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15주기]‘부유한 기능공’···중산층 사회 등장

2016-03-21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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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의 생애 (중) - 아산의 기능공 양성

사내 체육대회에서 타자로 나선 아산[사진=아산정주영닷컴]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아산(峨山)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는 자신을 ‘기능공 출신’이라고 했다.

1970년대부터 추진된 한국의 중화학공업 정책에 가장 적극적인 활동을 펼친 아산은 다수의 중화학 기업을 창업하고, 엄청난 수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중화학 분야를 개척하며 기능 인력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달은 아산은 기능공 양성에 물심양면으로나 직간접적으로 깊이 관여했다. 사내 직업훈련원과 현대공업고등학교를 설립해 운영하고, 시범공고와 수형자직업훈련은 재정적으로 지원했다. 이렇게 양성된 기능공과 국가가 양성한 공업고등학교, 공립직업훈련원 출신 기능공은 한국 최초로 체계적 기능교육을 받은 새로운 차원의 숙련공이다.

아산은 1972년 조선소(현 현대중공업) 건설에 착수하자마자, 사내 직업훈련을 담당할 ‘훈련원’부터 설립해 입사를 원하는 이들에게 기능교육을 제공했다. 노동집약적인 조선업의 특성상 엄청나게 많은 기능 인력이 필요했지만, 당시 기능인력이 부족하던 상황이라 용접, 절단 등의 기술을 자체적으로 가르쳐 현장에 투입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훈련원은 1972년부터 1990년까지 18년간 ‘정규훈련생’, 즉 예비신입사원 기능공 1만5000명을 교육해 현대중공업에 취업시켰다. 이 기간중 매년 평균 833명이 훈련원을 통해 입사한 셈이다.

조선 경기가 활황이던 1970년대에는 한 해에 적으면 1000여 명, 많으면 1800여 명까지도 훈련원을 통해 입사했다. 이런 모습은 1980년대 초반까지도 이어져 매년 약 1000여 명의 신입사원이 훈련원을 거쳐 충원됐다.

아산의 기능공 양성은 단순히 기능 인력을 만들어내는 데 그치지 않았다. 이들 기능공들은 후일 한국사회에 본격적인 중산층을 구성했다.

유광호 연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위원과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대중공업 초창기 약 10년, 즉 1973년부터 1983년까지 입사한 기능공들 가운데 현재 근속하고 있는 표본 20명을 통해 이들의 숙련형성 과정 및 출신 계층과 현재 속한 계층을 조사한 ‘중산층 사회의 등장 - 아산의 기능공 양성’ 논문을 발표했다.

표본의 출신계층을 보면, 우선 ‘상층’ 출신은 전혀 없었고, ‘중층’은 전체 14명(70%)이었다. 이를 세분하면 ‘중상층’ 1명(5%), ‘중중층’ 4명(20%), ‘중하층’ 9명(45%)으로 구성됐다. 마지막으로 ‘하층’ 출신은 6명(30%)이다. 응답자의 절대 다수 즉 15명(75%)이 하층 혹은 중하층에 속했다. 이들 두 계층은 가정 형편상 대학 진학이 애초에 어려운 집단으로 추정되는 계층이다.

근속연수에 따른 임금 추이를 살펴보니, 현대중공업 기능공들은 입사 초임부터 임금 소득 면에서 중산층 혹은 그 이상의 범주에 속해 있었다. 민주화 시기 격렬한 노동쟁의로 급속한 임금 상승과 복지 신설을 시현했으나 대립적 노사갈등으로 정체를 겪다가 노사 협조를 이뤄내 한국 최고의 임금 소득과 복지 수준에 도달했다. 이에 따라 1980년대 후반 이후에 입사하게 된 현대중공업 기능공 2세대는 더욱 향상된 임금과 복지 조건에서 출발하게 됐다.
 

[그래픽=김효곤 기자 hyogoncap@]


20명 기능공들의 현재의 소속계층을 판별하기 위한 중산층의 하한 기준으로 도시근로자가구 평균 경상소득의 90% 이상의 소득, 국민주택규모(주거 전용 면적 25.7평) 이상의 아파트 소유 혹은 그에 상당하는 단독주택 소유의 자산, 자동차 소유, 대학 졸업 이상의 자녀 학력, 주관적 소속계층의식 등 5가지 기준 중, 응답자가 이 가운데 4가지를 충족하면 ‘핵심적 중산층’, 3개를 충족하면 ‘주변적 중산층’, 2개 이하를 충족하면 ‘비중산층’으로 판별했다. 그 결과 1973년부터 1983년까지 입사한 기능공 응답자 20명은 모두 5가지 기준 가운데 최소 4가지를 충족한 ‘핵심적’ 중산층이었다. 5가지 기준을 모두 통과한 응답자는 16명으로 전체의 80%였다. 4가지만 통과한 응답자는 4명 즉 전체의 20%다. 그러나 이들도 스스로 설정한 즉 주관적인 중산층의 기준이 높을 뿐, 객관적인 중산층의 기준 특히 소득이나 재산의 차원에서는 모두 최소한의 기준을 훨씬 상회하고 있다. 즉 조사대상 기능공 20명은 모두 현재 핵심 중산층을 구성하고 있다.

이들 기능공들의 입사 당시의 소속 계층과 현재의 소속 계층을 교차시키는 ‘세대내 계층 이동’ 결과를 살펴보니, 입사할 당시 이들의 소속 계층은 중상 1명, 중중 4명, 중하 9명, 하 6명이었다. 현재는 20명 모두가 ‘중중’ 계층 소속이다. 입사 당시 핵심중산층을 ‘중중’ 계층이라고 치면, 당시 이들 가운데 75% 즉 15명은 그 아래 계층 즉 ‘중하’와 ‘하’에 소속되어 있었으나 약 40년이 지난 오늘날 이들은 모두 핵심중산층인 ‘중중’ 계층에 소속되어 있다. 응답자의 75%가 세대내 계층의 상승이동을 경험한 셈이다.
 

하계수련회에서 직원들과 함께하고 있는 아산(앞줄 오른쪽 네번째)[사진=아산정주영닷컴]


소득 기준으로만 본다면 현대중공업의 기능공들은 입사 때부터 핵심 중산층에 해당한다. 여기에 경제사회적인 조건은 물론 주관적인 의식 등 다양한 기준을 종합하여 판별하면 초창기 입사 기능공들은 대략 입사 10년 안에 ‘주변적 중산층’에 진입하고, 20년 안에는 ‘핵심적 중산층’이 되었으며, 현재는 중산층을 넘어 ‘중상층’에 육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유 전문연구위원과 류 교수는 “아산은 자신이 바라고 또한 온 국민이 바라던 광범위한 중산층이 토대를 이룬 ‘부하고 강한 선진국’을 만들어 내는 과제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면서 “농촌과 도시 주변부에 잉여인구로 퇴적될 가능성이 큰 농어촌과 도시 중하층 출신의 젊은이들을 자부심을 가진 핵심적 중산층으로 계층 상승시킴으로써 이 땅에 풍요롭고 평등한 중산층 사회를 등장시키고 공고화된 민주사회의 핵심 토대를 놓았다고 평가받아야 마땅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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