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미국 채권 대량 매입’과 ‘대(對)미국 대규모 무역흑자’는 중국의 경제적 입김을 강화시켰다. 그러나 달러가 폭락하면 중국도 큰 손실을 볼 수밖에 없는 특이한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이는 앞으로도 양국 경제관계가 서로 견제하면서도 협력하고 공생해야하는 형태를 띠게 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지난 30년간 진행된 중국의 개방정책과 미·중의 경제관계 및 역학관계를 도식화하면, ‘중국의 개방 → 미국 자본의 대(對)중국 투자 → 중국 상품의 대(對)미국 수출 → 미국의 대(對)중국 무역적자 → 중국의 미국 채권 대량 매입 → 중국의 G2 위상 강화’와 같다.
특히 중국의 미국 채권 대량 매입은 미국의 대규모 무역적자 가운데 상당 부분이 중국에 의해 매워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이 대미 수출 흑자 자본으로 미국 국채를 사들이고 있다. 이것은 채권 수익률을 보고 매입한 게 아니다.
중국이 미국 국채를 많이 매입하면 할수록 미국에 대한 경제적 이니셔티브가 강화된다. 미국 입장에서는 자국의 국채를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는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는 양국의 의존관계가 더욱 깊어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서로가 서로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덫에 걸린 셈이다.
긴밀하게 얽히고설킨 미국과 중국의 경제관계가 한국 경제에 예기치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지는 다분하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등 한반도를 둘러싼 민감한 변수들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미국과 중국의 관계 변화를 예의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만약 중국이 미국 국채를 대량 내다 판다면?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지난 4월 말 3천766억 달러로 7개월 만에 최대를 기록했다. 지난해 9월 3천777억7천만 달러에 이어 역대 두 번째 규모다.
지난해 12월, 세계 1위의 외환보유국이었던 중국이 일본에 1위 자리를 내어주게 된 것은 중국의 외환보유고가 지난 1년 동안 대폭 감소했기 때문이다. 3조2,300억 달러에서 3조110억 달러로 2,200억 달러나 감소했다. 감소 이유는 중국이 자국이 보유한 미국 국채를 대량 내다 팔았기 때문이다.
중국이 미국 국채를 대량 매도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미국에 대한 경제 보복을 위해, 다른 하나는 위안화 환율 안정을 위해서다.
지금은 중국과 미국 관계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공조하는 분위기지만 관계가 언제 살얼음판 위를 걷게 될지 모를 일이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경제 제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당선 이후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고, 중국산 제품에 대해 최대 45%의 고율관세를 부과하겠다며 중국을 자극하기도 했다. 대만 총통과 통화하며 중국이 중시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흔들기도 했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공조 필요성으로 ‘중국 역할론’을 강조하며 미국이 한발 뒤로 물러서긴 했지만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경제 제재 불씨는 여전히 살아있다. G2로 불릴 정도로 비약적으로 성장한 중국이 ‘넘버 원(No.1)’ 자리를 넘보도록 그저 우두커니 지켜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경제 제재를 취할 경우 중국은 당연히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때 중국이 취할 수 있는 조치가 바로 ‘미국 국채 팔아 치우기’다. 미국에 대한 경제 보복이다. 중국이 미국 국채를 대량 매도하면 미국으로서는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중국이 미국 국채를 대량으로 쏟아내면 미국 금융시장에 충격을 주게 되고,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리면 달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돼 달러가 약세를 보이게 된다. 일단 ‘달러 흔들기’에 성공하는 것이다. 내수를 회복시키고 수출을 살리고자 하는 트럼프에 ‘한 방’을 제대로 먹이는 격이다.
또 물량이 풀리면 국채 가격은 당연히 떨어지고 국채 금리는 인상한다. 채권은 가격과 금리가 반대로 움직이는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국채 금리 상승이 기준금리 상승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점이다. 기준금리를 점진적으로 조정하고 싶어 하는 미국에 금리 인상을 압박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 금리인상 압박’ 전략이 먹혀들어가는 것이다.
물론 중국의 미국 국채 대량 매각이 자충수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자율이 높아진 미국 국채에 사람들이 더 몰리면 달러 강세가 계속되고 위안화는 약세 국면의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게 된다. 또 중국이 보유하고 있는 나머지 미국 국채 물량의 가격 역시 하락이 불가피하고, 중국에 투자된 해외자본들의 엑소더스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
미국의 대 중국 경제 제재와 이에 따른 중국의 대 미국 경제 보복이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은 이제 호락호락한 대상이 아니다. 미국도 중국을 도외시할 수 없는 입장이다. 그렇다고 앞서 언급한 일련의 시나리오가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그러나 ‘경제 보복’ 보다 더 설득력 있는 것은 ‘위안화 환율 방어’다.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위안화 가치가 추락하면 위기의식을 느낀 중국이 달러 보유고를 헐어 위안화 가치 하락을 막는다는 논리다.
◇한국에 미치는 영향, 우리는 어떻게?
앞으로 10년 쯤 후에는 중국이 미국에 버금가는 경제대국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과 중국은 상호 알력 관계에 있다. 세계 경제 헤게모니를 두고 경쟁해야 할 대상이다. 그러면서도 상호 의존적인 관계다. ‘봉쇄와 포섭’이라는 모순적인 정책을 동시에 병행해야 할 처지에 있는 것이다.
중국의 현 체제를 떠받치고 있는 경제적 성공의 최대 기여자는 미국과 미국 시장이다. 대신 미국 경제는 중국의 값싼 수출품과 미국 채권 매입으로 미국 재정 적자를 메워주는 막대한 중국 보유달러에 대한 의존도가 심해지고 있다.
지구는 긴밀하게 연결된 공동체다. 어느 한 곳에서 일어난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뉴욕에 태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론인 ‘나비 효과’는 기상학을 넘어 경제 분야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오히려 경제 분야의 연관성은 더 가시적이고 실질적이며 동시적이다. 크던 작든 다른 나라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의 미국 국채 보유와 매각, 또 이와 연관된 미국의 기준금리의 변화는 돌고 돌아 결국 우리의 주머니 사정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지난 3월 미국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다. 이제 미국 기준금리는 1% 수준이다. 현재 우리나라 기준금리가 1.25%니까 우리나라와의 차이도 불과 0.25%포인트에 불과하다.
미국 기준금리가 1% 수준이 된 건 세계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말 실질적인 제로금리 정책을 시행한 지 8년 만이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은 2019년까지 기준금리를 3% 수준으로 올릴 것이라고 한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리면 다른 나라도 덩달아 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변동시키는데도 가만히 있으면 환율이 요동친다. 수출경쟁력이 떨어지며 외국자본이 유출되는 등 경제전반에 큰 혼란을 초래한다.
지난 3월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리자마자 중국은 0.1%, 홍콩·사우디·바레인·UAE(아랍에미리트) 등은 0.25%씩 기준금리를 올렸다.
아직 경기침체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는 한국경제는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금리를 올리자니 가계 빚이나 부동산 가격이 걱정되고 가만히 있자니 외국자본 유출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금리변동에 따른 경제의 불확실성이 증대되고 있다.
이준서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금리인상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시대적 대세가 됐으며, 이런 상황에서 현명한 대처는 급격한 인상을 피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기업입장에서도 가능한 차입경영을 지향해야 하는 것이 좋지만 불가피하게 차입이 필요하면 서두르는 편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미국 국채 대량 매입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이처럼 깊기도 넓다. 중국의 목표는 명확하다. 글로벌 시장에서 위안화를 더 매력적으로 만들기 위해 위안화 가치를 올리는 것이다. 중국의 미국 국채 매입과 매도도 그런 큰 맥락에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중요한 건 중국의 영향력이 그만큼 커졌다는 것이고,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최종적인 답은 워싱턴과 베이징에 있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다. 한·중 수교 25주년을 맞은 우리의 대처도 시대와 상황의 흐름에 발맞춰 기민해져야 한다. 그게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