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과학기술의 총체 '수원화성'…봄나들이 장소로도 제격

2017-04-10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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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4년 착공해 1796년 완공…성곽 건축기술 집대성

지난해 10월 9일 펼쳐진 수원화성방문의해 기념 2016 정조대왕 능행차 공동재현행사에서 정조대왕 역을 맡은 참가자가 경기도 수원시 장안문을 지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아주경제 박상훈 기자 =벚꽃이 피는 등 봄나들이 계절이 되며 수원화성에 대한 누리꾼들의 관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봄꽃의 절경을 즐기면서 동시에 조선시대 과학기술의 총체를 한자리에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수원화성은 조선 후기 정조가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 묘를 화성 현륭원으로 옮기면서 배후 도시 기능을 하도록 만든 계획도시로, 1794년 착공해 1796년 완공했다. 
수원화성은 돌로 쌓은 높이 5~8m, 둘레 5744m 등 조선왕조를 통틀어 가장 큰 규모의 건축사업이었으며, 단순한 방어기능에 그치지 않고 백성들이 자연스럽게 도시를 형성할 수 있도록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구조로 지어졌다. 군사뿐만이 아니라 민간이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도록 성문을 만들고, 물산의 유통을 위해 성 안팎으로 상업시설을 만든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수원화성의 설계와 건축에는 중국·일본·유럽 등 18세기 동서양의 성곽 양식이 적용됐다. 실제로 지난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위원회는 수원화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며 "동서양 군사시설 이론을 잘 배합한 독특한 성으로 방어적 기능이 뛰어나다"고 평가한 바 있다.

북쪽 수문인 화홍문과 그 옆에 자리한 방화수류정은 수원화성 내 여러 명소 중에서도 특히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힌다. 화홍문은 금강산, 묘향산, 약산 등대, 명사십리 등과 전국 승지8경(勝地八景)에 포함됐으며, 대한제국 시기 1원짜리 지폐에 등장할 정도로 유명세를 탄 곳이다.

화홍문을 만들면서 그 옆에 '용연'이라는 연못을 팠는데, 연못 위 작은 봉우리에는 누각을 세웠다. 조선의 시인들은 큰 비가 내리고 난 뒤 화홍문의 무지개 수문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를 가리켜 '화홍관창'(華虹觀漲)이라고 일컬었다고 전해진다. 방화수류정은 주변 경관과의 조화가 뛰어나 조선 후기 건축미를 대표하는 곳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역사·건축학적 의미도 곱씹을 만하지만 경기도청 인근과 팔달산, 수원화성 등으로 이러지는 200여 그루의 벚꽃 나무는 해마다 나들이객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경기도는 최근 도청 운동장과 청사 외관 도로변에서 '2017 경기도청 벚꽃축제–낭만산책'을 개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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