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열 칼럼] 지공대사를 지반대사로

2016-06-01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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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정책조사실장/ 이사대우)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정책조사실장/ 이사대우)


요즘 식욕이 없고 우울하다. 오십견으로 고생하는 5학년 2반 남학생의 갱년기 증상일까? 아니다. 며칠 전 지하철 스크린도어 수리 중 목숨을 잃은 열아홉살 청년 때문이다. 그 청년의 가방 속에서 발견된 컵라면 때문이다. 스크린도어 수리 업무가 바빠서 끼니를 거를 때가 많다보니 컵라면을 넣고 다녔다는 것이다. 밥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던 꽃다운 청년을 저세상으로 보내는 이 비정한 대한민국에 정이 뚝 떨어진다. 그 생각에 밥맛이 싹 가신다.

‘헬조선’은 지옥(hell) 같은 대한민국을 의미하는 신조어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해 ‘3포 세대’라고 불리는 요즘 청년세대들의 단어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에 육박하고 선진국 클럽(OECD)에 가입한지 20년이 지났다. 그런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청년들의 입에서 저주와 자조의 단어가 유행하고 있다. 그 청년들과 동시대를 살고 있는 어른으로서 참으로 부끄럽다.
헬조선이라는 말이 현재 우리 사회에 딱 들어맞음을 그 청년의 죽음이 한 번 더 확인시켜줬다. 2년 전 4월 16일의 세월호 침몰 사태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별다른 교훈을 얻지 못했다. 특별한 변화도 없다. 이런 대한민국의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실수와 실패로부터 배워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안 그러면 우리 사회는 10년 후에도 계속 헬조선이다.

‘지공대사’는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65세 이상의 어르신을 일컫는 말이다. 나도 13년 더 버티면 지공대사가 된다. 3년 전쯤에 소설가 김훈의 강의를 들었는데, 스스로 ‘지공대사’임을 고백했다.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게 아니며, 30여년 세금을 냈으니 공짜로 탈 자격이 있다”고 두둔했다. 나 역시 그 설명에 수긍했다. 지하철을 건설했던 분들이고, 지하철 건설에 필요한 세금을 미리 내셨던 분들이기에 은퇴하고 65세가 되어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것에 큰 불만은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청년이 죽었다. 그 청년을 죽음에 이르도록 한 것은 서울메트로가 아니다. 우리 시대의 어른들이, 우리 사회의 잘못된 시스템이 그 사고를 방조하고 동조했다. 게다가 지공대사들도 이 청년의 죽음에 한몫했다. 서울시 지하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는 계속되는 적자로 인해 경비를 절감하려고 스크린도어의 유지 보수를 하청업체에 맡기게 됐고, 하청업체에 주는 용역 단가를 낮추다보니 둘이서 해야 할 일을 혼자서 하다가 그런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그런 공사를 관리 감독함에 있어서 부주의했던 원청업체 서울메트로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서울시 지하철의 누적된 적자에 원인이 있다.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작년 서울시 지하철 이용객 17억 8200만 명 가운데 지공대사는 2억5000만 명(14%)에 달했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3154억 원의 수입을 거두지 못한 셈이다. 서울 지하철의 적자가 작년에 3730억 원이었다고 하니, 지공대사들의 무임승차가 서울시 지하철 적자의 85%에 해당한다. 고령화의 급속한 진전으로 지공대사의 숫자는 계속 늘어날 것이고, 지하철 탑승인원 중에서 지공대사가 차지하는 비율은 현재 14%에서 계속 더 높아질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서울시 지하철의 적자는 더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서울시는 부랴부랴 그 청년이 근무하던 하청업체를 자회사로 전환한다, 2인 1조 근무를 엄격히 지킨다, 지하철역 승무원의 입회하에 공사를 하도록 한다며 열심히 뒷북을 울리고 있다. 그렇게 한다면 적자는 더 늘어날 것이다. 하청업체의 직원을 더 뽑아야 하고, 하청업체에 주는 용역단가를 더 늘려야 하고, 그렇게 하다보면 서울시 지하철의 적자는 당연히 더 늘어나게 된다.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의 불어나는 적자를 누가 메워줄 것인가? 세금으로 메우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하겠지만, 세금 쓸 곳은 너무 많다. 예를 들어, 펑크난 보육예산을 메우느라 몇 년째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으르렁대고 있다. 표가 무서운 정치인들은 지공대사들의 눈치만 보고 있다.

언론인, 지식인, 시민단체 등이 거들어 줘야 한다. 만약에 2억5000만 명의 지공대사들이 500원을 내고 탄다면 1년에 1250억 원이라는 엄청난 수입이 더 생기게 된다. 그 돈이면 또 다른 청년의 죽음을 막을 수 있다. 지공대사가 지반대사가 되면 어떤가? 500원으로 헬조선의 청년들을 살릴 수만 있다면, 헬조선이라는 딱지가 떨어지는데 다소라도 기여할 수 있다면 좋은 것 아닌가? 그 청년의 컵라면이 아직도 눈에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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