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커터'의 칼 끝은 어쩌다 방향성을 잃었나

2016-04-01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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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커터' 스틸]

아주경제 김은하 기자 = 빨강색과 파랑색 물감을 짜놓는다고 보라색이 될까. 정희성 감독의 첫 연출작, ‘커터’는 두개의 범죄를 다룬다. 두 사건은 어떠한 인과관계도 형성하지 못하고 나란히 이어진다. 이 영화의 전반과 후반을 따로 본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영화를 이야기할 것이 분명한데, 정 감독은 빨강색과 파랑색 물감을 짜놨으니 보라색으로 봐달라고 요구한다. 두 색을 휘젓는 노력도 하지 않았으면서.

고등학생 윤재(김시후 분)는 전학 간 학교에서 만난 세준(최태준 분)의 제안으로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여성을 모텔로 운반하는 범죄에 가담한다. 윤재는 이내 죄책감에 휩싸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죄악감보다는 눈앞에 있는 어머니의 병원비가 우선이다. 자괴감에 시달리던 윤재는 결국 실수를 저지르고, 세준은 뒷수습을 자처한다. 하지만 충성스러운 우정을 알아주지 않는 윤재에게 화가 난 세준은 윤재가 짝사랑하는 은영(문가영 역)을 강제로 범하고 살해한다.

영화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다뤄 사회적 파문을 일으킨 소라넷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고 홍보하면서,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을 모티프로 해 성범죄 피해자의 고통을 농밀하게 그려낸 ‘한공주’와 2008년 SNS상에서 벌어진 실화를 바탕으로 마녀사냥·신상털기 등 온라인 문제를 정조준한 ‘소셜포이아’와의 비교를 자처한다. 성범죄의 표적이 된 술 취한 여성이 등장한다는 이유로 성범죄의 도구가 된 온라인커뮤니티에 방점이 찍히는 소라넷 사건을 들먹이는 것은 얄팍한 상업적 꼼수다. 평단에서 인정받은 작품과 엮는 것은 ‘커터’의 결핍을 더욱 부각시키는, 제 살을 깎아먹는 짓이다.

출생의 비밀, 삼각관계, 애인과의 밀고 당기기를 연상시키는 10대의 우정…곁가지를 뻗어 기둥에 집중하게 하지 못하는 지리멸렬함보다 더 큰 절망은 10대를 죄악감을 느끼면서도 범죄를 멈추지 않는 모습으로 그려낸 감독의 무책임함이다. “어른의 이기심이 10대에 미치는 영향을 그려내고 싶었다”는 정 감독은 청소년을 범죄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느끼더라도 현실에 치여 죄책감을 외면하는 존재로 표현, 오히려 미성숙을 핑계로 한 무책임함과 무지를 무기로 한 잔인함을 꼬집은 꼴이 됐다. 수단과 목적이 물과 기름처럼 분리된 셈인데, 그러다 보니 영화 전반부인 성범죄에 가담한 세준과 윤재의 이야기와 후반부에 펼쳐지는 학우를 범한 세준의 이야기를 연결하는 매듭을 찾기가 쉽지 않다.

고등학생의 반짝거림을 생생하게 표현해낸 문가영, 현실과 죄책감 사이에서 발버둥 치는 소년의 얼굴을 보여준 김시후, 더러운 세상에 방어하기 위해 날을 세웠음에도, 일말의 순수함을 지닌 사춘기의 양면성을 입체적으로 구현해낸 최태준의 수려한 연기는 영화적 연출에 대한 아쉬움을 더욱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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