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은 '탈원전'을 기치로 내건 문재인 대통령의 주요 공약 중 하나였다.
소득주도성장, 적폐청산과 함께 문재인정부의 대표 간판공약인 ‘탈원전’이 정권 초기에 여론에 의해 거부돼 처음으로 좌초된 공약이 됐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건설 재개 권고를 청와대와 정부가 사실상 수용한 것은 문 대통령의 공약 파기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22일 입장 발표를 통해 자신의 약속이 공론화 과정을 거쳐 파기된 상황에 대해 국민의 이해를 구하면서 3개월에 걸친 시민참여단의 심사숙고가 공약 수정의 근거가 된 만큼 이를 존중하고 따르겠다는 의사를 공식화했다. 공론화위가 제출한 권고안은 24일 국무회의에서 최종 논의돼 의결될 방침이다.
문 대통령은 또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치열한 토론을 통해 사회적으로 첨예한 이슈를 정리했다는 데 의미를 부여하면서 '숙의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문 대통령은 줄곧 '공론화위에서 어떤 결과가 나와도 존중하겠다'는 취지의 언급을 해왔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탈원전과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을 공약했지만 공기가 상당 부분 진척돼 의견이 팽팽히 맞서는 상황이 됐기에 공론화 과정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고 그 결과를 따르기로 했다"며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은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지만 일방적으로 추진될 경우 치러야 하는 사회적 비용을 감안하면 값진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었다.
문 대통령은 신고리 5·6호기 중단 공약을 폐기하게 됐지만, 탈원전·탈석탄·신재생 에너지 확대로 요약되는 새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은 유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론화위도 신고리 원전 재개에 손을 들어주면서도 원전 비중을 줄여야 한다고 권고해 탈원전 방향에 힘을 실어줬다. 청와대와 정부로서는 탈원전 반대 여론에 맞서 절반의 성공은 거둔 셈이다.
청와대와 정부는 신규원전 전면중단 및 건설 백지화와 설계수명이 다한 원전의 즉각 폐쇄라는 기존 에너지 정책은 그대로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산업부는 오는 24일 국무회의에 공론화위원회가 권고한 원전 비중 축소 방안 등 에너지전환 로드맵을 올려 본격적으로 후속 절차 마련에 나설 방침이다.
그간 공약이나 국정과제 등으로 제시된 에너지전환 정책을 구체적인 정부 방침으로 확정하고 관련 행정 절차를 밟아 나가겠다는 것이다.
산업부는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와는 별도로 신규 원전 6기 건설은 백지화하고 2030년까지 설계수명이 도래하는 노후 원전 10기는 수명연장을 금지할 계획이다. 신규 석탄화력발전소는 원칙적으로 금지하기로 했다. 이미 공사를 시작한 5기는 당초 계획대로 진행하되, 국내 최고 수준의 배출기준을 적용하고 환경설비를 보강하기로 했다. 아직 인허가를 받지 못한 4기는 액화천연가스(LNG)로 전환하는 방안을 발전회사와 협의할 방침이다.
문 대통령과 청와대는 ‘숙의 민주주의’를 보여준 공론화위가 사회적 갈등을 원만하게 해결할 새로운 모델일 될 수 있다고 보고, 앞으로도 사회적 갈등이 큰 이슈에 활용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제한적 적용'을 할 방침이라고 청와대 측은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는 "국가가 중요한 갈등 당사자일 경우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공론화 과정을 적용하는 게 의미가 있다"며 "이는 대의 민주주의를 위배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쪽에 서 있는 절반에 가까운 국민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한 민주적인 행위로 볼 수 있기에 대의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공론화위 모델'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진행된 바 없으며 "공론화위는 이미 숙의민주주의의 틀로 새롭게 평가되나, 좀 제한적이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은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공론화위 모델은) 모든 사회적 갈등을 다 그렇게 풀 수는 없고 국가가 갈등 당사자로 돼 있는 것에서, 공론화 틀을 적용할 것을 정부가 택하는 것"이라며 "모든 사회적 갈등이 아니라 국가가 당사자인 갈등에서 아주 선택적·제한적으로 공론화 틀을 적용할만한 것들을 합의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