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의미에서 영화 ‘범죄도시’(감독 강윤성)는 윤계상에게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남게 될 터였다. 2004년 하얼빈에서 넘어와 순식간에 대한민국을 공포로 몰아넣은 신흥범죄조직과 강력반 괴물 형사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속, 장첸이라는 인물을 통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결을 선보이게 된 것이다. 이제껏 담아보지 못한 새로운 감정으로 인해 그는 더 넓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됐다.
다음은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가진 윤계상과의 일문일답이다.
- 제 입으로 어떻게 잘했다고 하겠나. 가야 할 길이 멀다. 겸손하고 잘하겠다는 의미였다.
- 일단 재밌다는 말이 많았다. (정)우성의 형의 경우 ‘이제 상업영화로서 기대해도 될 것 같은 작품이 나온 것 같다’고 하더라. 배우들 칭찬과 감독님 칭찬이 많았다. 입봉작(첫 작품)인데도 그런 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시더라.
윤계상의 연기에 관해서는?
- 아직 두고 봐야 한다. 다들 선수들이니까…. 전문가들이 먼저 접한 만큼, 첫 번째 관문을 통과했다는 기분이다. 좋은 떨림이 있다.
이제까지 윤계상이 보여주지 않은 새로운 인물이었다. 윤계상이 본 장첸의 첫인상은?
- 미친X이었다. 너무 나쁜 짓을 많이 해서 혐오스러울 정도였다. 현재 영화가 나온 건 그런 부분이 많이 삭제된 상태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때도 있었다. 찍어놓은 분량도 있지만, 감독님이 잘 판단하셔서 (어느 정도) 편집이 됐다.
그간 늘 당하는 캐릭터를 연기해왔다. 악역을 연기하며 시원한 마음도 들었을 것 같다
- 없진 않다. 원 없이 해본 느낌이라서. 연기라는 게 경험하지 못하는 것을 표현하다 보니 더 재밌고 흥미로운 것 같다.
꽤 오랜 시간 연기를 해왔는데도 악역은 처음이라는 게 놀랍다
- 악역에 늘 흥미는 있었는데 기회가 많지 않았다. 거의 착하고 힘들고 지질한 역이었다. 그런 것에 특화돼있다고 생각한다.
장첸을 위해 영화 ‘황해’ 속, 면정학을 참고했다던데?
- 장첸을 두고 많은 고민을 했다. 그러다 가만히 있어도 아우라라고 해야 할까? 압도적인 느낌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시카리오’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황해’ 등 좋은 영화의 악역들을 보다 보니 공통적으로 힘을 뺀다는 느낌이 들더라. 그게 장첸의 시작점이었다. 악랄해 보이려고 애쓰지 말자고 생각했다.
‘범죄도시’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하던데
- 처음 접하고 깜짝 놀랐다. ‘이런 일이 있었다고?’ 너무 끔찍하더라. 영화에 등장하는 일련의 사건들은 거의 실제와 가깝다. 장첸과 그 일행이 술집에서 직원들을 해하는 일 등등. 살벌하고 무섭다는 생각이 들면서 동시에 강력계 형사님들에게 감사하더라. 목숨을 내놓고 일하시지 않나.
장첸이라는 인물을 구상하면서 외적인 모습에 많이 신경 쓴 것 같던데
- 제가 둥글둥글하게 생기다 보니 수염과 긴 머리로 구분을 두고 싶었다. 대본을 봤을 때 장첸이 임팩트가 강하긴 해도 신이 너무 적은 느낌이었다. 그림으로 따지자면 선도 더 주고 채우는 느낌이어서 수염도 기르고 기괴한 느낌을 주기 위해 연장술로 머리를 붙였다. 사실 기존 악역들은 머리가 짧거나 험악한 모습이지 않나? 거기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긴 머리로 인해 외적 편견을 깨고 싶었나 보다
- 그런 셈이다. 저는 귀신을 가장 무서워한다. ‘전설의 고향’을 보고 자라서 그런가? 긴 머리를 풀어헤친 모습이 괴기스럽고 오싹하다. 그 모습을 장첸에게 반영한 거다. 싸울 때도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짐승처럼 달려들기도 하고.
하지만 영화를 준비하면서 긴 머리에 대한 혹평도 있었는데
- 팬들이 정말 싫어했다. 하하하. 하물며 어머니마저도 ‘좀 깔끔하게 하고 다니라’며 질색하시더라. 사실 저는 그 긴 머리가 꽤 멋있다고 생각했다. 스태프들도 다 멋있다고 해서 진짜 그런 줄 알았지. 하하하. 그런데 공항에서 사진이 찍히고 다들 경악을 하기에 ‘잘 안 어울리는구나’ 알게 됐다.
연기적으로도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다. 마동석과 경쟁 구도를 벌이는데, 상대적으로 밀린다는 느낌이 들면 안 될 테니
- 운동도 하고 독하게 밀어붙였다. 무서움을 극대화시키고 싶었다. 모든 행동에 정도가 없이 연기했다. 전부 폭발시켰다. 힘이 느껴지길 바랐다.
마동석과는 영화 ‘비스티 보이즈’ 이후 두 번째 만남이었는데
- 재회라고 해서 다른 점이 없었다. 형은 그대로다. 편안하고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긴다. 강압적인 면도 없고 언니 같다고 할까? 현장을 화기애애하게 만들어준다.
개인적으로는 위성락(진선규 분)과 양태(김성규 분)가 있었기 때문에 장첸이 더 위협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다
- 그렇다. 합이 정말 잘 맞았다. 거의 같이 살면서, 모든 신을 함께 만들어나갔다. 자랑하고 싶은 배우들이다. 요즘 엄청 핫하기도 하고. 이번 작품 이후부터 중심적 역할들을 맡게 됐다. 기대하고 있다.
감독님은 어땠나? 17년간 준비 끝에 입봉하셨는데
- 요즘 많이 긴장하고 계시다. 하하하. 감독님은 배우들과 많은 소통을 하신다. 배우들의 의견도 존중해주시고…. 우리는 신나서 막 만들어가는 거지. 하하하. 감독님은 우리가 만든 것들을 보고 채택하거나 감사관 같은 역할을 해주셨다.
배우들의 요구를 들어주지만 ‘이것만큼은 꼭 지켜달라’고 요구한 게 있다면?
- 장첸에게 과정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냥 사이코패스처럼 굴었으면 좋겠다면서. 일종의 과정을 생략하고자 한 거다. 그래야 장첸이 더 무섭게 보일 것 같다고도 하셨다. 처음에는 배우로서 욕심도 나고 감정의 과정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감독님의 말을 듣고 이해가 됐다.
추석 연휴에 영화가 개봉하게 됐는데, 관람 등급이 청소년관람 불가다
- 시나리오부터 청불이었기 때문에 관람 등급에 대한 우려는 없다. 그보다 영화의 기운을 믿고 있다. 영화가 가진 통쾌함이라고 해야 할까? 시사회를 마치고 나오는 관객들의 얼굴이 다들 시원하더라. 찜찜하다는 반응이 없어서 좋았다.
쟁쟁한 작품들과 붙게 됐는데
- 그건 걱정이다. 제 영화 중, 명절에 나오는 영화가 처음이라서. 하하하. 거기다 다들 좋은 얘기만 해주고 자꾸 띄워주니까 기대감이 커진다. 이러면 안 되는데. 작품에 대한 자신감은 분명 있다. 재밌고 통쾌하고 보시면 분명 좋아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함께 붙는 작품들이 워낙 쟁쟁하니 흥행에 대한 걱정이 있다.
그 쟁쟁한 영화들 중, ‘범죄도시’만의 강점을 어필하자면?
- 한국적인 재미가 있다. 코미디며 드라마, 스릴러적 구성이 우리나라 관객들의 입맛에 맞춰져있다. 또 시원하고 통쾌한 부분이 있지 않나. (마동석) 형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데 그런 것들이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줄 것 같다.
최귀화·마동석의 경우는 천만 배우 아닌가. 함께 하는 입장에서 든든할 것 같은데?
- 어쩐지 두 사람은 여유롭다. 저와 감독님만 발을 동동 구르고 있지. 하하하.
이전과 달라진 느낌이다. 흥행에 대한 걱정도 많아 보이고
- 그렇다. 좋아하는 작품만 하다 보니 흥행 성적은 많이 아쉬웠던 게 사실이다. 대중의 관심을 너무 쉽게 생각했나 싶기도 하고. 열심히 작품을 찍었는데 봐주는 사람이 없어서 속상했다. 그런 부분에서 슬럼프를 겪기도 했는데 드라마 ‘굿 와이프’를 하면서 많이 나아졌다. 흥행의 갈증이 해소됐다.
흥행에 대한 갈증이 연기에도 영향을 미쳤나?
- 그런 건 아니다. 대중 예술을 하는 사람이니까 사랑도 받아야 하고, 평가도 받아야 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이제는 다 괜찮다. 연기는 그냥 내 삶이 돼버렸다. 가장 좋아하는 일이다. 왜 좋냐고 하면 잘 모르겠다고밖에 답할 수 없지만.
그렇다면 ‘범죄도시’는 윤계상의 필모그래피에 어떤 작품으로 남을까?
- ‘굿 와이프’ 같은 작품이 되길 바란다. 흥행에 있어서 갈증을 풀어줄 수 있는 영화이길. 또 제 작품 중 가장 사랑 받은 작품이 되었으면 좋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