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동공은 늘 흔들렸다. 조선인으로 일본군 장교까지 올라온 류에게 출신에 대한 뿌리 깊은 콤플렉스와 벙어리 아버지 밑에서 지긋지긋게 배를 곯았던 기억은 삐뚤어진 충성심의 자양분이다. 조국을 등졌다는 죄악감이 불현듯 그를 덮치지만, 손에 쥔 것도 언제 사라질지 몰라 불안한 남자는 마음을 더욱 굳게 먹을 뿐이다.
류 역을 연기한 배우 정석원은 영화 ‘대호’의 가장 큰 발견이다. 어떠한 수식어도 하찮게 만들어버리는 최민식을 비롯해 오스기 렌, 정만식, 김상호 등 이름만으로 묵직함이 느껴지는 배우들이 득실거리는 작품에서 정석원이 이질감 없이 어우러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거칠게 날 선 류를 섬세하게 연기, 예정된 논란을 불식시키면서 ‘액션 스쿨 출신’의 ‘백지영 남편’이 아닌, 온전한 배우 정석원으로 관객 앞에 섰다.
개봉 직후 만난 정석원은 출신에 대한 열등감과 외면하고 싶은 죄책감으로 흔들리는 눈을 하고서도 자신이 쫓는 목적에서 기필코 눈을 떼지 않는 류와 어쩐지 닮아 보였다. 그는 “연극영화과 출신이 아니”라는 피해의식과 “다른 (액션스쿨) 동료를 제치고 배우의 기회를 잡았다”는 송구스러움을 무겁게 느끼면서도 “하나하나 담아두고 쌓아가면서, 얼마냐 빨리 가느냐 보다는 어떤 방향으로 가느냐를 고민하는 배우가 되겠다”는 목표를 정면으로 목도했다.
Q. ‘대호’는 정석원에게 첫 대작이다.
A. ‘누를 끼치면 안 되겠다, 실수하지 말자’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참 아마추어적인 생각이다. 배우가 잘해야 하는 건 당연한 건데 말이다. 그럼에도 그때의 나는 그랬다. ‘큰 작품의 현장을 몸소 느껴보자, 잘 배워보자’는 기대감과 최민식 형님과 함께 연기한다는 떨림, 긴장감이 공존했다.
Q. 직접 만난 최민식은 어땠나.
A. 내 분량이 없는 날, 최민식 형님을 뵙기 위해 촬영장에 갔다. 촬영 기간 내내 선배(최민식) 곁에 있는 것이 이번 작품의 목표였다. 그의 모든 것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친해졌고, 나와의 첫 촬영부터 지도편달 해주셨다. 그것은 내가 생각한 류와 선배가 생각하는 ‘대호’의 교집합을 찾는 과정이었다. 내가 의지하고 있는 것을 느끼셨는지 촬영이 없는 날도 현장에 나와 내 연기를 봐주시고는 하셨다. 설산에서 밥도 못 먹고 선배와 리허설을 하고, 의견을 나눴던 ‘대호’ 현장은 나에겐 고생이 아니라 꿈같은 시간이었다. 많은 부분이 편집됐지만 말이다.
Q. 편집됐다고? 주로 어떤 장면들이냐.
A. 류가 친일을 마음먹을 수밖에 없었던 그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다. 벙어리 장씨의 늦둥이 아들로 자라 포수대 막내로 들어가 심부름이나 하면서 컸고,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도망치듯 일본군이 된 이야기다. 류에게 배고팠던 과거는 왕따 당했던 학창시절 같지 않을까? 부정하고 싶지만, 나의 과거이고, 숨기고 싶지만, 누군가 알고 있는 거니까 말이다. 이러한 류의 전사를 고려하면서 연기했는데, 상영시간 때문에 편집됐다. 아쉽지는 않다. 작품 전체를 위한 선택이었고, 류를 만들었던 치열한 고민과 경험이 내 안에 축적됐으니까.
Q. 그러한 과거에도 불구하고, 류는 자신이 가담해 만든 결과에 흔들린다.
A. 자신이 저지른 일의 참혹한 결과를 눈으로 확인했을 때, 그럼에도 결코 굽히지 않는 천만덕(최민식)을 마주할 때 류는 흔들릴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지금의 류를 있게 만든 과거, 현재의 류, 또 그로 인해 류가 받게 될 고통까지…류의 일대기 전체를 보려고 했다. 어렵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계산 없이 상황 자체를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Q. 존경하는 멘토와의 작업, 혹독한 고민…이번 작품의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A. 우리 영화를 항일영화라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업(業)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찍으면서 내 업에 대해, 내 업이 된 연기에 대해 고민했다. 영화 ‘위플래쉬’의 “제일 쓸모없고 가치 없는 말이 ‘그만하면 잘했어’이다”라는 대사가 크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배우는 끊임없이, 고통스럽게 스스로를 채찍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Q. 배우 정석원이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A. 나, 인간 정석원을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다. 진짜 내 모습을 본다는 것이 두렵지만 내 한계를 인정하고, 약한 나를 받아들여야만 내 작은 그릇을 깨고 크고 넓은 그릇을 새로 만들 수 있으니까. 배우는 이야기꾼이라고 하더라. 그릇이 깊고 넓어야 이야기를 하나하나 담아두고 쌓아두지 않겠냐. 그릇을 깨고 다시 만들고, 또 부수고 새로 빚는 과정을 끊임없이 계속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