智樂弼樂 7. 광화문이 진짜 광화(光化)가 되려면!
서울 광화문에서 광화의 한자는 ‘光化’다. 왜 ‘광화(光化)’일까?
광장은 사람들이 늘 모이는 곳이다. 옛 아테네와 로마가 그랬듯 그들 일상의 모든 대소사가 광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 볼로냐에서는 독립 레지스탕스 정신을 기리는 행위가 어느 특정한 날에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365일 내내 이어지는 일상이요 생활이다. 더구나 기념벽은 시청의 벽에 있다. 그렇기에 그들은 친구들과 수다 떨며 맥주 한잔 마시다가도, 연인과 데이트를 하다가도, 직장을 오갈 때에도 늘 기념벽을 보면서 ‘자유를 지키기 위한 의지와 헌신의 숭고함’을 깨닫는다.
이 벽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듯 충격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 일제에 맞선 독립투사들의 정신을 잊지 말자는 기념물을 시내 중심에 세워놓은 도시가 있던가? 혹은 그 지방 출신 독립투사나 유공자들의 명단을 새긴 기념물이 있기나 하던가?
바로 이런 친일 짓거리에 대해 제대로 된 응징과 개선이 없었기에 이 나라에서 애국자 후손은 가난에 신음하고, 매국노와 협잡꾼 후손은 수많은 재산 위에 군림하며 떵떵거리며 산다. 이 나라는 말로만 ‘독립만세’를 외친다. 우리의 독립기념관은 큰맘 먹어야 가볼 수 있는 ‘외진 곳’에 위치한다. 유관순 열사의 고향에 세웠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독립운동을 유관순 열사 혼자 한 것은 아니다.
기왕 만들어 놓은 독립기념관이니 이제 와서 옮기기는 힘들다. 그러나 볼로냐처럼 시내 복판에 기념비나 기념판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필자가 말하려고 하는 핵심은 이것이다. 광화문에 독립유공자들의 명단을 새긴 기념판이나 기념비를 세우자는 것이다. 그 옆에 친일부역자들의 명단도 함께 새겨놓으면 금상첨화겠다! 그렇게 해서 굳이 먼 곳에 가지 않더라도, 생활 속에서 늘 독립정신을 기리고 역사를 기억하게끔 하자는 취지다.
광화문의 원래 이름은 ‘정문(正門)’이었다. 이 이름을 붙인 정도전은 “이 문을 닫아서 이상한 말과 기이하고 사특(邪慝)한 백성을 끊고, 이 문을 열어서 사방의 어진 이를 오도록 하는 것이 정(正)의 큰 것이다”라는 뜻을 남겼다.
광화문이란 이름으로 고친 것은 세종 때였다. 그 유래에 대해선 설왕설래가 있다. ‘광피사표 화급만방(光被四表 化及萬方)’ 즉, “빛이 사방을 덮고, 교화가 만방에 미친다”는 말에서 왔다는 해석도 있고, ‘왕의 큰 덕(德)이 온 나라를 비춘다’는 말에서 왔다는 설도 있다.
그 유래가 어떻든 광화문의 ‘광화(光化)’는 덕과 올바른 정기가 사방에 미치도록 만드는 ‘계몽(enlightenment)화’다. ‘광화’ 역시 사특한 말과 무리들이 백성을 해치치 못하도록 막는 일이다.
우리 백성들은 광화문에서 촛불시위를 통해 사특한 대통령과 그 일당들이 이 나라를 망치고 팔아먹는 일을 막아냈다. 따라서 광화문은 자유와 독립을 유지하기 위한 교훈과 각성의 마당, 민족 정기의 광장으로 진화해야 한다. 그게 바로 ‘광화’의 취지에 맞는 일이다.
볼로냐는 1237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농노제를 폐지한 곳답게 사회주의 좌파 성향이 강하지만, 국민소득이 4만 달러가 넘고 유럽연합에서도 가장 잘사는 도시의 하나다. 실업률도 가장 낮고, 여성 고용률도 이탈리아 평균보다 10% 이상이 높다.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와 2012년 그리스발 경제위기 때 지역 기업들은 노동자 해고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고, 부동산 투기란 발을 붙이지 못한다.
이 상당수가 400개가 넘는 지역 협동조합의 강력한 연대 덕택이지만, 나라를 팔아먹고 국민 혈세를 빼돌리며 노동자들을 등치는 사이비 자본주의와 결탁한 사특한 모리배들이 설칠 수 없게 사회 정의가 살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사회 정의의 힘은 바로 시청 벽에 생생하게 살아 있어 매일 마주치는 레지스탕스 기념판에서도 나온다.
광화문에 독립유공자 기념판을 만들자. 그래서 각종 마취기제가 역사의 교훈을 망각하게끔 유혹하지 못하도록 하자. 망각의 역사는 곧 굴종의 역사다. 이 기념판을 통해 다시는 사특한 무리들이 문을 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나라 사랑의‘광화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