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박상훈 기자 ="그동안 해오던 저작권 강의 말고는 작년에 특별히 한 게 없습니다. 올해엔 대학에서 도서관 정책 관련 강의를 맡게 돼 설레고 긴장됩니다."
또 국립중앙도서관은 지난 1988년 반포동 시대를 연 이후 처음으로 본관 창호를 전면 교체하고, 홈페이지도 통합 개편했다. 안팎으로 새로워진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임 관장을 만났다.
◆ '천만 장서'…문화·학술 창작역량의 바로미터
국립중앙도서관은 우리나라에서 발간된 모든 자료를 빠짐없이 수집·보존한다. 이런 '국가대표' 도서관이 천만 장서를 넘겼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축하할 일임에는 분명하지만 일반인들로서는 선뜻 유의미한 성과로 다가오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임 관장은 "'천만 장서'는 숫자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명토박았다.
그는 박물관과 도서관의 차이를 예로 들며 "문화재는 오직 '그것'뿐이라 특정 유물이 보고 싶다면 그게 있는 박물관에 가야 한다. 반면 도서관 자료 대부분은 여기저기에서 동일하게 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립중앙도서관은 여느 공공도서관에 없는 자료들까지 갖춰, '그 책은 거기에서만 볼 수 있어!'라는 국가적 정보 안전망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어디에도 없는 자료가 국립중앙도서관에는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자료들까지 포함해 천만 장서를 돌파했다는 것은 우리나라 문화·학술 분야의 창작역량이 일정한 궤도에 올라섰다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모든 종이책은 발행과 함께 국립중앙도서관에 납본하게 돼있다. 이들을 체계적으로 수집, 보존하고 후대에 전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12월 31일 통과돼 오는 8월3일 시행될 예정인 '도서관법 개정안'은 종이책과 마찬가지로 온라인 자료의 납본을 의무화했다. 사실 온라인 자료는 2009년 도서관법 개정 이후 '선별적 수집' 대상으로 규정돼 국립중앙도서관이 요청할 경우 출판사들이 수집에 협조해야 하는 의무를 지녔다. 그러나 이를 '망라적 수집' 대상에 포함시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온라인 자료가 종이책과 같은 수준의 중요성을 인정받은 셈이다.
임 관장은 "오해가 좀 있다"고 운을 떼며 "이번 개정안의 의미는 도서관이 온라인 자료 중 특정 영역에 해당하는 자료에 대해서 망라적 수집의 의무를 갖고 있다는 것을 표방하는 것, 그리고 그 업무를 담당할 사람을 지정하는 것에 있다. 2009년 개정안으로도 온라인 자료 납본은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다."며 온라인 자료 납본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 도서관 디지털화 주력… '디지털화 할 수 없는 것의 가치'에도 주목
국립중앙도서관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디지털·온라인 환경에 대응해 많은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먼저 디지털 도서관 개관과 관련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갈라진 현재의 조직체계를 기능 중심으로 다시 통합하는 작업을 추진한다. 아울러 도서관법 개정에 따라 국립중앙도서관 안에 있던 도서관연구소를 '자료보존연구센터'로 개편, 다른 기관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라도 국가적으로 의미있는 자료는 종합적으로 보존계획을 세워 관리하게 된다.
임 관장은 이와 관련해 "올해 중으로 탈산처리를 대량으로 할 수 있는 장비를 도입할 계획이며 도서관연구소에 있던 고전적 관리 연구업무를 독립·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온라인 자료 납본 의무화를 계기로 공공간행물·학술자료 등 원문 수집에 주력할 방침이며, 소장자료의 디지털화를 가속화해 이를 빅데이터 등 인터넷으로 서비스할 수 있도록 저작권법 개정도 추진할 계획이다.
그는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고 있고, 전통적인 도서관의 역할을 대체하는 민간부문도 커지고 있다. 이 시기에 우리는 디지털화 할 수 없는 것의 가치가 높아지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도서관의 디지털화도 중요하지만, 기록매체 등 디지털이 다 담아낼 수 없는 원본의 아우라와 감성 등을 무시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국립중앙도서관은 올해 본관 문학실을 라키비움(Larchiveum)으로 꾸며 작가와 작품을 스토리속에서 접할 수 있도록 하고, 디지털도서관 지하 3층 로비와 전시실을 '기록매체박물관'(가칭)으로 조성, 기록매체의 역사와 미래를 조망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예정이다.
그는 작년 연말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 초판본이 한국현대문학 경매 사상 최고액인 1억3500만원에 낙찰된 것을 거론하며 "문학도 결국 책의 형태를 띠고, 이것은 엄연한 자료다. 그 낙찰금액도 시의 내용만을 평가해 나온 것이 아닐 것이다. 최근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복간본도 인기를 끌고 있지 않나. 콘텐츠도 중요하지만 이제 자료의 물성(物性) 그 자체에 관심을 둘 때가 됐다."고 기록매체박물관 조성 배경을 설명했다.
◆ 도서관은 더 이상 정보유통의 중심지 아냐…'도서관들의 도서관' 역할 충실히 수행할 터
인터넷을 넘어 모바일 시대가 되며 사회의 전반적인 양태가 많이 변하고 있다. 도서관도 이 변화의 물결에서 마냥 자유로울 순 없다. 임 관장은 "모바일 온리"를 힘주어 말하며 "시대 변화에 따라 도서관 서비스도 자연스럽게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서관은 과거 인쇄자료가 주축을 이루었던 시절 지식·정보 유통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앞으로의 도서관'은 어떤 형태가 될 것인가. "대량의 정보속에서 사람들이 놓치거나 소홀히 하는 것들을 충실히 메워주는 역할, 그런 공적인 보완재로서 도서관은 존재해야 합니다." 국가를 대표하는 도서관의 장이지만, 그는 애써 도서관의 위상과 역할을 과장하거나 강조하는 법이 없다. "일반 공공도서관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책을 갖다 놓으면 되지만, 우리는 그런 책뿐만이 아니라 어떤 책이라도 빠짐없이 모으는 일에 집중해야죠."
은행들의 은행이 한국은행이듯, 도서관들의 도서관이 바로 국립중앙도서관이다. 이런 특수성 때문인지 일반인들에게 국립중앙도서관은 왠지 멀게 느껴지는 곳이다. 임 관장은 이에 대해 "중앙도서관의 일은 단순히 큰 도서관이 뭔가를 한다는 차원이 아니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작·시행·점검하는 의미가 있다."며 "'길 위의 인문학'은 우리가 처음 시도했지만 지금은 이와 비슷한 프로그램을 전국 도서관 대부분이 하고 있다. 2년 전부터 개최한 웹툰 전시회도 새로운 변화, 도전에 대한 방향 제시 측면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 겉으로만 창의성 강조하는 토양에서 표절 등 저작권 문제 자라나
임 관장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저작권 일을 오래 했고, 관련 책도 여러 권 냈던 '저작권 전문가'다. 그런 그에게 다짜고짜 지난 해 문학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표절 문제를 물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율배반적인 사회가 문제"라고 잘라말했다. 겉으로는 창의성을 강조하지만 사실은 정답만을 요구하는 토양에서 표절 등의 문제가 불거진다는 것이다.
그는 "정답보다 중요한 것은 '나의 생각'인데 우리 사회는 여전히 하나의 답만을 강요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자라온 사람들에게 창의적인 성과를 원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컬한 거다. 심지어 법원 판결문도 저작권법을 어긴 사례가 수두룩하다. 판결문에 출처가 달린 것을 본 적이 있나? 이렇게 되면 나중에 책이 판결문을 인용하는 사태까지 벌어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2030 세대'(20∼30대)와 '4050 세대'(40∼50대)를 위한 책이 있다며 책장으로 다가갔다. 그가 꺼내든 책은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스티브 도나휴 지음, 김영사)과 <제2의 기계시대>(에릭 브린욜프슨 外, 청림출판)였다.
그는 "헬조선'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등의 신조어가 유행할 정도로 요즘 현실이 척박하지만, 목표만 바라보다 강박관념에 사로잡히는 젊은층에게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은 인생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추천 이유를 설명했다. 또 4050세대에게는 "40대 이상이 되면 자신이 '세상에 대해 많이 안다'고 착각하기 쉽다"며 "지금은 혁명적인 시기라는 것, 자신이 한 번쯤 더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책이 바로 <제2의 기계시대>"라고 얘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