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오진주 기자 = “공시지가 밑으로도 안 삽니다.” (세운상가 인근 A공인중개업소 대표)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인근에 위치한 A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세운상가의 하락세를 이렇게 설명했다. 한때 전기·전자산업의 핵심지였던 세운상가는 상권의 쇠퇴와 당사자들 간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30년째 지지부진한 재개발 과정을 겪고 있다.
앞서 올해 1월 박 시장은 세운상가 재생사업인 ‘다시세운 프로젝트’를 통해 세운상가를 4차 혁명의 중심지로 만들어 옛날의 영광을 되찾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하지만 이미 기다림에 지친 세운상가 상인들에게 기대감은 없어 보인다.
13일 세운상가가 위치한 청계천로에는 2층짜리 건물이 늘어서 있다. 곳곳에 금이 간 벽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간판의 글씨는 떨어져 나가거나 찢겨졌다. 깨진 시멘트 계단을 밟고 3층으로 올라가자 요즘 세대에겐 낯선 전자기기들이 늘어서 있다. 빨간색 대우마크는 빛이 바래 분홍색으로 변해 있다. 미로같은 골목에 늘어선 건물 옥상엔 거미줄같은 전기선도 늘어져 있다.
보통 개별공시지가는 실제 땅값보다 낮은 80% 수준에서 책정되지만, 현재 세운상가의 개별공시지가는 실제 땅값보다 더 높다. 서울부동산정보조회 시스템에 따르면 2016년 세운상가가 위치한 116-4번지의 개별공시지가는 3.3㎡당 5775만원이다. 하지만 A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실제 땅값은 4000만~5000만원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운상가에는 권리금이 아예 없는 점포도 있다. 하락세를 걷던 3~4년 전 장사를 포기하고 나가는 상인들이 생기면서 빈 점포의 권리금이 없어진 것이다. 빈 점포는 지금도 남아있다. 또 다른 B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장사가 안 돼 권리금을 포기하고 나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약 33㎡(10평) 점포의 권리금은 4000만~7000만원 정도”라며 “3~4년 전엔 1억5000~2억원까지 오른 적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상인들은 세운상가 재개발에 대한 기대를 접은 지 오래다. 40년 동안 이곳에서 공인중개업소를 운영했다는 A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이미 30년 전에 재개발로 묶여 장사도 안 된다”며 “세운상가 활성화에 대한 기대심리도 없고, 앞으로도 영향받지 않고 쭉 갈 것”이라고 말했다.
상인·상가주인·서울시 간 협의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세운상가 3층에서 점포를 운영하는 한 상인은 “세운상가는 한 곳에서 30~40년 간 가게를 운영한 사람들이 많다”며 “그들이 쉽게 협의를 해주겠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상가 주인들도 마찬가지다. 그는 “몇 십 년 전 상가를 사놓은 주인들 중엔 통장으로 월세만 들어오게 해놓고 해외에 사는 사람들도 많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