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시 제품요? 가습기 살균제 파동 이후부터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일부가 옥시 제품인지 모르고 구매하는 경우 외에는 손님들이 아예 살 생각을 안 해요."
5일 오전 11시께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일반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김모씨(43)가 건넨 말이다.
또 다른 중형 마트를 운영하는 이모씨(54)는 "한 때 세제류의 80% 이상을 담당하던 옥시 제품들이 지금은 5% 수준으로 떨어졌으며 데톨, 냄새먹는 하마 등 옥시의 인기 품목도 예외는 없다"고 말했다.
대형마트 한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본격적으로 발생한 뒤 매장에서 옥시 제품을 찾는 소비자들이 없을 뿐더러, 사회적 논란이 지속되면서 현재 일절 취급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에 본사를 둔 옥시의 국내 시장 입지가 날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를 가장 많이 낸 옥시 제품에 대한 소비자단체 불매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판로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옥시가 머지않아 국내 시장에서 철수 수순을 밟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국소비자연맹·소비자시민모임 등 10개 단체로 이뤄진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지난 7월 백화점 6곳, 대형마트 12곳, 기업형슈퍼마켓(SSM) 37곳, 일반슈퍼마켓 67곳, 기타업체 2곳 등 총 122곳에서 '옥시제품 판매현황'을 조사한 결과, 백화점과 대형마트는 전점 모두 옥시제품 판매를 철수했다. 반면 SSM은 5곳(14%), 일반 슈퍼마켓은 63곳(94%)이 판매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협의회는 지난 7월부터 현재까지도 서울 여의도 옥시 본사 앞에서 '3차 불매운동 행동선언식'을 열고 "옥시제품과 같이 소비자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제품이 시장에 설 수 없도록 이 활동을 지속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 단체는 3차 불매운동에서 가습기살균제는 물론 섬유유연제를 비롯해 의약품인 '개비스콘' '스트랩실'을 불매 대상에 포함할 것을 선언하고, 양심적 약국들이 불매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국내 주요 대형마트가 여전히 옥시 제품을 전면 취급하지 않으면서 옥시의 국내 시장점유율과 사업성은 더욱 악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가습기살균제 사태 이후 옥시의 섬유유연제·세탁세제 점유율은 급락했다. 앞서 발표된 시장조사전문기관 닐슨코리아 자료를 보면 옥시는 지난해 초(1~2월) 섬유유연제 부문 시장점유율이 10.9%였지만 올해 초(1~2월)엔 1.5%로 급감했다. 같은 기간 세탁세제 부문에서도 옥시의 시장점유율은 6.5%에서 1.0%로 떨어졌다. 그야말로 국내 시장에서 설자리를 잃은 셈이다.
자신을 30대 주부라고 밝힌 김모씨는 "예전엔 세제용품 등 생활용품의 50% 정도는 옥시 제품을 사용했던 것 같다"면서 "무엇보다 옥시가 외국계 기업이라 '폐업하고 떠나면 그만이다'라는 식으로 피해자들을 외면한 사례를 보았던 만큼 앞으로 국내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지금은 딱 끊었다"고 말했다.
옥시 관계자는 지난 7월경 공식적으로 "옥시 레킷벤키저의 매출이 가습기 살균제 문제로 인해 크게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라며 "당사는 가습기 살균제 이슈를 해결하고 한국 사회와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옥시는 오프라인 시장에서 소비자들이나 판매처에 외면을 당하자, 다수의 전자상거래를 통해 재고를 처분하며 더 큰 논란을 키우기도 했다.
이에 가습기살균제피해자모임과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등 시민단체를 비롯해 네티즌들이 옥시가 수입판매하는 제품 이름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을 통해 퍼나르고 있어 이마저도 녹록지 않은 상황인 것으로 판단된다.
옥시와 거래를 했던 한 업계 관계자는 "계속해서 소비자들로부터 옥시 제품이 외면받고 있고,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도 원활히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국내 시장에서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