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뉴스에서 중국 어선들이 우리 서해 바다를 침범하여 소위 ‘싹쓸이’어업을 하여 우리 어민에게 피해를 줄 때마다 속이 상할 때가 많다. 왜 우리는 일본이나 미국처럼 중국에 강하게 대응하지 못할까라는 생각을 할 때마다 ‘약한 국력‘이 결국 ’민생의 고단함‘과 직결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수난을 겪고 있는 서해 바다는 또 다른 아픔이 서려 있다. 바로 제2연평해전, 천안함 폭침사건, 연평도 폭격도발 등 북한에 의한 도발로 인해 희생된 우리 국민들이다.
이들의 희생에 의해 서해 바다는 미약하나마 평온함을 누리고 있으며, 그 평온함을 지키기 위해 우리의 수많은 장병들은 밤낮을 지새우며 서해 바다를 지키고 있다.
위와 같은 북한의 도발과 우리 국민의 희생은 우리에게 북한을 보는 시각을 변화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사건들로 인해 북한은 우리에게 평화공존을 위한 동반자가 아닌 우리의 평화를 위협하는 위험한 실체라는 것을 각인시켜 주었다.
북한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독재국가이다. 통치권에 대한 부자간의 3대 세습이 이루어지고, 국민들이 굶주리고 헐벗은 와중에도 정권 유지를 위해 핵개발의 야욕을 멈추고 있지 않다.
그러한 북한체제를 소위 ‘내재적 접근법’적인 시각으로 보아 국가고유의 특수한 통치체제로 보자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내재적 접근법’은 철학의 상대주의에서 나온 것으로 보편성의 거부나 무력화 또는 비판을 전제로 한다.
즉 ‘내재적 접근법’에 의하면 인류가 지향해야 할 자유민주주의라는 보편적인 이념은 북한 고유의 특수한 통치체제에는 상대적으로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다는 논리가 되고 결국 ‘내재적 접근법’은 북한 정권의 정당성을 뒷받침해주는 근거가 된다.
이러한 ‘내재적 접근법’이 옳다 그르다의 문제를 떠나 북한 주민의 현실을 보자. 대부분의 많은 주민들이 아사 직전에 있으면서 상위 0.01%의 한 줌도 안 되는 사람들은 독일제 고급승용차를 타면서 프랑스제 고급와인을 즐기고 있다.
이것이 과연 평등한 사회이며 우리와 공존해야 할 정상적인 사회일까? 이러 사회에 대해 침묵하는 것이 과연 ‘인권보호’이며 진정한 ‘진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북한을 바라보는 이론에 대한 허구성을 널리 주지시키고 북한 사회의 현실에 대해 사람들을 자각시키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안보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쏠 포탄과 어뢰, 군인의 노동비용, 더 나아가 북한의 핵개발 비용은 북한 어린이의 몇십년 치 식량과 의약품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북한 어린이의 미래를 뺏어간 0.01%의 사람들을 오는 3월 24일 ‘서해수호의 날’을 맞이하여 영원히 기억하고 철저히 응징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