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진 기자 =독일 베를린을 방문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이 2년쯤 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한국과 미국의 전문가들이 예상했지만, 어제 발사한 미사일은 거의 ICBM에 근접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메르켈 총리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 기술 발전이 어디까지 진전되었는가"라고 묻자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현재의 수준도 문제이지만 발전의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빠르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며 이같이 답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 미사일의) 사거리는 늘어났지만 정확도와 핵탄두 탑재 가능 여부는 미지수"라며 "이 역시 2~3년 후쯤 가능할 것으로 판단할지 모르지만 지금 속도로 보면 안심할 수 없는 심각한 상황이다. 미국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시점에서 제일 큰 걱정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다.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도발이고, 국제적 압박과 제재가 있어야 한다"며 "G20 정상회의는 경제 문제를 논의하는 회의이고 이미 주제가 정해져 있기는 하지만, 북한 미사일의 심각성을 고려하여 회원국의 공동결의를 담아내기 위한 의장국으로서의 관심을 보여주면 고맙겠다"고 강조했다.
메르켈 총리는 “G20의 모든 국가가 동의한다면 최종 공동성명의 채택도 가능하겠지만 현실적으로 쉬운 일은 아닐 것"이라면서도 "모든 회원국들이 이 문제에 관하여 논의했다는 내용과 UN결의 및 그 해당조치에 따르면 된다는 정도의 내용을 의장국 성명에 기술적으로 포함시키는 것은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화답했다. "G20에서 북한 문제에 대해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는 "내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날 예정인데 빠른 반응이 자칫 위험한 상황으로 흐를 수도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 볼 생각"이라고 언급했고, 문 대통령은 "그점에 있어서는 저도 생각이 같다. 북한의 도발이 높아진 만큼 국제사회의 압박이 강해져야 하지만 이 제재와 압박이 북한을 완전한 핵 폐기를 위한 대화의 테이블로 이끄는 수단이 되어야 하고 평화 자체를 깨트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지금처럼 긴장이 높아질수록 우발적인 이유 하나로도 자칫 위험한 상황이 올 수 있으므로 제재와 압박을 높이되 상황 관리도 함께 필요하다"며 "중국이 북한에 대해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니 중국이 지금까지 역할에 더해서 조금 더 기여해 주기를 기대하고, 내일 시진핑 주석을 만나 이 부분에 관해 정말 진솔하고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눠보겠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두 정상의 만찬회동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이날 만찬 회담은 메르켈 총리가 끊임 없이 질문을 던지고 이에 문 대통령이 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등 메르켈 총리가 문 대통령과 한국에 대한 관심 정도를 가늠해볼 수 있는 자리였다고 한다.
실제로 메르켈 총리는 한국의 탄핵 상황을 거론하며 '문 대통령을 당선시킨 국민의 기대는 부정부패 척결, 경제성과, 균형발전 등으로 생각하는데 문 대통령의 생각은 어떠냐' '북한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는 게 타당하냐' '북한의 핵·미사일 기술발전 정도가 어느 정도인가' '한국이 파리기후협약을 지지할 것인가' 등의 질문을 던지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문 대통령의 생각을 궁금해했다.
문 대통령도 "메르켈 총리께서는 마트에서 직접 장을 볼 정도로 국민과 소통하는 리더십을 보여주시며 국민의 지지와 존경을 받고 계신데 직접 뵙게 되니 무척 기쁘다"고 화답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당초 70분이 예정됐던 만찬 시간도 90분으로 늘었다.
박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은 만찬에 앞서 메르켈 총리와 함께 의장대를 사열하고 공동 언론 발표를 했으며, 이어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만찬회담이 진행됐다"고 밝혔다.
두 정상이 만찬회담에 앞서 공동 언론발표를 하는 특이한 형식을 취한 것도 회담이 밤늦게 끝나기 때문에 독일 언론과 국민을 배려한 차원이었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설명했다.
이날 밤 두 정상이 한독정상 만찬회담을 끝내고 환송장에 나오자 총리실 담장 너머에 모여 있던 교민들이 문 대통령을 연호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문 대통령은 여느 때처럼 이를 그냥 넘기지 않고 담장 쪽으로 100여m를 걸어가 교민들과 악수를 하며 격려했고, 메르켈 총리도 문 대통령을 뒤따라가 함께 인사를 나누면서 이국땅에서의 대통령과 교민의 해후 장면을 흐뭇한 미소로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