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겸의 차 한 잔] 인심 넘치는 평창군 봉평장을 가봤나요?

2016-05-24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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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문학박사)

봉평장의 장돌뱅이 상인들[사진=하도겸 박사 제공]


1930년대 강원도 평창군 봉평 일대를 떠돌아다니며 물건을 팔던 장돌뱅이들의 삶과 애환을 그린 소설이 있다. 이효석의 단편 '메밀꽃 필 무렵'이다. 이 소설에 나오는 장돌뱅이 허생원 등이 그리는 봉평장터 풍경은 80년이 지난 지금도 강원도의 5일장을 잘 표현해 주는 듯하다.

전국의 장을 돌며 장사하던 상인들을 낮춘 말이 ‘장돌뱅이’ 또는 ‘장돌림’이다. 자신들을 비하한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전국을 누비며 장사하던 그들은 지금으로 말하면 우리 상업의 대동맥이다. 상업을 억압해서 유통시장이 발달하지 않았던 전근대사회에서 5일마다 같은 자리를 찾던 장돌뱅이는 조선팔도의 신기한 물자는 물론이고 삶의 희로애락을 함께 실어 날랐다.
시골 사람들은 그들의 세상 이야기에 웃고 울며 세상과 소통했고, 꿈을 품었다. 꽃가루를 실어날르는 벌과 나비처럼 장돌뱅이들은 문화와 정보를 구수한 막걸이 한사발에 담아 전했다.

역사적으로 조선 시대 이래 보통 5일마다 열리던 사설 시장 등에 보부상이라는 행상, 즉 보따리 장수들이이 있어서 농산물, 수공업 제품, 수산물, 약재 등을 유통했다. 전통 5일장이라고도 하고 민속 5일장이라고도 불린 5일장(五日場)이 그들의 주무대였다.

보통 대도시 주변의 유명한 5일장에서는 자리 받기가 힘들다. 그런데 봉평장 같은 강원도의 5일장은 비교적 자릿세가 싸고 1년에 한 번 내면 된다고 한다. 청소해주고 관리해주는 분들도 있고 해서 장사만 잘 하면 된다. 다른 5일장은 자리가 없을 때는 옆에서 비켜주지도 않고 들어가려고 하면 욕도 해서 처음 장돌뱅이가 된 사람들은 장사하기가 주저된다.

“봉평장을 비롯해 제가 가는 강원도 5일장에서는 우리 같은 노점 좌판상에 대한 (토박이)상가가게 인람들 인심이 참 좋아요. 비가 오거나 저녁에 짐 싸려고 하면 가게 하시는 분들이 서서 기다리다가 도와주세요. 특히 저 같은 부녀자나 노인들이 장사를 하면 막 뛰어와서 같이 도와주시고 그래요. 과일도 혼자 먹다가 우리를 보시면 꼭 나눠 주시고 그래요. 더워서 힘들어하거나 하면 바로 ‘괜찮아요? 힘내세요!’라는 격려의 말도 꼭 해주셔서 참 고마워요.”

나이 들어 장사를 시작한 한 중년 여성은 강원도 5일장을 이같이 격찬한다. 바로 옆 상가의 주인에게 자초지종을 물으니, “아니, 5일에 한번씩이나 이웃에서 같이 장사하면서 만나며 사는데 그런 건 서로서로 배려를 해가지고 도와줘야죠. 그런 것도 안 도와주면 어떻게 해!”라고 너무나 당연하게 말한다.

강원도 인심이 왜 좋은지 한 상가 상인에게 이유를 물었다. “강원도 사람들이 주로 먹는 콩 옥수수, 감자가 모두 동글동글해요. 세모나 네모처럼 각이 지지 않았쟎아요. 그런 모가 안난 음식을 먹고 맑은 물을 먹어서 순수한가봐요”라는 우문현답(愚問賢答)이 바로 나온다.

자연이 좋아서 힐링바람이 불고 나서 건강 챙기려고 외지인들이 강원도로 조금씩 유입되고 있다. 전국에서 제주도 다음으로 평창군이 펜션이 제일 많다고 한다. 평창군에서는 봉평이 제일 많고 그 다음이 대화라고 한다. 묘하게도 '메밀꽃 필 무렵'의 허생원이 아들 동이와 걸었던 그 길따라 외지인들이 펜션을 짓고 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맞이하여, 강원도의 고속철도역도 생기고 새로운 국도들도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봉평면에도 평창군에 없던 작은영화관 ‘HAPPY700시네마’도 생겼다.

사회간접자본의 확충도 좋고 문화적인 발전도 좋지만, ‘감자바우’로 상징되는 강원도 ‘인심’만은 변치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케이드를 설치하지 않고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한옥 저자거리로 거듭나서, 이효석이 그린 ‘봉평장’이 되는 것도 고맙고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넉넉한 강원도의 인심만은 계속 유지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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