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50] 천호제는 어떻게 운영됐나?

2017-09-19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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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 조직화 통한 전투력 극대화

[사진 = 천호제 편제]

1206년, 칭기스칸은 칸의 자리에 오르면서 "나라를 함께 세우며 함께 행했던 자들에게 천호를 맡기는 상을 내리겠다."며 95개 천호의 장(長)을 임명했다. 푸른 군대의 군대 시스템인 천호제(千戶制)가 재정비되는 순간이었다. 몽골 병사들이 탁월한 능력과 뛰어난 기동력을 갖추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것이 효율적으로 조직화 되지 않고서는 전투에서 그 힘을 극대화시키기 어렵다.
 

[사진 = 몽골 푸른군대]

기마술과 기동력에 있어서는 여진족이나 투르크계 유목민들도 결코 몽골인들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도 몽골의 군대가 이들에 비해 우월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 것은 몽골의 군대가 칭기스칸의 지도력 아래 적과는 다른 원리 위에서 조직 됐기 때문이었다.
시스템의 근본을 바꾸는 대개혁이 있었기 때문에 최강의 군대로 태어날 수 있었다는 얘기다.

▶ 천호제로 시스템 근본 개조

[사진 = 양치는 유목민]

끝없이 이동하며 살아야 했던 유목민들은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생존전략이 뛰어나 그것이 곧바로 강한 전투력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씨족과 부족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연합체는 힘이 한곳에 모아지기 어렵고 조직 자체가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약점을 안고 있었다. 칭기스칸은 몽골 초원의 통일과정에서부터 유목민 연합체의 이러한 약점을 간파하고 조직을 강력한 중앙집권적인 힘을 가진 체제로 탈바꿈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인식했다.

[사진 = 할흐강(몽골 동부)]

1203년 몽골 동부 할흐강변에 진을 친 칭기스칸은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조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푸른 군대 조직의 근간이 되는 천호제가 모습을 드러낸 것도 바로 이때였다. 이 천호제는 흉노의 군사조직에 바탕을 두고 있다. 흉노의 군사조직은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흉노전에 상세히 기록돼 있다. 사마천은 기록을 남기지 않은 흉노를 대신하듯 비교적 상세하게 흉노의 모든 것을 기록해 두었다.

▶ 십진법에 기초한 군사조직

[사진 = 흉노 묵특선우 추정도]

흉노 군대조직의 특징은 유목 국가에서 보편적으로 보이는 십진법 체계다. 이 십진법을 기본으로 한 흉노의 군대조직은 놀랄 만큼 질서정연한 체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흉노족의 군사․정치 제도를 종적인 관계로 조망해 보면 십백천만(十․百․千․萬)이라는 십진법 체계의 삼각형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최대의 단위를 이루는 것이 만(萬), 즉 만호제이고 그 것은 실제로 수천 명에서 일만 명의 기병을 소속시킬 수 있는 집단이었다. 이 최대 집단의 지도자를 '만기(萬騎)'라고 불렀다. 그들의 합계가 24인으로 이것이 바로 유명한 흉노의 24장이다."

현대의 군대 조직은 통상 분대와 소대, 중대, 대대, 연대 그리고 사단과 군단으로 이어지는 피라미드체계다. 몽골의 천호제도 형식은 현대 군대조직과 큰 차이가 없다. 다만 구성단위가 10진법에 근거를 주고 있다는 데 차이가 있다. 천호제는 열 명을 기본 단위로 하는 십호에서 출발한다.

십호에는 그 십 호를 다스리는 십호장을 둔다. 십호가 열 개 모이면 백호가 된다. 백호가 다시 열 개 모이면 천호가 되는 것이다. 만호가 생겨나기는 했다. 만호는 나중 17세기에 투멘(Tymen)이라는 이름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기는 하지만 칭기스칸 시대에는 별 의미가 없었다. 천호제의 기본 줄기는 역시 천호였다. 천호가 몽골 군대의 기본 조직이자 최대의 조직이었다.

▶ 순수 몽골인 집단으로 출발
95개의 천호 조직 됐을 때 소속된 병사들은 거의 몽골인 이었다. 그러나 이후 유목 키타이족(거란족)들이 대거 천호제 체제 안으로 편입되고 세계정복전쟁으로 여러 종족의 병사들이 보태지면서 칭기스칸이 사망할 당시 천호의 수는 129개로 늘어났다고 집사는 기록하고 있다. 몽골군이 수십만 명으로 늘어난 시점에서도 천호에 소속된 병사가 13만 명 정도였다는 것은 그만큼 천호제가 중추적 역할을 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 3분할 체제로 정주권과 대치

[사진 = 흉노 호한야 선우]

십진법체계와 함께 또 하나 흉노 조직의 특징은 횡적으로 중앙과 좌우를 가르는 3분할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흉노의 왕인 선우를 중앙에 두고 양쪽에 각각 좌현왕(左賢王)과 우현왕(右賢王)이 날개를 펼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좌현왕이 관장하는 좌익은 몽골고원의 동쪽 흥안령 일대와 만주, 한반도 위쪽까지로 볼 수 있다.

또 우현왕이 관장하는 우익은 기련산에서부터 서쪽으로 타림분지와 천산 지역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이었다. 흉노와 평생 동안 한판 승부를 벌였던 한 무제(漢 武帝)가 동쪽 한반도에 낙랑 등 한사군(漢四郡)을 둔 것이나 서쪽에 무위, 장액 등 하서사군(河西四郡)을 설치한 것은 바로 흉노의 좌우익에 대응하기 위해서였다는 주장도 있다. 이것을 본 딴 칭기스칸의 조직은 동쪽에 배치된 좌익은 무칼리가 지휘했고 우익은 보르추가 맡았다.

▶ 철저히 능력 위주로 운영

[사진 = 천호장 막사]

천호제와 중앙 3분할 체제는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진 조직 체계로 하드웨어 측면에서 우수성을 나타냈다. 그러나 그 것을 운영하는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는 더 큰 위력을 나타냈다. 철저히 능력 위주로 이 조직을 운영했기 때문이었다. 신분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능력 있는 사람은 누구나 십호장이나 백호장, 천호장에 기용했고 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면 그 조직 안에서 능력 있는 다른 인물로 즉각 교체했다. 목수와 대장장이, 양치는 목동 등 당시 비천한 신분의 인물들이 상당수 천호장에 임명됐다.

"소르칸 시라로 말하면 타이시우드의 속민이었다. 바다이와 키실릭으로 말하자면 체렌의 말 치기였다. 이제 나의 지팡이가 돼 살동개(화살을 넣는 주머니: 시복(矢箙))를 휴대하고 의식의 잔을 비우며 자유를 즐겨라"

연공서열과 신분보다는 능력을 중요시하는 혁신적인 조직 운영은 기존의 기득권을 가진 부족장이나 씨족장은 불만스러워 했지만 일반 병사들과 백성들은 크게 환영했다.

▶ 연대책임 통해 조직 결집력 높여

[사진 = 이동하는 유목민]


천호제를 운영하는 데 있어 또 하나의 특징은 철저히 연대책임을 물음으로써 조직의 결집력을 높였다는 점이다. 그 단적인 예가 칭기스칸이 남긴 대자사크에 잘 나타나 있다.

"공격할 때나 퇴각할 때 앞의 병사가 무기나 짐을 땅에 떨어뜨렸는데도 뒤에서 따라가던 병사가 그 것을 주워주지 않을 경우 사형에 처한다."

몽골제국을 방문했던 프랑스의 수사 카르피니의 견문록에도 이와 관련된 기록이 나온다.

"십호에서 두 세 명 이상이 도망치면 나머지 모든 사람들은 처형돼야 한다. 십호 소속원 전원이 도망치면 백호의 나머지 사람도 모두 처형돼야 한다. 십호 소속원 가운데 적에게 붙잡힌 병사가 있을 경우 다른 사람들이 구해 내지 못하면 처형돼야 한다."

▶ 전투력 높인 군사조직체
군율을 바탕으로 한 조직 운영은 공포심을 자아낼 만큼 엄격했다. 그렇기 때문에 유연성이 부족하고 자칫 사기가 저하될 수도 있었지만 다른 여러 보완장치로 우려되는 부분을 상쇄 시켜줬다. 천호제 안에서 집단 처형의 사례가 기록에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그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시스템을 통해 천호제는 전투에서 상당한 위력을 발휘하는 군사 조직체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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