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에서는 집단민원으로 홍역을 치른 적이 있다. '연말정산 대란'과 '전안법(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 개정' 논란, '출산지도' 등 정부가 발표하는 정책에 따라 민원발생도 요동친다. 적게는 몇 백건, 많게는 수만건의 민원이 동시에 접수돼 이를 담당하는 부서에서는 부서장을 비롯한 전 직원들이 항의전화 응대와 온라인, 서신 민원처리에 평일 야근은 물론 주말을 반납해야만 한다. 국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정책을 시행할 때는 더욱 그렇다.
이런 현상은 정부와의 소통이 활발하고 국민들이 정부정책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나 기회가 많아졌다는 긍정적인 측면으로도 볼 수 있다. 언제 어디서든,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들의 불편사항이나 건의사항을 자유롭게 신청하고 답변 받을 수 있는 '국민신문고', '생활불편신고앱', '안전신문고', '규제신문고' 등과 같은 소통창구가 국민들의 정책참여 기회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게다가 외국인들에게는 번역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으니 얼마나 편리하고 좋은 세상인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진리는 사람 있는 곳에 '민원(民願)'이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민원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도 끊임없이 발전해왔다. 은행권이나 쇼핑몰 등에서 콜센터 상담업무에 인공지능 서비스를 도입해 고객과 상담원의 통화 내용을 그대로 문자로 옮기는 동시에 핵심 내용을 자동분류해 주는 데이터베이스 분석시스템이 본격 시행된다고 한다. 사람 대신 상담하는 서비스, 즉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원하는 답을 척척 내놓는 첨단 인공지능 서비스가 기업을 상대로 시범운영 중이라고 하니 고객을 상대로 하는 상담 등 업무에 많은 변화가 예상됨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일이다.
정부에서도 이를 위한 준비가 필요한 시점으로, 4차 산업혁명과 연계해 민간에서 고객 마케팅 업무에 활용하고 있는 빅데이터 분석기법을 행정기관의 민원업무에 도입해 국민 맞춤형 민원 서비스 제공을 실현하는 데 이용하고 있다. 민원이 집중되는 시기와 사안 등 패턴을 파악해 시기적절하게 홍보, 안내 및 담당자 교육 등을 실시해 민원에 빠르게 대응·해결하는 것이다.
그동안 행정자치부에서는 민원을 해결하기 위한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방안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다양한 정책을 마련·시행해왔다. 특히 작년부터 민원인이 정부나 지자체 등 기관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실시간으로 담당 공무원과 민원상담을 할 수 있는 '정부 3.0 원격영상 민원상담 서비스'를 시행해 국민들의 민원해결에 도움을 주고 있다.
얼마 전 대구시에서 발표한,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활용한 24시간 자동민원상담과 민원발생을 사전 예측하는 민원예보시스템 구축 등도 이런 사례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이렇듯 변화는 시작됐고 이를 받아들이고 실천할 공무원들의 역할도 요구된다. 일을 하다 보면 타성과 관행에 젖어 초심을 잃기 십상이다. 민원업무가 공직 내에서는 구태의연하고 단순·반복적이란 인식이 팽배해 있다. 이제는 4차 산업혁명과 더불어 국민들이 요구하기 전에 알아서 해결해주는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 이 말은 미국의 과학 소설가인 월리엄 깁슨이 한 얘기다. 이미 IBM사의 인공지능 슈퍼컴퓨터 왓슨이 한국어를 탑재해 국내기업과 공공기관에 왓슨 서비스를 선보인다고 하니 영화 같은 이야기가 곧 현실이 될 날이 머지않은 것만은 사실인 듯싶다.
다만 아무리 사회가 발전하고 국민을 위한 새로운 정책과 제도가 시행돼도 국민들의 민원이 해결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동안 민원처리가 해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앞으로는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활용해 실시간으로 국민들의 생각과 행동을 읽고 예측해 국민들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이는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그 중심에는 민원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있고, 공무원이 일하는 목표는 국민의 행복임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