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자본금 500만원에 직원 5명으로 출발한 대우실업은 1998년 41개 계열사, 396개 해외법인, 자산총액 76조원에 달하는 재계 2위의 대그룹으로 우뚝 섰다. 김 회장은 대한민국 모든 샐러리맨의 우상이 됐다.
그로부터 1년 뒤인 1999년 8월, 대우그룹은 채권단에 의해 워크아웃이 결정된 후 해체됐다. 당시 부채규모는 89조원에 달했고, 구조조정 과정에서 30조원의 국민 세금이 투입됐다. 김우중의 명예도, 대우 신화도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대한민국 기업사에서 '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통념을 깬 몇 안 되는 사례이다.
이후 18년이란 긴 세월이 흐른 요즘, 언론지상에 다시 ‘대마불사’가 적지 않게 언급된다. 한때 대우그룹 계열사였던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정부와 채권단의 신규 지원을 두고 논란이 커지면서다.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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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채권단은 지난해 말까지도 "추가 지원은 없다"고 약속했지만 불과 몇 달 만에 말을 바꿨다. 신규자금 2조9000억원도 산은과 수은이 절반씩 분담한다. 국책은행의 기업지원은 대부분 국민 부담이다.
논란의 레퍼토리는 이뿐만이 아니다. 대우조선해양의 자구계획 이행률은 지난해 29%에 불과했다. 40~50%대인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 등 ‘빅3’ 경쟁사에 훨씬 뒤처진다. 그런데도 빅3 경쟁사들은 대우조선해양에 ‘특혜’ 운운하지도 못한다. 그저 속앓이를 할 뿐이다. 정부가 내놓은 2017년 3월판 '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 추진방안'을 두고 '대마불사'라는 비난 여론이 점차 거세지는 이유다.
'소소의 미학'이라는 말이 있다. '작고(小) 적은(少) 것이 아름답다'라는 의미다. 소소의 반대는 대다, 즉 크고(大) 많음(多)을 말한다. 소소와 대다의 가치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18년 전 대우그룹을 해체하지 않았다면 부작용만 있었을까. 지금 대우조선해양에 정부가 신규자금을 투입하지 않는다면 우리 경제에 더 귀중한 가치를 제공할까.
대우사태의 후유증은 한동안 한국경제를 휘청이게 만들었다. 국민 혈세가 공적자금으로 투입됐고, 수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길거리로 내몰렸다. 그러나 방만한 차입경영으로 문어발식 외형 확장에 몰두하던 대우그룹이 정부의 철퇴를 맞으면서 기업들이 내실이라는 본질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었다. 대마도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은 많은 기업들이 막대한 부채를 낮추는 계기가 됐다.
대우조선해양은 대우그룹과는 상황이 약간 달라보인다. 당장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자금지원을 중단하는 것은 더 많은 국민 부담을 초래할 수 있다. 현재 수주잔량 세계 1위로, 건조 중인 선박이 114척에 달한다. 지금 도산하면 선박 건조가 중단되면서 계약 위반에 따른 손실이 최대 59조원이나 된다고 한다. 협력사까지 포함해 수만명이 직장을 잃고 조선산업 생태계가 붕괴될 위험도 있다.
신규자금 지원은 대우조선해양이 작지만 훨씬 강한 기업으로 환골탈태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물론 대우조선해양 노사가 합심해 뼈를 깎는 회생노력을 보여 국민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정부는 신규자금 지원조건으로 임금 반납과 무급휴직을 통한 인건비 25% 감축, 1000명 추가 감원, 노조의 무분규 원칙 등을 요구했다. 필요하다면 대우조선해양은 더한 구조조정도 감내해야 한다.
지금 한국경제는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 사태를 불러온 ‘최순실 게이트’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 중국의 사드 보복 등 굵직한 대내외 리스크의 압박을 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전후방산업 연관효과가 큰 대기업 한두 곳이라도 휘청하거나 무너지면 한국경제 전체가 흔들리는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작고 강한 것은 당연히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소소의 가치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밀어붙여야 한다.
김종수 부국장 겸 산업부장 js333@a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