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 관계자는 8일 “이달 회장단 회의는 개최하지 않는다"며 "이후 개최시기도 확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당초 전경련은 오는 10일 전경련 컨퍼런스센터에서 비공개로 회장단 회의를 개최키로 하고, 회원사 총수들의 참석 여부를 타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전경련 회장단 회의는 그동안 두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열려왔으며, 2년 전부터 개최 안건 등을 비공개로 진행하고 있다.
특히 이번 회의에서는 전경련이 마련한 ‘환골탈태’ 수준의 개혁안과 후임 회장 선임 등 굵직한 사안이 논의될 것으로 점쳐졌다.
이날 오전 전경련으로부터 회의 참석 요청 공문을 받았다고 설명한 대기업 고위 관계자는 “우리도 불참 의사를 전했는데, 오후에 전경련측으로부터 ‘회의가 없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검찰의 수사에 속도가 붙으며 기업 총수들까지 칼끝을 겨누자 기업들이 몸을 낮추고 숨을 죽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검찰 수사의 도마위에 오른 전경련이 주최하는 행사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총수들의 움직임도 회의 무산의 주요 원인이 된 것으로 분석됐다.
18개 회원사 그룹 총수들로 구성된 전경련 회장단 회의 참석 대상자중 이미 불참을 통보한 삼성·현대차·SK·LG·롯데 등 4대 그룹을 비롯해 포스코와 한화, 한진, 두산 등의 그룹 총수들도 참석하지 않겠다는 의견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호아시아나, 삼양사, 이건산업 등 회장단 회의에 매번 참석해왔던 총수들만이 이번 회의에 참석 의사를 밝힌 가운데, 회의를 주제할 허창수 전경련 회장도 회의 개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등 분위기가 무르익지 못해 결국 회의를 취소할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경련 회장단회의 개최는 지난 9월 말 미르 및 케이(K)스포츠재단 강제 모금 의혹과 함께 전경련 해체 압박이 본격화한 이후 처음이어서 결과가 주목됐었다.
10대 그룹의 고위임원은 “총수들이 전경련과 선을 그으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 상근부회장 등 전경련 임원들이 최 씨 게이트 연루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고 전경련 회관이 압수수색까지 당한 상황에서 굳이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석할 필요가 있겠냐는 얘기다.
그는 이어 “(전경련에 대한) 총수들의 마음이 떠난 상태”라며 “내년 2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는 허창수 현 회장도 더 이상 회장직을 맡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고 덧붙였다.
더 큰 문제는 향후 회장단 회의 개최 시기도 잡지 못했다는 것이다. 예정대로라면 내년 1월 회의를 열어야 하지만 현재의 사정 분위기에서는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최근 전경련은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 사회 각계각층에서 ‘정경 유착의 통로’, ‘정권의 모금 창구’로 전락했다는 비난을 받으며 해체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회원사들은 전경련이 재계 보다는 청와대의 목소리만 대변하고 있다며 강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전경련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이자 정부 정책과 관련한 재계의 중지를 모아왔던 회장단 회의가 참석자들의 참여 저조로 개최가 무산된 것은 사실상 전경련 체제가 지속될 수 없다는 쪽에 무게감이 흐르고 있다.
특히, 전경련은 지난 9월 23일 이승철 상근 부회장이 미르·K스포츠 재단 등에 대한 의혹에 대해 두 재단을 해체하고 새로운 통합 재단을 만들겠다고 밝혔으나 아직까지 대체안을 내놓지 못한 상황이다. 또한 전경련이 마련한 자체 쇄신안도 어떤 식으로 작업이 진행중인지를 발표하지 못한 상황이다.
이를 주도해야 할 전경련 최상부 인사들이 모두 교체 대상이 됐고, 임원진들도 최순실 게이트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는 등 사실상 운영진들의 활동이 마비되어 당장 대책안을 내놓을 처지가 못된다.
재계 관계자는 “전경련의 위상이 추락하면서 현재의 위기 극복을 위해 총수들의 중지를 모아야 할 ‘콘트롤 타워’는 사실상 실종됐다”면서 “특히 재계를 이끌어갈 카리스마 있는 리더가 없어 재계의 표류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