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부품 제조회사에서 일하는 장모씨(30)의 휴대전화는 24시간 ‘업무중’이다. 출근 전부터 퇴근 후까지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업무지시 ‘카톡’ 때문이다. 장씨는 “주말에도 ‘급한 일이 생겼다’면서 출근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도 한다”며 “이제는 언제부터 업무시간이고, 언제부터 개인시간인지의 개념조차 모호해졌다”고 하소연했다.
#미디어콘텐츠업계에 종사하는 김모씨(32)는 쉬는 날엔 일부러 ‘업무 카톡’을 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가끔은 상사로부터 ‘카톡 좀 챙겨보라’는 문자나 전화를 받기도 한다. 김씨는 “‘중요 업무’라고 해서 카톡을 봐도 그렇게 급한 업무가 아닌 경우도 많다”면서 “상사들은 그 시간이 아니면 (업무를) 물어볼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KT가 2015년 8월 공개한 ‘올레 기가 LTE : 배터리편’ 광고에는 비오는 퇴근길 직장 상사로부터 온 모바일 메시지를 확인하는 남성이 나온다. ‘김 대리, 파일 빨리!’라는 상사의 메시지를 확인하는 순간 남성의 휴대전화 배터리는 1%를 가리킨다. 그 순간 남성은 ‘폰이 죽으면, 나도 죽겠지?’라는 독백을 남긴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실시한 근무혁신 실태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74%가 퇴근 후에도 업무지시와 자료요청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 중 60%가 이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한국노동사회연구소는 지난해 6월 개최한 노동포럼 ‘카카오톡이 무서운 노동자들’에서 직장인 퇴근 후 스마트폰으로 업무를 보는 시간은 하루 평균 1.44시간, 일주일 평균 11.3시간에 달한다고 밝혔다. ‘업무 카톡’에 시달리는 직장인이 늘어나면서 메신저를 통해 전달되는 업무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을 뜻하는 신조어인 ‘메신저 증후군’이라는 말까지 생겼을 정도다.
모바일 메신저를 통한 직장인의 휴식권 침해가 사회적 문제로까지 대두되자 정부가 직접 대책 마련에 나선다. 고용노동부는 퇴근 후 ‘카톡 업무지시’ 등 근로시간 외 업무지시 제한 등을 포함, 근로자의 휴식권 보장 및 일·가정 양립을 위해 다양한 대책을 마련해 추진할 계획이라고 3일 밝혔다.
퇴근 후 업무 연락 자제는 고용부가 지난해 마련한 ‘근무혁신 10대 제안’에도 포함돼 있다. 관리자의 인식 개선 및 행동 변화를 통해 퇴근 후 업무 연락을 자제시키겠다는 내용이다. 고용부는 지난 달 발표한 워크북에서 “간단한 연락은 상대방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을 개선해야 하고, 근무 외 시간에 직원이 회사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부 대기업과 공공 부문에서는 이미 직원들의 퇴근 후 사생활을 최대한 보장하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CJ는 올해 6월부터 ‘퇴근 후, 주말에 문자 등 업무 지시 금지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기업혁신방안 중 하나로 ‘쉴 때 쉬고 일할 때 일하자’는 취지다. 현장에서의 반응도 뜨겁다. CJ 계열사에서 근무 중인 윤모씨(30)는 “업무와 사생활이 분리되니 업무 스트레스가 크게 감소했고, 업무시간 내에 모든 업무를 끝내려 하다 보니 업무 효율도 극대화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계열사에 근무하는 최모씨(34)도 “가족과의 저녁식사나 친구와의 저녁약속을 할 수 있게 됐다”며 기뻐했다.
이밖에도 경기도 광명시는 업무시간 외 카카오톡 금지, 퇴근 10분 전 업무지시 금지, 직원인권 존중 등의 내용이 담긴 ‘직원 인권보장 선언’을 발표해 이행 중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지금도 근로시간 외 스마트기기 등을 통한 과도한 업무지시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경제단체와 함께 ‘퇴근 후 업무연락 자제’ 캠페인 등을 추진 중”이라며 “전문가 용역과 함께 프랑스의 ‘로그오프법’ 등 해외 사례들을 검토하며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