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임대근 한국외대 교수의 베이징국제영화제 참관기

2017-04-2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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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초청 ‘제로’…일본·인도가 대체재 역할

임대근 한국외대 교수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지난 16일 개막한 베이징국제영화제에서 덴마크 영화감독 빌리 아우구스트의 영화 상영과 감독과의 대화가 진행됐다. 베이징의 한 시민이 베이징영화대학 캠퍼스에 걸린 영화제 포스터 앞을 지나가고 있다. [사진=임대근 교수 제공]
 

베이징은 생각보다 쌀쌀했다. 베이징 서우두 국제공항(北京首都國際空港)에 내려 하늘을 보자 희뿌연 먼지가 자욱했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한·중 관계를 상징하는 듯 했다. 올해로 일곱 번째를 맞은 베이징국제영화제에 참석하는 길이었다. 지난 16일부터 이틀간 베이징에 머무르면서 영화제를 둘러봤다.
오후 늦게 도착한 탓에 개막식은 TV 생중계로 지켜봐야 했다. 영화제의 꽃인 레드카펫 행사에는 중국과 일본, 인도, 세르비아 등에서 온 감독과 배우들이 등장했다. 물론 가장 많은 수는 중국이었다. 눈길을 끌었던 건 여러 팀의 경극영화 배우와 스태프였다. 경극영화는 말 그대로 중국 전통 연극인 경극을 영화화하는 경우다. 중국영화의 ‘본토성’을 잘 나타내는 특수한 장르다. 영화제가 ‘본토성’과 ‘국제성’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흔적이 역력했다.

그런 고민을 눈치 채기라도 한 듯, 개막식 무대에 오른 에밀 쿠스트리차 세르비아 감독은 “세계는 중국을 더 이해하고 중국은 세계를 더 포용해아 한다”고 언급했다. 한한령(限韓令)으로 인해 한국 영화가 한 편도 초청을 받지 못한 상황이 겹쳐지면서, 적어도 우리에게는 의미심장한 발언으로 해석됐다.

한국 영화는 2011년 시작된 영화제부터 꾸준히 참석해 왔다. ‘시’, ‘님은 먼 곳에’ 등 8편이 상영된 1회부터 지난해까지 한국영화와 스타들의 참석은 아시아 영화의 일부로서 국제화와 본토화의 중간자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알려진 대로 올해는 영화제 사상 최초로 한국영화는 물론 감독이나 배우 등 한국 관계자들이 전혀 초대를 받지 못했다.

베이징국제영화제는 중국 정부가 개최하는 ‘관변’ 영화제다. 중국 영화 정책을 총괄하는 국무원 산하 부처인 ‘신문출판광전총국’이 주최하고, 베이징시 정부가 주관한다. 태생적으로 중국 당정의 의도에 배치되는 결정을 할 수 없는 구조다. 한국영화를 배제한 건 이들의 공식 결정이다. 하지만 나는 영화제 관계자들의 속내가 궁금했다.

이튿날은 주로 ‘주목할 만한 미래’(注目未來·Forward Future) 섹션이 열린 베이지영화대학에 있었다. 아침부터 시작된 포럼에서 ‘한국영화의 관객성’을 주제로 발표했다. 모두 9명이 발표를 맡았는데 주로 중국 학자와 평론가들이었고 외국인은 미국 남캘리포니아대학의 스탠리 로즌 교수와 나, 이렇게 둘이었다.

전부터 안면이 있던 스탠리 로즌 교수는 먼저 나에게 “이번에 한국영화가 하나도 초청받지 못했다던데”라며 말했다. 나는 “그러게 말입니다. 왜 그러는지…….”라며 짐짓 말끝을 흐렸다.
그러자 로즌 교수는 단호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정치적 문제가 영화 선택을 결정하는 이유가 되면 안 됩니다.” 로즌 교수는 주로 영화와 정치의 관계를 연구해 온 학자여서 짧은 한 마디의 무게는 더 크게 다가왔다.

포럼 중간에 만나는 이들과도 한국영화를 주제로 말을 걸었다. 하지만 지나고 생각하니 내게 그 말을 먼저 꺼낸 중국인은 없었다. 베이징영화대학 학생들은 “아쉽다”면서도 더 이상 깊은 얘기를 잇진 않았다. 학자들은 주로 “당국의 결정이라 우리도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베이징에 오기 전만 해도 ‘조심하라’는 당부를 많이 듣던 터였다. 사드 문제로 한국인에 대한 감정이 매우 좋지 않으니, 가능하면 한국말을 쓰지 말고 외출할 때도 준비를 단단히 하라는 것이었다. 사뭇 긴장한 채로 사람들을 만났지만, 주로 학자와 영화인들이어서 그런지 이 문제로 정서적 반감을 보인 경우는 없었다.

오히려 “시간이 가면 해결될 테니 너무 염려하지 말라”는 기조가 더 강했다. “이슈가 터질 때마다 중국의 타깃은 달라진다”고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영화가 빠진 공백은 주로 일본과 인도가 메워주고 있었다. 특히 일본영화의 역할이 작지 않았다. 코미디 장르로 유명한 일본 미타니 코키 감독은 특별전을 통해 “희극으로 시작해 감동으로 끝나는 정말 대단한 감독”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그동안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 분쟁 등으로 인해 일본영화가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데 비하면 큰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사실 지난 1월 ‘주목할 만한 미래’ 포럼에 초청받았을 때만 해도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베이징국제영화제가 한국영화 초청을 거부했다는 소식이 들려온 뒤로 나 역시 영화제 참석이 쉽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들었다. 그러나 포럼 발표 뒤 중국 청중의 반응은 그런 우려를 말끔히 씻어줬다.

한국영화에 대한 호기심은 여전했다. 수준 높은 질문들이 이어졌고, 서명을 부탁하거나 같이 사진을 찍자는 이들이 줄을 설 정도였다. 한 시나리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들고 와서 ‘인증샷’을 남기기도 했다. 중국 당국의 정책 방향이 영화계 민심과 적잖이 결을 달리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식 행사를 모두 마치고 꽤 늦은 시간, 나를 초청한 오랜 친구인 베이징영화대학 교수에게서 연락이 왔다. 영화제 전체 일정을 함께 하지 못하고 부득이 다음 날 돌아와야 하는 상황임을 알고 있었기에 작별 인사를 건네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오랜만에 회포를 풀면서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눴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친구는 “사실 너를 초청하기는 했지만, 영화제가 가까워 올수록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고 속이야기를 꺼냈다.

그 ‘어려움’이란 게 어떤 성질의 것인 줄 잘 알고 있었기에 더 캐묻지는 않았다. 이런 상황이 사실 한국과 중국 모두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서로가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한국으로서는 중국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 계기가 된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노력은 더 수준 높은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돼야 한다.

서우두 공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올랐다. 그러나 공항 혼잡으로 인해 무려 세 시간 가까이 기내에서 대기해야만 했다. 영화제를 끝까지 참관하지 못한 미련 때문에 발목이 잡힌 것이었을까. 창밖으로 내다 본 하늘은 먼지가 살짝 걷히고 점점이 푸른빛을 보여주고 있었다.

정리=김봉철 기자 nice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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