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장호 칼럼] 여행자 면세한도 상향해야

2017-08-28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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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장호 논설위원]


"드디어 우리가 한 번도 갖지 못했던 자유를 얻었다."

쿠바 수도 아바나에 사는 라모나 모레노(61)는 14일(현지 시간) 이민청 앞에서 여권을 새로 발급받은 뒤 이렇게 외쳤다. 평생 레스토랑에서 일해 온 그는 이민청 직원을 붙잡고 "비자 없이 갈 수 있는 나라가 어디인지 말해 달라."며 감격스러워했다. 북한과 함께 지구 상의 마지막 폐쇄적 공산주의 국가로 분류되는 쿠바에서 반세기 만에 해외여행이 자유화됐다. 쿠바 정부는 이날 여권을 가진 국민이면 누구나 자유롭게 출국할 수 있도록 해외여행 규제를 완화했다고 AFP 등 주요 외신이 보도했다. 해외여행 러시를 예고하듯 아바나의 여행사와 이민청 앞에는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긴 줄이 이어졌고, 외국 대사관에도 비자 발급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한국경제, 2013년 1월 15일)
위는 사회주의혁명공화국을 표방한 쿠바에서 있었던 일을 외신이 보도하고 그것을 국내언론이 인용한 것을 필자가 재인용한 것이다. 해외여행을 할 수 있게 여권을 쿠바 국민 누구에게나 발급한다는 것이 그렇게도 혁명적인 일인가? 중세 봉건영주 시절 농노에게는 거주·이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았다. 봉건영주와의 관계에서 반은 자유인, 반은 노예 비슷한 사람이었기에 여행자는 대단한 권력자이거나 도망자이거나 둘 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외지 여행객을 만나면 신기하기도 했지만, 문제가 있는 사람이 아닌가 하고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서양문화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의 서먹함과 적대감을 없애버리는 아이스브레이킹(ice breaking)이라는 것은 그런 문화적 유산이 아닐까 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우리나라는 어땠을까? 고려는 Korea라는 이름이 유래했다고 할 정도로 개방적인 무역국가였지만 조선에 와서는 대외상거래마저도 자유롭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사대교린(事大交隣)이 외교정책이었으니 큰 나라 중국은 잘 섬기고 북쪽 오랑캐와 남쪽 왜는 싸우지 않을 정도로 친하게만 지내면 되는 정도였다. 무역이라는 것도 활발하지 않으니 중국황제에게 조공하고 대가로 받는 것이 유일한 무역통로이고 그 사신 행렬에 적당히 거래하는 사무역이 있었을 뿐이다.

특히 왜구의 침입이 심해지면서 한반도 주변 섬들이 왜구의 교두보 비슷하게 되자 섬을 비우는 공도(空島)정책이 시행되면서 우리 선조들은 국제화, 개방화를 포기하게 된다. 1796년 정조시대 제주도의 기생이자 당시 제주 최고의 갑부였던 만덕이 두 번에 걸친 흉년에 구휼미를 풀어 제주도민 상당수의 목숨을 구했다고 한다. 제주목사가 그 공덕을 조정에 보고하고 정조가 친히 상을 내리려 하자, 만덕은 하사품이 아니라 제주를 벗어나 궁궐을 보고 금강산 유람을 허(許)하여 달라는 청을 정조에게 올린다.

보통 정통성이 없거나 국민을 컨트롤하고자 하는 정부는 통신을 통제해 감청을 하거나 국내외 소식이 교류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외신이 들어오는 것도 막고 국내소식이 여과 없이 나가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특히나 사람이 밖에 나가서 해외문물을 직접 몸으로 익히고 나면 쓸데없이 비판세력으로 성장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백년대계의 인재양성을 위해 괜히 모험을 할 필요가 없어진다.

우리나라는 1989년 1월 1일 해외여행 자유화를 단행했다. 88올림픽 개최 이후 국제화에 눈을 뜨게 된 정부가 위로부터의 개혁을 벌인 것이다. 그전까지는 50세 이상인 국민에 한하여 200만원짜리 은행예금을 담보로 들어놓고 반공교육을 받은 뒤, 1년에 1번 나갈 수 있는 관광여권만 부여하다가 누구나 다 나갈 수 있게 바꾼 것이다. 체제의 자신감이 생긴 것이기도 하고 88올림픽 후 국제화라는 시대적 흐름을 제대로 수용한 것이라 할 수도 있다. 해외여행 자유화 직전인 1988년 약72만명에 불과했던 해외여행자 수는 2016년 약 2200만명에 육박하게 된다. 우리나라 인구증가를 감안하더라도 가히 경이적인 증가이다. '꽃보다 할배'라는 해외여행프로는 최고의 인기프로가 된 바 있다.

여행을 가게 되면 해외에서 돈을 쓰게 돼 있다. 호텔과 식사를 위해서도 지출을 하지만 집에 있는 처자와 부모님이 눈에 어려 사게 되고, 국내에서 못보던 물건들이 있어 지갑을 열고, 백화점보다 훨씬 싸니 지름신이 강림한다. 정부는 국내산업 보호를 위해 관세를 부과한다. 국내외 상품의 이동을 그냥 방임하면 보따리장수부터 기업형까지 등장해 국내산업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평균 10% 이상의 여러 가지 이름의 관세를 관세법에 따라 부과한다. 해외여행객에 대해서는 여행에서 사가지고 오는 휴대품에 대해서 면세범위를 정해주고 그 이상을 넘으면 관세를 부과한다. 이는 국내산업보호 외에 세수확보라는 두 번째 목표도 충족하고 조세정의에도 맞는 것처럼 보인다.

현재 우리나의 해외여행객은 600달러 이상의 물품을 사면 관세법상 면세범위를 초과하기 때문에 세관에 자신 신고를 해야 한다. 술 1병, 향수 60ml, 담배 200개비는 이 범위에 들지 않는다는 친절한 설명이 귀국시 제출해야 하는 '여행자휴대품신고서'에 있다. 그리고 신고서의 맨 밑에는 신고를 하지 않거나 허위신고의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물품유치, 몰수 등 불이익을 받게 된다고 붉은 글씨로 써 있다.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1989년엔 면세범위가 1인당 원화 30만원이었다. 환율이 가변적이니 1996년부터는 면세범위를 1인당 미화 400달러로 바꿨다. 너무 적다는 여론이 계속 터지자 2014년 9월에 600달러로 상향했다. 1989년 우리나라 1인당 GNP는 약 5400달러였다. GNP가 GDP로 바뀐 이후 2015년의 우리나라 1인당 GDP는 약 2만8000달러이다. 소득도 4배로 오르고 그에 상응해 물가도 올랐을 텐데, 면세한도는 200달러 오르고 말았다.

세상 이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비례의 원칙이 아닐까 한다. 경제규모가 커지고 소득이 늘면 자연적으로 소비가 늘어난다. GDP가 늘면 면세범위도 그와 비례해 늘리는 것이 논리적이지 않을까? 여행객 수는 그보다 훨씬 더 늘었다. 올해에도 600달러 어치를 넘는 휴대품을 가지고 오는 2000만명의 대한민국 국민 중 누구든 세관 검색대에서 걸리기만 하면 5년 이하의 징역을 받을 수도 있다. 세관검색대를 통과하는 10미터 남짓한 곳에서부터 항상 심장이 두근거리고 조마조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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