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에는 우기와 건기가 뚜렷하다. 5월 말부터 시작되는 우기는 9월 말에 서서히 끝나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월 초인 요즘 하늘 천정에 뚜껑이라도 빠진 듯이 폭우가 내린다. 오후에 시작된 비는 천둥과 번개가 사랑 싸움을 하는 듯 서로 으르렁거리면서, 한여름 밤에 베토벤의 ‘교향곡’과 춘향전의 ‘사랑가’를 번갈아가며 선사한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들꽃들은 사정없이 쏟아붓는 '강펀치'에 줄곧 땅바닥에 헤딩 연습을 하며 야생화월드컵 준비를 할 뿐이다.
안나푸르나 보호구역 안에 위치한 땅띵은 경사가 급한 구릉에 위치한다. 해발고도 1700미터에 위치한 땅띵마을의 이름없는 뒷산도 해발고도 2000미터를 넘는다. 정상까지도 매우 급경사여서 평소 운동이 부족하거나 무릎이 불편한 이들은 오르기가 매우 어려운 코스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상에 올라야 비로소 자태를 보여주는 안나푸르나 1봉 때문에 오르지 않을 수가 없는 곳이기도 하다. 예로부터 마을의 제당으로 사용되었던 이곳에 작년에는 마을사람들이 십시일반해 불탑을 세우고 있다. 티베트식으로 밀교 예법에 따라 지신께 먼저 제사 지내고 라마승을 모셔 와 불탑이 들어설 사방의 각진 땅에 불구(불교 용구)를 묻는 모습이 마치 우리 삼국시대 불국사의 석가탑을 조영한 아비지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문제는 산사태이다. 수억 년을 지탱해 온 그 높은 산들이 몬순을 만나면 시도 때도 없이 묵은 때를 벗겨내는 목욕을 하나보다. 도로의 곳곳이 파손되어 포카라에서 출발하는 버스는 강에 인접하여 중국에서 댐을 만들고 있는 차우까지 겨우겨우 운행될 뿐이다. NGO 나마스떼코리아가 학교와 드림센타에 지원하는 굵은 함석으로 만든 무거운 대형 캐비넷을 5시간 이상 걸쳐 마을 청년 한 명이 짊어지고 가야 한다. 건기를 기다려서 가면 좋겠지만, 학기가 끝날 때마다 나오는 시험지 등 행정 서류 등을 열쇠를 채우고 보관하지 않을 수 없기에 옴프라카시 교장은 부득이 긴급 요청을 한다.
땅띵의 전통가옥들은 다락방 지붕을 대나무로 잇는다. 정교하게 수공을 만들었어도 폭우는 감당하지 못하나보다. 가끔 2층에서 자다보면 한방울씩 스며들어와 떨어지는 물방울과 대나무를 두드리는 빗소리에 잠을 이루기가 어려워진다. 더욱이 천정도 낮은 양철지붕으로 시공된 집에서는 마치 양철북을 두드리는 소리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할 수도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비를 피해 집으로 외출을 나온 이름 모를 작은 벌레들과 친구까지 해야 하니 자원봉사 지역이 아니라 극한 상황 체험장이 되기 쉽다. 방학을 반납하고 한달 가운데 2주 이상 현지 봉사에 참여했던 하지민 인턴에게는 좋은 체험이 되었지만 정말 현대 문명의 편의를 다시 성찰하게 하는 기회가 되었다.
땅띵에서 이런 극한 체험을 하며 조금씩 개선을 해 왔던 정상호 이사와 김주하 파견 대원에 이어, 중년주부인 이은주 대원은 이런 고통을 벌써 2달이 가깝게 감수하고 있다. 전기시설이 고장났는데도 정부에서도 속수무책이어서 마을 사람들은 이 장마 여름에 전기 없이 살고 있다. 얼마 전 시작된 일주일 남짓한 방학기간이 되자, 드림센터와 같은 용량의 태양광 시설이 있는 학교가 문을 닫는다. 학교에 가지 못한 학생들과 주민들은 우리나라 사단법인 선도성찰나눔공동체 선도회가 작년에 기부해 준 성금 등에 올해 우리 정부가 지원해서 완벽해진 태양에너지 충전시스템이 설치된 드림센터로 몰려 와서 함께 티비를 보거나 와이파이로 인터넷을 하고 전화기 충전을 하고 있다. 이렇게 정도 많고 착하고 순수하지만 가난한 마을 사람들에게 우리는 꿈과 희망을 선물하고 있다.
2016년 행정자치부 비영리 민간단체 공익사업 지원을 받아 NGO 나마스떼코리아는 드림센터에도 태양광을 추가 설치했다. 아울러 주민들 특히 여성과 노약자들이 항상 모이며 음식을 나누고 대화를 나누는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곰파(불교사원)에 태양열 온수시스템과 태양광전기시설을 추가설치하고 있다. 아울러 몬순기 강물에 쓸려가는 쓰레기들로 인해 환경이 파괴되는 것을 막고자 Ward(구역이나 부락)별로 2개씩 함석으로 된 중형 휴기통을 설치하고 환경미화원 1명을 고용해서 '청정한 마을지키기'를 위한 생태환경개선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적지 않은 NGO들이 네팔에 진출하여 학교와 병원 등을 만들어 주고 있다. 하지만 큰 마을에 집중하거나 다른 나라들이나 단체들과 중복이 되어 몇몇 마을은 유지들에 의한 'NGO쇼핑'도 이뤄지고 있다. 아직도 길이 안 나고 자체 생산시설을 갖추지 못한 산골 오지 마을에는 보여주기 식의 커다란 신식 학교 건물 보다는 턱없이 부족한 ‘선생님’을 보충하고 환경과 위생 그리고 진로탐색에 대한 ‘교육’ 등이 더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