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때 빨치산토벌대장 차일혁은 맹호(猛虎) 같은 전투지휘관으로서 용맹뿐만 아니라 인명(人命)을 누구보다 중시함으로써 비록 총부리를 겨눈 적일지라도 함부로 죽이지 않았고, 전란(戰亂)을 당해 곤란을 겪고 있던 피란민과 전쟁고아 등 전쟁피해자들의 편의를 최대한 제공하는 휴머니즘 정신도 넉넉히 보여줬다. 또한 전쟁의 와중에서도 차일혁은 민족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보호하고, 전통문화를 창달하는데도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차일혁은 전투 중 저항력을 잃고 무장이 해제된 빨치산 포로나 귀순자에 대해서도 관용과 포용력으로 감싸면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배려하는 뜨거운 민족애와 측은지심(惻隱之心)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차일혁이 타계한지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세인(世人)들이 잊지 않고 유난히 존경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차일혁에 대한 전투기록들은 국가기관의 기록물(記錄物)로부터 언론, 영상, 수기(手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국가기록으로는 국방부와 육군본부 그리고 내부무 치안국(후에 치안본부), 전북지방경찰청의 자료가 있고, 언론 및 영상물로는 KBS TV와 MBC TV의 다큐멘터리, 조선일보와 전북일보의 출판물과 기사, 그리고 참전자 및 개인연구자들의 수기 및 연구물들이 있다.
내무부 자료로는 치안국에서 1973년에 발행한『한국경찰사, 1948.8-1961.5)』와 뒤이어 치안본부에서 1985년에 발행한 『한국경찰사, 1961.5-1979.10)』가 있다. 그러다 한참 세월이 지난 뒤인 2008년에 경찰종합학교에서는 『차일혁 총경일대기; 한국 경찰의 혼』를 펴냈고, 전북지방경찰청에서는 2012년에 『전라북도 호국경찰사』를 발간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참전경찰유공자회에서도 2003년에『警察戰史: 아 살아있다! 대한민국 경찰의 혼』을 펴낸바 있다.
차일혁의 보신병을 오랫동안 수행했던 김규수가 2000년에 발간한 『6·25동란 중 실화투쟁기 옹골연부대: 마지막 남은 유격대원의 실전담』과 이용하가 1994년에 쓴 『태안사별곡(泰安寺別曲)』도 6·25전쟁시 경찰의 전투 활동과 빨치산토벌대장 차일혁을 이해하는데 여러모로 도움을 주고 있다. 이것들은 개인이 쓴 수기 형태의 글들이다.
특히 차일혁의 전투기록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빨치산토벌대장으로 싸웠던 차일혁 자신이 토벌작전을 수행하며 기록했던 것들이다. 이른바 이순신의 난중일기(亂中日記)에 버금가는 차일혁의 ‘진중일기(陣中日記)’가 바로 그것이다. 차일혁은 빨치산 토벌대장으로서 매 작전시마다 전투상황을 비롯하여 전투경과 및 결과를 ‘진중기록(陣中記錄)’으로 상세히 남겼다.
차일혁의 기록과 때를 같이하여 《전북일보》에서도 토벌작전을 벌이고 있는 차일혁 부대에 종군기자를 파견하여, 차일혁 부대의 토벌상황을 게재해 전북도민은 물론이고 전 국민들에게 알리게 됐다. 이른바〈토비(討匪) 300일-진중기(陣中記)〉이다. 그 과정에서 종군기자로서 전투지역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취재했던 전북일보의 김만석(金萬錫) 기자의 활약이 그 누구보다 컸다. 전북일보에서는 차일혁이 지휘한 제18전투경찰대대가 창설된 1950년 12월 15일부터 신문에 연재함으로써 독자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차일혁의 진중기록이 빛을 보게 된 것은 그의 아들 차길진(車吉辰)에 의해서다. 차길진은 선친(先親) 차일혁이 남긴 ‘진중기록’을 토대로 1990년에《빨치산 토벌대장 차일혁의 수기》를 발간했다. 이 책은 마치 ‘차일혁의 자서전(自敍傳)’과 같은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차길진은 이 책을 쓰기 위해 10년간에 걸쳐 선친 차일혁의 진중기록에 나온 전투지역을 빠짐없이 답사하며, 관련된 분들의 증언을 듣고, 선친 차일혁이 쓴 것이나 거의 다름없을 정도의 수준 높은 ‘차일혁의 수기’를 펴냈다.
차길진은 이후에도 아버지의 기록을 보완하는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차길진은 2011년에 개정증보판을 출간한데 이어, 곧바로 『또 하나의 전쟁』이라는 또 다른 이름의 수정증보판을 내게 됐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차길진은 국가가 해야 될 일을 개인의 신분으로 수행했다고 할 수 있다. 차일혁은 전투도 잘했지만, 그 기록들을 잘 보존하고 그 연장상선에서 차일혁의 전공을 누락됨이 없이 책으로 발간한 일등공신은 그의 아들 차길진의 차지가 될 것이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경찰과 유관기관에서도 차일혁 활동과 업적에 대해 차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경찰에서는 학술세미나 및 저술활동을 통해 경찰의 활동 및 차일혁의 전시역할에 대한 재조명 작업을 했다.《조선일보》에서는 2003년에 6·25전쟁시 경찰이 수행한 전투를 중심으로 한 ‘경찰사(警察史)’를 발간하여 주목을 받았다(대한민국참전경찰유공자회 편, 『警察戰史: 아 살아있다! 대한민국 경찰의 혼』, 월간조선사, 2003). 경찰청도 2005년에 차일혁에 관한 직접적인 연구는 아니지만, 〈한국경찰 60년사의 쟁점과 과제〉라는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차일혁의 연구에 대한 붐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2008년부터였다. 먼저 경찰교육원에서는〈호국경찰의 역할 재조명〉이라는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개최하여 차일혁에 대한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게 했고, 경찰종합학교에서는 2008년 ‘차일혁 총경의 일대기’를 담은 단행본(『차일혁 총경일대기; 한국 경찰의 혼』)을 출간하여 차일혁 연구의 저변을 확대하는데 기여했다. 그러다 2014년 9월 26일 ‘차일혁기념사업회’ 주관으로〈차일혁의 6·25전쟁 후방전투와 해방 후 건국기·전쟁 후의 활동 재조명〉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로써 차일혁은 뒤늦게나마 역사적 인물뿐만 아니라 학문 연구의 대상으로서 진일보하게 됐다.
한편 차일혁에 대한 학문적 성과와 궤(軌)를 같이하여 방송과 언론에서도 차일혁의 활동과 업적에 대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1991년과 1992년에 걸쳐 국내에서 인기리에 방영됐던 MBC-TV의 36부작 주말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에서 극중 주인공 장하림의 모델로 ‘빨치산 토벌대장 차일혁’이 선정되어 주목을 끌게 됐다. 이때부터 차일혁의 영상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뿐만 아니라 차일혁의 독립군 및 빨치산토벌대장으로서의 활약이 국내 TV에서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본격적으로 방영됐다. KBS-1TV에서는 2013년 3월 1일 3·1절 특집으로 차일혁이 해방공간(解放空間)에서 일제의 악질형사를 처단한 것을 담은〈누가 사이가 시치로를 쏘았나?〉를 방영해 항일독립투사 차일혁의 일제청산 문제를 심층 있게 다루었다.
특히 정부의 국영방송인 KTV에서도 2011년 3월 4일,〈경찰, 인권보호의 새 지평을 열다〉를 통해 ‘인권경찰’ 차일혁의 인간적인 면모를 여과 없이 그렸다. KBS-1TV에서도 2011년 6월 23일, 전 국민의 문화교양 프로그램인 ‘역사스페셜’에서〈포화(砲火) 속에서 문화재를 지킨 사람들〉를 통해 ‘문화경찰 차일혁’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내 시청자들로부터 커다란 호평을 받았다. KBS-1TV에서는 2012년 6월 28일에 방영된 역사스페셜에서〈빨치산 토벌대장 차일혁의 기록: 또 하나의 전쟁〉이라는 제목으로 빨치산 토벌작전을 수행했던 차일혁의 애국적 전투 활동을 현장감 넘치게 그려냈다. 이외에도 경찰종합학교에서는 〈살아있는 한국경찰의 혼〉과 〈경찰 차일혁, 그 불꽃같았던 삶: 경찰혼 차일혁 일대기>을 영상으로 제작하여 교육용으로 활용하고 있다.
언론에서도 차일혁의 전투활동에 대해 침묵하지 않았다. 언론에서는 6·25전쟁발발 50주년인 2000년도를 맞이하여 대대적인 행사를 했다. 그 중에서도 《조선일보》에서는 창간80주년을 맞이하여 특별기획전〈세기를 넘어서-21세기 한민족 대항해 시대〉를 개최했는데, 이때 조선일보에서는 6·25전쟁시 ‘대한민국을 지킨 18인’을 선정하고 경찰관으로는 유일하게 차일혁을 뽑았다. ‘18인의 인물’ 중에는 이승만(李承晩) 대통령과 트루먼(Harry S. Truman) 미국대통령 그리고 맥아더(Douglas MavArthur) 장군과 백선엽(白善燁, 육군대장 예편, 육군참모총장·합참의장 역임) 장군 등 쟁쟁한 인물들이 포함됐다.
정부에서도 차일혁의 전투공적을 높이 평가하고 그에 대한 조치를 취했다. 2008년 문화재청에서는 전시 화엄사 등 문화유산을 보호하고, 영화〈애정산맥〉제작에 참여하고, 학도병가와 토벌가 등 노래 말을 짓고, 명창 임방울 등의 수궁가를 보전하는 등 문화보존 및 창달에 크게 기여한 공로로 ‘문화경찰 차일혁’에게 보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경찰로서는 받기 어려운 훈장이었다. 이어 2013년에는 국가보훈처로부터 ‘6·25전쟁 영웅’으로, 2014년 전쟁기념관으로부터는 ‘호국의 인물’로 선정됐다. 때늦은 감이 없지 않았지만, 뒤늦게나마 차일혁이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 공로를 인정받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차일혁에 대한 보다 심층적이고 체계적인 학문적 연구가 이루어져야 될 것이다. 정부, 특히 경찰에서는 이들 국가기록과 언론 및 개인자료를 통해 차일혁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도함으로써 6·25전쟁시 경찰의 역할과 활동을 재조명해야 할 것으로 사료(思料)된다. 민족의 성웅(聖雄)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연구를 통해 임진왜란(壬辰倭亂) 연구가 보다 더 가열(加熱)차게 이뤄졌듯이, 빨치산토벌대장 차일혁에 대한 보다 체계적이고 심층적인 연구를 통해 6·25전쟁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차일혁의 연구를 통해 국민들의 6·25전쟁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도 크게 달라질 것으로 내심 기대해 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