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참모진들에게 수입품에 대한 관세 부과 대책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월에는 미•중 포괄적 경제대화를 앞두고 중국의 철강 생산량 감축 제안을 거부한 채 관세 부과를 고집했다는 소식도 나왔다.
파이낸셜타임즈(FT)는 28일(현지시간) 소식통을 인용하여, 7월 함부르크 G20 회의 이후 미중 포괄적 경제대화를 앞두고 중국이 미국에 2022년까지 철강 생산을 1억5000만 톤 줄이겠다고 제안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두 번이나 제안을 거절했다고 전했다.
미국의 한 관리는 FT에 “중국이 감축을 약속한 양은 상당했다. 그렇지만 트럼프 대통령에겐 중요한 것은 양이 아니었다. 오직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FT는 로스 장관이 경제대화 기간 중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을 확인한 뒤 왕양 부총리와의 회의실로 복귀했을 때 충격에 빠진 듯한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결국 미중 경제대화는 아무런 성과 없이 기자회견마저 취소된 채 끝났다.
FT는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에 대중무역 강경파였던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 전략가와 피터 나바로 백악관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보호무역주의를 옹호하면서 관세 대책을 주문했다는 보도는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를 통해서도 나왔다. 악시오스의 27일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존 켈리 백악관 신임 비서실장 취임 후 주요 참모진들과의 첫 백악관 회의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수입품에 대한 관세 대책을 수 차례나 요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방에 세계주의자가 있다는 걸 알지만 나는 그들을 원하지 않는다”면서 “그들은 관세를 원하지 않지만, 나는 분명히 말하건데 관세를 원한다”고 말했다. 당시 회의에는 켈리 실장을 비롯해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무역대표부(USTR) 대표, 게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 배넌 전 수석전략가, 나바로 위원장이 함께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부시 행정부에서 백악관 아시아 수석고문을 맡았던 데니스 윌더는 FT에 “트럼프는 중국과의 경제 관계를 완전히 재편하고 싶어한다. 아마 그는 파격적 방식을 반대하고 전통적 방식에 동조하는 참모진들을 보며 좌절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배넌이 백악관을 떠난 이후 트럼프 정책이 전면적인 무역전쟁을 피하는 공화당 주류의 의견에 수렴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절대 보호무역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대다수다. 크리스 존슨 전 CIA 중국 애널리스트는 "배넌의 퇴출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행정부는 여전히 중국에 강경 노선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고 FT에 말했다. 미국이 향후 중국과 같은 무역 파트너들에게 높은 관세를 부과함으로써 무역전쟁을 야기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당분간은 트럼프 대통령이 샬러츠빌 사태 이후 인종차별 두둔 논란과 또 다시 부각되는 러시아 스캔들에 따른 국정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세제 개편에 올인할 것으로 보인다. 세제 개편을 위해서는 공화당의 협조가 절실한 만큼 관세 요구는 잠시 미뤄둘 가능성이 높다. 재계 및 공화당 주류는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할 경우 무역전쟁을 촉발해 미국 산업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한다. 실제로 지난 6월에 미국이 수입산 철강에 관세 부과를 고려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을 때 유럽연합(EU)은 미국산 농산물에 보복관세 부과로 대응하겠다고 경고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