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싼 통상 전쟁의 막이 올랐다. 한·미FTA는 경제 분야를 넘어 안보 문제와도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정국 뇌관이다. FTA는 무역을 지렛대 삼아 방위비 분담금 등 안보 비용 청구서를 주장하거나, 미사일 탄두 중량 제한 해제 등 한·미 간 유례없는 방위력 강화를 고리로 통상 압력을 거세게 밀어붙일 수 있는 이슈다. 그간 안보와 무역을 연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스타일과 맞물린다.
한·미FTA 개정 협상 절차가 정국 최대 이슈로 떠오른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우리 측 FTA 협상자인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13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업위)의 산업·통상 부문 국정감사에 출석, 국회에 FTA 보고를 한다. 한·미FTA 개정 협상 절차가 시작되는 셈이다.
◆양국 FTA 폐기 시사···협상개시 전부터 ‘첩첩산중’
12일 국회에 따르면 우리의 FTA 개정 협상은 ‘통상조약의 체결 절차 및 이행에 관한 법률’(통상조약법) 등에 따라 진행한다. 국회 비준은 헌법(제60조1항)의 적용도 받는다. 통상협상 개시 이전에는 △공청회 개최(이하 동법 제7조)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국회 보고(제6조) △산업통상부의 경제적 타당성 검토(제9조) 등을 거쳐야 한다. 단계마다 고비가 적지 않은 셈이다.
통상협상 과정에서는 △개정 협상 개시 후 통상협상 단계에서의 국회 협의(제10조) △국민 포함 의견 제출(제8조) △가서명 후 국내 경제 등에 미치는 영향평가 실시(제11조) 등을 거쳐야 한다.
FTA의 공식적인 개정 협상이 이뤄지지 않거나, 미국 측의 일반적·추상적 내용을 담은 기술적 합의 체결의 성격 개정에 그친다면, 후속 약정의 체결만으로 절차는 종료된다. 국회 비준 동의가 필요 없다는 얘기다.
양국 중 한쪽이 협정 종료를 선언하면, 서면통보일로부터 180일 후 FTA는 폐기된다. 다만 폐기 통보를 받은 당사국은 30일 이내에 협의를 요청할 수 있다. 이 경우 양국은 요청일로부터 30일 이내에 협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전면적 폐기냐, 부분적 폐기냐’가 결정되는 셈이다.
미국의 FTA 폐기 압박이 거센 가운데, 우리 측도 무리한 요구 시 폐기 가능성을 우회적으로 시사했다. 여권 등에 따르면 김 본부장은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며 파기 가능성을 언급했다.
◆본질적 내용 개정 땐 국회 동의···앞서 FTA도 5년9개월 소요
국회 비준이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하는 때는 FTA의 ‘본질적 사항’을 건드렸을 때다.
변수는 일방주의를 표방한 트럼프 행정부의 제조업 보호무역 성향이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이와 관련해 “자동차와 철강 분야의 무역수지 적자 문제를 협상 의제로 제시할 수 있다”면서 “한국이 이해관계의 균형 차원에서 그간 통상관계에서 불리했던 점을 시정하기 위한 것을 요청할 경우 본질적 내용에 대한 개정이 이뤄질 수 있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본질적 내용에 대한 개정으로는 △미국의 비관세장벽 제거 △미국 서비스 시장 진출 △투자챕터 개선 △정부 정책의 자율성 확보 등을 꼽았다.
민주당이 한·미FTA 3대 원칙으로 제시한 △중소기업 등 문재인표 통상 정책 △미국의 반덤핑 조사 전 도입한 사전통지제도 재검토 △투자자 국가소송제(ISD) 등을 미국 측이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본지와 통화에서 “대표적인 독소조항인 ISD 폐기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고 말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재정 부담 상황과 관계 없이 FTA 개정 협상 때는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법률시장 개방 등 양국의 의무이행과 관련한 세부적 사항을 수정할 땐 국회 동의가 필요 없다는 주장이 다수다. 다만 양국이 특정 산업의 추가 개방 및 특정 시장의 억제 등에 합의한다면, 국회 비준 동의를 둘러싼 해석 싸움이 정치권을 강타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