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나 울산인데, 여기 해체해서 고철로 쓰려고 정박시켜둔 배가 한 척 있어. 끌어다 가라앉혀 물살을 막아놓고 바윗덩어리를 쏟아 부으면 되지 않을까?”
1983년 말 충남 서산에 대규모 간척지를 만들고 있던 현대건설은 커다란 난관에 빠졌다. 전체 6400m에 이르는 방조제 중 270m만 메우면 되는데, 천수만의 거친 물살은 바윗덩어리를 쏟아 붓는 대로 쓸어가 버린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빠른 물살을 이용해 왜군의 배를 침몰시킨 명량해역이 초속 6.5m인데 반해 이곳은 무려 8.2m나 돼 바위를 쇠줄로 서너 개씩 묶어 던져봤지만 빠른 물결에 그대로 떠내려갔다. 전 사원이 몇달간 머리를 맞대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만 반복했다.
“이봐 해봤어? 해보지도 않고 고민하느라 시간과 돈 낭비하지 말고 한번 해봐!”
정 회장의 지시로 현대건설 작업진은 폭 45m, 높이 27m, 길이 32m의 대형 유조선을 방조제 앞으로 끌어와 탱크에 물을 집어넣었다. 3일만에 가라앉은 배는 빠른 물살을 가로 막았고, 방조제 건설은 성공리에 마무리 됐다. 고철선을 이용한 아이디어 덕분에 현대건설은 공사 기간을 무려 3년이나 단축시켰고, 공사비는 290여억 원을 줄였다. 새로 생긴 땅은 여의도의 33배에 이르러 대한민국의 지형을 바꾸었다.
‘정주영 공법’으로 불리는 이 사건의 경우, 세계적으로 '어떻게 아산이 이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었냐'며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농사에 해박했던 아산에게 전혀 새로운 게 아니었다. 물길에다가 지푸라기를 던져놓으면 그것들이 이물질처럼 쌓여 자연스레 물길을 막는 농사 기술을 거대한 간척지 물막이공사에 적용한 것이었다.
아산은 해보지도 않고 못하겠다는 사람들에게 “이봐, 해봤어?”라는 말을 즐겨했다고 한다. 현대자동차에서도,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도, 사우디 주베일에서도, 현대전자 설립에서도 ‘불가능하다’고 지레 겁부터 먹은 직원들을 질책하며 단호한 결단을 내렸다.
그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때 성공 가능성이 높은지 따지기에 앞서,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모티베이션(동기)이 선 상태에서 도전정신을 갖고 임했다.
아산이 가장 경계했던 것이 ‘고정관념’이다. 그는 “상식에 얽매인 고정관념의 테두리속에 갇힌 사람으로부터는 아무런 창의력도 기대할 수 없다. 제가 믿는 것은 ‘하고자 하는 굳센 의지’를 가졌을 때 발휘되는 인산의 무한한 잠재능력과 창의성, 그리고 뜻을 모았을 때 분출되는 우리 민족의 엄청난 에너지 뿐이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