국 공산당을 대표한다.
중앙위원회는 당대회 폐회 다음날(제19대는 10월 25일) 제1회 중앙위원회(19기 1중전회)를 개최해 정치국원(부총리급 이상)과 정치국 상무위원(총리급 이상)을 선출해 왔다. 이들 정치국 상무위원이 바로 현재 중국 공산당과 중국 정치를 움직이는 권력의 핵심 멤버다.
정치국과 정치국 상무위원회의 사무를 담당하는 곳을 중앙서기처라 하며 그 장을 총서기라 하는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중국 공산당 총서기는 바로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중앙서기처 총서기를 말하는 것이다.
필자는 중국이라는 경기장의 선수들인 중국기업가들의 이야기인 '중국의 슈퍼리치'(한길사)를 지난해 펴낸 바 있다. 이제는 그들 선수들의 감독인 중국 정치권력의 핵심중의 핵심인 정치국 상무위원 7인 열전을 중심으로, 그들의 소속 구단인 중국 공산당과 중국 경기장의 룰인 정치제도 이야기를 곁들여 이야기 하고자 한다.
중국 정치국 상무위원의 인물과 제도를 논문만큼 깊고 정확하게, 백과사전처럼 넓게, 시처럼 참신하게, 무엇보다 소설보다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싶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 곳곳에 과욕의 흔적과 반대로 부족한 부분도 많을 것이다. 이 글을 연재하는 동안 독자들의 따뜻한 격려 부탁드린다.
강효백 경희대 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