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조용성 기자 =20세기 초 중국이 서구열강으로부터 치욕을 당하던 시기 중국의 젊은이들은 좌감절에 몸서리치면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과 열정을 잃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의 선진국으로 유학을 가서 선진문물을 배워오되, 학비와 생활비는 현지에서 아르바이트를 통해 조달하자는 ‘근공검학(勤工儉學)’ 운동이 일어났다. 1919년 봄부터 1920년말까지 근공검학을 위해 프랑스로 유학간 학생들은 1500명에 이른다. 이들은 해외에서 설움과 외로움을 겪으면서도 꿈을 잃지 않았고 훗날 국가의 동량으로 성장한다. 이 중 20명 이상이 중국공산당 지도자가 됐다. 대표적인 인물이 저우언라이(周恩來), 덩샤오핑(鄧小平)이다.
근공검학 열풍이 분지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중국은 대국으로 성장했다. 경제력이 튼튼해져 학생들이 궂이 과거처럼 ‘근공검학’까지 할 필요성이 없어졌다. 실제로 중국 대학생들은 왠만해서는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는다. 한국의 대학생들이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비와 생활비를 버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게다가 중국의 대학교 학비는 무척 저렴하다. 대부분 대학교의 1년 학비가 5000위안 선이다. 게다가 대부분 학생들은 저렴한 가격으로 기숙사에서 공동생활을 하고, 학교식당을 이용한다. 게다가 중국의 버스와 지하철 가격도 싼 편이다. 학비와 생활비가 저렴해 궂이 아르바이트에 나서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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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이 가난해서 학비와 생활비를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학생에게는 학교측이 심사를 통해 아르바이트를 제공한다. 주로 도서관 사서, 학교 사무보조 등의 일자리다. 또한 사회경험을 쌓는 차원에서 아르바이트에 나서는 학생들도 있다. 사범대학 학생들은 학원에서 강의 아르바이트를 하고, 경영학과 학생들은 레스토랑이나 패스트푸드점에서 일을 하기도 한다. 또한 체육학과 학생들은 피트니스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하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소수에 불과하다.
중국의 대학생들은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는 대신, 그 시간에 학업에 열중하거나 외국어를 공부하고, 자격증시험을 대비한다. 물론 기숙사에 처박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소일하는 학생들도 많다.
최근 주목할 점은 대학생들이 각지에 마련된 창업카페에 가서 창업을 준비하는 풍조가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베이징의 중관촌(中關村)이나 광둥(廣東)성 선전(深圳) 일대에서는 너무나도 뜨거운 중국 학생들의 창업열기를 느낄 수 있다. 한국무역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중국 학생들의 창업선호비율은 40.8%로, 한국의 6.1%, 일본의 3.8%에 비해 월등히 높다.
중국내 IT기업들의 약진과 창업을 독려하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중국 학생들은 ‘실패해도 잃을 게 없다’는 자세로 창업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100여 년전 중국 젊은이들의 열정이 근공검학 유학붐을 이끌었다면, 현재의 젊은이들은 창업붐에 뛰어들고 있다. 저우언라이, 덩샤오핑이 중국 혁명을 성공시켰듯, 창업에 청춘을 바치는 숱한 대학생 중에 제2의 마윈(馬雲), 제2의 마화텅(馬化騰)이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 본 기사는 중국 국무원 산하 중국외문국 인민화보사가 제공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