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20대 총선을 말한다] ⑧여론조사-계수전쟁에 빠진 20대 총선, ‘민주주의냐, 사이비주의냐’

2016-0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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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권력’ 여론조사의 불편한 진실] Ⅰ.여론조사, 민주화 기점으로 본격화…하지만 다양한 오차 내재

87년 체제 이후 총선 결과. 20대 총선이 계수 전쟁에 빠졌다. 비단 20대 총선만이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한국 정치는 '숫자 권력'인 여론조사의 덫에 걸렸다. 매주 쏟아지는 여론조사 지지율 홍수 속에서 '대세론이니, 필패론이니'하는 정치적 수사만 넘쳐난다. 여야의 대선후보 선출 및 총선과 지방선거 공천 룰의 핵심도 '여론조사'다. 이쯤 되면 '여론조사 만능시대'다. [그래픽=임이슬 기자 ]


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이하 총선)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2016년 4·13 총선을 시작으로, 2017년 19대 대통령선거(대선), 2018년 제7대 전국동시지방선거(지방선거) 등이 잇따라 열린다. 특히 차기 총선은 절차적 민주주의의 산물인 ‘87년 체제’, 외환위기를 초래한 ‘97년 체제’ 이후 새로운 질서를 가늠하는 이른바 ‘정초(定礎) 선거’가 될 전망이다. 고(故)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서거로 촉발된 민주화 시대의 역사 재평가작업과 맞물려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를 뛰어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키는 국민이 쥐고 있다. <편집자 주>

"민주주의냐, 사이비주의냐." 20대 총선이 계수 전쟁에 빠졌다. 비단 20대 총선만이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한국 정치는 '숫자 권력'인 여론조사의 덫에 걸렸다. 매주 쏟아지는 여론조사 지지율 홍수 속에서 '대세론이니, 필패론이니'하는 정치적 수사만 넘쳐난다. 여야의 대선후보 선출 및 총선과 지방선거 공천 룰의 핵심도 '여론조사'다. 이쯤 되면 '여론조사 만능시대'다.
하지만 정치는 '숫자 밖에 있는 예술'이다. 민심은 계수에 의해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수많은 오류의 함정을 안고 있는 여론조사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는 우리 스스로 계수 정치를 통해 여론조사를 행정·입법·사법·언론에 이어 '권력의 5부'로 만든 셈이다.

◆여론조사, 87년 체제 이후 본격화…‘여론 만능시대’
 

13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 TV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담화가 방송되고 있다. [사진=아주경제 남궁진웅 기자 timeid@]


17일 (사)한국조사협회(KORA)에 따르면 리서치 회원사(2015년 기준)는 닐슨코리아·리서치앤리서치·한국갤럽·한국사회여론연구소 등 41개다. 영세 여론조사업체가 선거철 '떴다방' 식으로 운영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확한 수는 파악하기조차 힘들다. 시장규모는 6·4 지방선거가 있었던 2014년 7703억원(통계청·한국조사협회)에 달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난립하는 여론조사업체와 각 후보들의 보이지 않는 담합으로 여론조사 정보가 '가공→악용→민심 왜곡' 등의 부작용을 낳자, 공직선거법에 유례없는 선거일 전 6일부터 선거일 투표 마감시각까지 '여론조사 결과 공표 금지'(제108조)를 명시할 정도다.

여론조사 시대가 본격화한 것은 '87년 체제' 이후다. 절차적 민주주의인 대통령 직선제의 역사와 함께한 셈이다. 그 이전 한국 현대사는 '1인을 위한, 1인에 의한, 1인의 여론' 시대였다.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 박정희 정권의 영구집권 음모, 전두환 정권의 체육관 선거(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 의한 간접선거) 등은 한국 현대사의 아픈 역사다.

실제로 1987년 대선 당시 노태우 민주정의당 후보는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국갤럽'과 함께 여론 추이를 살폈다. 야권 후보였던 김영삼(YS) 통일민주당 후보와 김대중(DJ) 평화민주당 후보 측에서는 객관적인 여론조사를 외면했다. 결과는 노 후보 측의 승리였다. 이후 각 정당은 통계기법인 SPSS를 진화시키면서 여론조사 기법을 선거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정치는 숫자 밖 예술…“여론정치 맹신? 정당정치 부정”
 

국회 본청. 20대 총선 체제가 본격화되면서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대표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 신당 창당에 나선 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지지율이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tlsgud80@]


여론조사가 선거의 핵심 변수로 등장한 것은 2002년 노·정(노무현·정몽준) 단일화 때다. 당내 경선 승리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가 당내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후단협)에 의해 사퇴 압박을 당하자, 여론조사를 통한 야권후보 단일화를 전격 수용한다. 여론조사에서 드라마틱한 승리를 거둔 노 후보는 그해 대선에서 '이회창 대세론'을 꺾고 대권을 거머쥔다.

문제는 두 여론조사기관이 설문지 구성을 거의 동일하게 구성했지만, A사(노무현 46.8% vs 정몽준 42.2%)와 B사(노무현 38.8% vs 정몽준 37.0%)의 오차가 5~8%포인트 정도 났다는 점이다. 이는 표본집단의 대표성 결여인 표집오차(sampling error)와 문항설계와 실사 과정에서 나타나는 비표집오차(non-sampling error) 표본집단의 번호 미공개로 발생하는 포함오차(coverage error) 등이 맞물린 결과로 분석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KT에 등재된 표본집단에 의존했던 2010년 6·2 지방선거 당시 여론조사와 실제 개표 차이는 10%포인트 이상 났다. 각 여론조사에서 오세훈 당시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47.4%)가 한명숙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46.8%)를 10% 이상 앞선다는 보도가 많았지만, 실제 결과는 0.6%포인트에 불과했다. 이는 가입률이 20∼30%에 불과한 KT 등재번호로 조사하면서 은폐형 유권자인 '숨은 표'를 놓친 결과였다.

이후 각 여론조사기관은 무작위 임의전화걸기(Random Digit Dialing)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이는 KT 등재번호 대비 약 2~4배 확장한 조사기법이다. 다만 여전히 5060세대의 과대 대표, 2030세대의 과소 대표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최진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날 아주경제와 통화에서 "여론조사는 여론 파악의 참고자료이지, 절대적 판단자료는 아니다. 오차범위 내 미세한 등락에 일희일비할 경우 민심의 큰 흐름을 놓칠 수 있다"며 "여론조사를 맹신하는 것은 정당정치가 아니라 여론정치로, 상당히 위험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오전 도봉구 창동성당에서 열린 고 김근태선생 4주기 추모식에 참석한 문재인 더 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의원이 서로 떨어져 앉아 있다. [사진=아주경제 남궁진웅 기자 time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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