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문은주 기자 =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현직 총리로는 처음으로 미국 진주만을 방문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정권교체를 앞두고 미일동맹을 강화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는 해석과 함께 중국을 향한 견제구라는 분석이 나오는 등 그 결정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NHK 등 현지 언론이 6일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오는 26~27일 양일간 미국 하와이 소재 진주만을 방문해 희생자를 위령한 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다. 현직 일본 총리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다수 희생자를 냈던 진주만에 방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히로시마 답방 차원? 미일 동맹 강화? 주변국 압박?
이번 방문 결정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일단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5월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 피폭지인 히로시마를 방문한 데 대한 답방의 의미라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그러나 당시 미국 측이 진주만 방문을 제안했을 때는 일본 측이 수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이번 진주만 방문은 지난달 20일(현지시간) 페루 수도 리마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양국 정상 간 대화 도중 전격 합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불과 6개월 여만에 일본 정부가 입장을 바꾼 것은 미국 정권 교체를 앞두고 미일 동맹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조치라는 의견도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동맹국과의 관계 재검토를 거듭 강조한 탓이다. 아베 총리는 미국 대선 이후 이례적으로 뉴욕 트럼프 타워를 방문해 트럼프 당선인과 비공개 회담을 진행하는 등 미일 동맹 강조에 집중해왔다.
미일 전쟁의 종식을 꾀하는 제스처를 통해 주변국을 향한 압박카드라는 해석도 나온다. 시기적으로 러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진주만 방문 일정을 발표했다는 점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는 뜻이다. 러일 양국은 제2차 세계 이후 북방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다. 일본은 러시아가 일본 영토를 '불법 점거'하고 있다고 규정한 상태다. 푸틴 대통령은 오는 15일 일본을 방문한다.
전쟁 결과에 대한 책임 분쟁에서 한숨 돌리려는 조치라는 분석도 있다. 앞서 일본 정부는 한국과의 위안부문제 합의에 따른 재단 설립 등을 속전속결로 마무리지었다. 이번 진주만 방문으로 미일 화해 모드가 완성되면, 침략 행위에 대한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의 사과 요구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 미일 정치권 '환영'...중국도 집중 보도로 '관심'
일본 정치권에서는 집권 자민당 내 보수 성향 의원들까지도 대체로 환영한다는 반응이다. 지지통신에 따르면 가와무라 다케오 전 관방장관(자민당)은 "하나의 좋은 타이밍"이라며 "아베 총리가 말하는 '전후의 총결산'이라는 느낌이 든다"고 평가했다. 일본 제2야당인 공명당에서도 "미국 국민들에 진심어린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시 어니스트 미 백악관 대변인도 5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통해 "아베 총리의 진주만 방문에 대해 미국인 대부분은 따뜻하게 받아 들일 것"이라며 "오바마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진주만에서 각각의 소감을 언급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또 "이번 방문을 불쾌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기회가 미국에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이 있는 만큼 많은 적대감을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 언론도 이번 진주만 방문을 비중 있게 다룬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 영문판은 5일 아베 총리의 진주만 방문 소식을 상세히 전하면서 "이번 결정은 정권 교체를 앞둔 상황에서 미일 동맹을 강화하는 목적이 있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지지통신에 따르면 중국 내부에서는 "난징 대학살의 피해자들은 왜 애도하지 않느냐"며 아베 총리의 대응 방식에 대한 비난도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지난 1941년 12월 8일 진주만에 정박해 있던 미군 태평양 함대를 선전포고 없이 기습 공격했다. 당시 많은 미국인 사상자가 나온 것을 계기로 미국은 2차 대전에 참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