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윤세미 기자 = 미국 달러가 강력한 랠리를 펼치고 있는 가운데 통화 가치 하락에 마주한 신흥국들이 환율 안정을 위한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집계하는 ICE 미국 달러지수는 18일에 13여년래 최고치를 찍었다. 11월 8일 대선 이후 무려 3.4%나 올랐다.
신흥국 중앙은행들은 분주하게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은 지난주 루피아 하락세를 늦추기 위해 달러를 매도하고 자국 국채 매입을 통해 시장 개입에 나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중국 역시 국영은행들을 통해 위안화 가치의 지나친 하락을 막기 위해 나섰다고 트레이더들은 말했다.
멕시코 중앙은행은 페소화가 지나치게 내리자 금리를 인상했다. 특히 멕시코는 트럼프의 국경 장벽 건설과 이민자 추방, 북미자유무역협정 폐기 공약의 최대 피해국으로 꼽힌다.
말레이시아는 링기트가 달러 대비 4% 이상 떨어지자 환율 방어를 위해 시장에 개입하고 환투기를 막기 위해 선물시장 거래 단속에 나섰다.
달러 상승세는 도널드 트럼프의 재정 지출과 세금 인하 등의 부양책이 미국의 성장률을 끌어올릴 것이란 기대감과 미국 연준이 내달 금리를 올릴 것이란 전망으로 촉발됐다. 실제로 재닛 옐런 연준 총재는 17일에 비교적 빠른 시일 안에 행동에 나설 수 있다며 12월 금리인상을 시사한 바 있다.
강달러는 신흥국에 특히 부담을 주고 있다. 지금까지 저금리 기조 속에서 조금이라도 높은 수익률을 찾아 신흥국 부채에 투자했던 투자자들이 이제 보다 안전하고 수익률도 높아진 달러 자산으로 몰리면서 급격한 자금 이탈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피에르 캐피탈의 조나단 루이스 CIO는 “강달러는 시장을 불안하게 한다. 특히 달러 부채를 갚아야 하는 신흥국에겐 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국제결제은행에 따르면 지금까지 신흥국들이 발행한 달러 표시 부채 누적액은 3조 달러에 달한다. 신흥국들은 올해에만 4,090억 달러어치 부채를 발행했다. 달러 가치가 오르면 달러 부채 상환 부담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또한 금이나 원유를 처럼 달러로 거래되는 상품 가격이 오르면서 이를 수출하는 신흥국들은 수요 감소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이미 신흥국에서 외국인 투자금은 빠르게 회수되고 있다. 미국 대선 이후 신흥국 주식과 채권에서는 약 110억 달러어치 해외 자산이 유출됐다고 국제금융협회(IFF)는 밝혔다. EPER 글로벌 데이터에 따르면 11월 16일까지 한 주 동안 신흥국 채권펀드에서 66억 달러가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