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1300조원을 넘어선 가계 빚에 쓸 돈은 없는데, 농·축·수산물 등 추석 성수품 가격과 밥상물가는 고공행진을 하는 탓에 지갑은 굳게 닫혀버렸다.
이를 의식한 듯 정부는 28일 경제장관회의를 열어 ‘일자리·소득여건 개선방안’, ‘지체상금률 인하’, ‘재정혁신 추진’ 등을 잇따라 발표했다.
우선 서민대상 저리 전세자금대출을 1조원 늘리고, 저소득 건강보험료 체납자의 납부 의무를 면제해 주는 방안을 추진한다.
1600만원의 자산 마련을 돕는 청년내일채움공제 가입대상을 확대하고 사립대 입학금 단계적 축소·폐지, 휴대전화 단말기 지원금 상한제 폐지 등 생계비 부담도 최소화할 방침이다.
재정지출 구조조정 등 중장기 추진과제를 정하는 등 재정혁신 작업에도 박차를 가한다.
중장기 과제에는 중복된 재정 집행으로 지적됐던 중소기업과 대학 창업지원 사업, 경쟁력이 약해진 쌀 산업 개편, 고질적 문제인 저출산·고령화 관련 사업 구조개선 방안 등이 담겼다.
범 부처 단위의 ‘지출구조 개혁단’을 꾸려 중소기업에 혁신성장, 대학창업지원은 일자리 중심으로 지원한다.
하반기 추가경정예산안을 포함해 재정집행 속도도 높인다.
50대 이상 장년층의 고용연장 등을 지원하는 장년고용안정지원금을 156억원, 장애인고용장려금을 80억원 각각 늘리는 등 고용안전망을 확충키로 했다.
주거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저리(연 2.3∼2.9%) 전세자금대출을 1조원 늘려 2만 가구가량을 지원하고, 전직 실업자에 대한 생계비 대부 지원금도 85억원 확대한다.
공공조달에 참여한 업체가 납품이 늦어질 때 내는 '지체상금'도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낮춰 영세·중소업체 자금부담도 덜어줄 방침이다.
문제는 정부가 일시적·단기적 처방전을 내는 사이 국내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주요 추석 성수품 가격이 10년 전보다 40~50% 큰 폭으로 올랐고, 최근 물가상승률보다도 2배 이상 올라 서민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실제 추석을 앞두고 농·축·수산물과 과일값이 크게 오르며 물가 상승률도 석달째 2%를 넘었다. 물가가 3개월 연속 2% 이상 오른 것은 2012년 6월 이후 처음이다. 밥상물가가 치솟으면서 가계 소비심리도 2개월 연속 하락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해 들어 취업자 수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고, 청년 체감실업률은 22.5%를 기록하는 등 고용 시장은 한파를 겪고 있다.
일자리가 없다 보니 소득이 실종됐고, 씀씀이를 줄이다 보니 소비와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론’은 취지는 옳지만 최저임금 인상, 정규직 전환 등 방식은 기업부담만 키워 수요 개선 효과를 내기는 쉽지 않다”며 “정부의 단기적인 경기관리책으로는 청년실업과 노인빈곤, 저출산·고령화 등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