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주진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100만개'의 촛불이 12일 서울 광화문 광장을 뒤덮으면서 청와대는 당혹감 속에서 대책 숙의에 들어갔다.
운신의 폭이 극도로 좁아진 박 대통령이 성난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어떤 결단을 내릴지 주목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는 우선 서울 도심에만 100만명(주최측 추산·경찰추산 26만명)이 몰리면서 6월 항쟁 이후 최대 집회를 기록한 것과 관련해 민심이 엄중하다는 점을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법원의 허용 결정으로 시위대가 청와대 인근까지 가두행진을 벌이면서 청와대 경내에까지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들리면서 민심을 더 무겁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12일 촛불 집회에 야당 지도부와 의원들을 포함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전 상임대표 등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들이 총출동해 박 대통령 퇴진을 압박하면서 청와대는 더욱 곤혹스런 모습이다.
박 대통령도 관저에서 ‘100만 촛불’ 집회 상황을 지켜보면서 참모들로부터 수시로 상황을 보고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민심의 요구를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밝혔지만 정국을 풀어나가기 위한 뾰족한 대책이 마땅치 않다는 점에서 고심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의 국회 총리 추천 제안을 야당이 거부하고 여야 대표와의 회담도 막힌 상황에서 남은 선택지는 많지 않다.
박 대통령의 권력 의지를 감안할 때 스스로 하야를 선택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분석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4일 대국민담화에서 "국정은 한시라도 중단돼서는 안된다. 대통령의 임기는 유한하지만 대한민국은 영원히 계속돼야만 하다"고 말해 하야나 퇴진 요구를 일축한 바 있다.
결국 박 대통령에게 남은 선택지는 여야 합의로 뽑아줄 것을 요청한 신임 국무총리에게 대부분의 권한을 이양하고 2선으로 후퇴하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약속하는 정도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대국민사과, 이달 4일 대국민담화에 이어 3차 담화 형태로 국민 앞에 나설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 대통령의 2선 후퇴 공개 선언이 이뤄지면 영수회담을 통해 이를 추인 받고, 여야 합의로 총리를 선출해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이 거국내각의 명분과 취지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여야의 탈당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도 있다.
당장 야당은 물론 여당 역시 1987년 6월 항쟁 이후 최대 규모의 반정부 집회에서 드러난 민심에 주목하며 후속 대응을 촉구했다.
기동민 더불어민주당은 13일 브리핑에서 "박 대통령은 촛불 민심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하야건 퇴진이건 대통령의 결단만 남았다"고 밝혔다. 그간 민주당은 박 대통령의 2선 후퇴 요구 아래 단계적 퇴진론을 주장했지만 전날 집회 민심을 수용해 당론을 재조정할 가능성도 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도 이날 "이제 내가 제안한 탈당, 영수회담을 통한 총리 합의 추대, 최순실 우병우 사단 인적 청산과 조각, 검찰수사, 국정조사, 별도 특검 수사를 받으며 질서 있는 퇴진을 고민하라"며 박 대통령을 압박했다.
새누리당에서도 심상치 않은 기류가 감지됐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다음날(14일)부터 야당 지도부를 만나겠다면서 "여야가 함께 권력 이양기를 관리할 것인지, 헌정 중단-헌정 파괴를 감수할 것인지 논의하겠다. 고장난 비행기의 엔진을 그대로 둔 채 조종사만 바꿔 비행기를 그냥 띄울지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들끓는 민심을 확인한 여야 정치권은 청와대의 수습책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탄핵' 등 특단의 대책까지도 검토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