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금성사(현 LG전자)가 세탁기 개발을 막 시작하던 1960년대 초반 무렵이었다.
방콕 출장을 다녀온 허신구 락희화학(현 LG화학) 상무가 경영진들 앞에서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가루를 뿌리니까 거품이 많이 나고 때가 말끔하게 빠지더라. 합성세제라고 하는데, 우리도 당장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조용히 지켜보던 연암(蓮庵) 구인회 LG그룹 창업자가 어느 날 임원회의를 소집했다. 이 자리에서 연암은 허 상무를 지지한다며, 반대하는 임원들에게 “사람이 이렇게 우길 때는 나름대로 확신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허 상무 말대로 한번 해 보자”며 설득했다.
이를 계기로 락희화학은 합성세제 개발에 돌입한다. 경쟁사가 이미 합성세제 개발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들려왔지만, 연암은 동요하지 않고 1966년 경기도 안양에 첫 합성세제 공장을 건립, 경쟁사에 앞서 합성세제인 ‘하이타이’를 출시했다.
그런데 하이타이가 기대만큼 팔리지 않았다. 소비자들이 처음 접하는 합성세제를 낯설어 했기 때문이다. 봄에 출하해 겨울이 될 때까지도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한달만에 광고비만 3000만원을 투자했지만, 소용없었다. 더 이상 손해 보지 않으려면 생산을 중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허 상무는 광고비를 더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암은 이번에도 허 상무의 손을 들어주었다. 허 상무는 신문, 라디오, TV에까지 하이타이를 광고하고, 영업사원들과 함께 하이타이로 직접 빨래도 시연했다. 그러자 연말부터 하이타이가 폭발적으로 판매됐다. 이후 하이타이는 대한민국 가루 형태 합성세제 대표 상표로 자리잡았다.
연암은 하이타이의 성공 비결에 대해 제품이 아닌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한번 믿으면 모두 맡겨야 한다. 책임을 지면 사람은 최선을 다한다. 최선을 다한다는 열의만 있으면 능력을 키워줘야 한다”는 것이다.
연암이 전자사업에 진출을 결심한 배경도 전축 마니아였던 윤욱현 락희화학 실장의 일화에서 비롯됐다. 밤새 전축을 만지느라 제대로 수면을 취하지 못했다는 윤 실장의 얘기를 전해들은 연암은 “전축을 만들어 보라”고 지시했다. 여기서 시작된 전자사업에 대한 연구가 TV, 에어컨, 휴대폰 등 가전에서 첨단 전자제품까지 아우르는 LG전자의 시발점이 됐다.
LG그룹을 상징하는 ‘인간 존중’‘인화 단결’의 경영이념은 사람에 대한 강한 믿음을 실천한 연암의 철학이 반영된 것으로, LG그룹은 지금까지 이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 2005년 3월, 계열 분리한 LG와 GS, LS간의 ‘아름다운 이별’은 “한번 사귄 사람과 헤어지지 말고 헤어진다면 적이 되지 말라”는 말로 후손들을 훈육하고 ‘인화’를 경영이념과 가훈으로 삼았던 연암이 남긴 찬란한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