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정의 프리즘]아이유 제제 논란, 책판매는 늘었다는데 표현의 자유는 어디로?

2015-11-10 11:35
  • 글자크기 설정

[사진 = 로엔트리 제공 ]


아주경제 장윤정 기자 = 가수 아이유의 새 음반 챗셔(CHAT-SHIRE)의 수록곡 '제제'에 대한 논란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지난달 23일 발표한 아이유의 신보 수록곡 '제제'는 소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의 주인공 제제를 재해석한 곡이다. 이 곡의 노랫말과 음반의 표지 이미지를 두고 출판사의 한 직원이 다섯 살 소년인 제제를 성적인 이미지로 해석했다며 문제를 제기하는 글을 올린 이후 논란이 확산된 것. 많은 이들의 비판이 이어졌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예술작품 표현의 진위 여부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쟁이 격렬하게 진행되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 선 아이유는 지난 6일 소셜미디어에 공식 사과글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 네티즌들이 음원 폐기 서명운동까지 벌이는 등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평론가 허지웅은 “모든 문학은 해석하는 자의 자유와 역량 위에서 시시각각 새롭게 발견되는 것이다. 제제는 출판사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으며 진중권은 “아이유 ‘제제’. 문학작품에 대한 해석을 출판사가 독점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이 시대에 웬만큼 무식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망발”이라고 ‘표현의 자유’를 강조했다.

이에 반해 영화 '소원'의 원작 소설을 쓴 소재원 작가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소설에 나오는 다섯 살 어린아이에 대한 해석"이라며 "(아이유 '제제'가) 학대를 받고 자란 아이를 성적 대상으로 묘사했다는 것에서 문제는 시작된다. 망사스타킹을 신기고 핀업걸 자세로 표현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물론 아이유가 사회에서 금기시하는 소아성애에 대한 부분을 건드렸다는 것이 문제를 커지게 한 발단이다. 약물, 음주운전, 도박 모두 시간이 지나면 대중의 기억에서 잊혀지고 슬그머니 복귀할 수 있지만 어린아이를 성적인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터부시하는 영역이다. 그러나 과연 아이유가 어린 아이를 성적인 대상으로 삼고 곡을 썼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아이유가 이번 앨범을 발표하던 날 스물세살 동갑내기들을 초대해 가진 토크쇼에서 직접 그녀가 제제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들었다. 아이유는 수록곡중 제제에 대한 애정을 강하게 드러냈다. “나는 제제가 최소한 음원차트 2위는 할 줄 알았다. 제제는 스물셋과 타이틀곡으로 경합을 벌였던 곡이다”고 말했다. 이어 “제제는 모순점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다. 소설속에서 사람들이 제제에게 빛나는 마음을 가진 아이야, 이러다가 너는 정말 구제불능이다라는 말을 한다. 제제는 어떤 부분에서는 착한데 어떤 부분에서는 잔인하다. 제제가 어린아이니까 덮어지지만 제제라는 캐릭터만 봤을 때는 모순점이 많은 캐릭터다. 제제가 가지고 있는 성질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자만 참 섹시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직접 그 자리에서 그대로 받아적은 아이유의 말을 날것으로 옮긴다. 

아이유는 “아이의 착하고 순수한 모습과 잔인한 모습 양쪽에서 휘둘리지만 끝까지 소설을 읽고 마지막장을 덮을 때 모두 제제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느냐. 이번 앨범의 수록곡 제제는 내가 밍기뉴가 되어서 제제에게 하는 말이다. 생각을 좀 많이 하고 썼다. 해석의 여지를 많이 열어두고 썼다”고 밝혔다.

아이유의 발언을 직접 들었을 때 5살 제제가 아니라 제제가 갖고 있는 성질에 주목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제제의 가사는 은유적이다. 아니 아이유는 이번 앨범 전체에 소설속 캐릭터를 모티브로 하고 있으며 모든 내용에 이중적인 의미와 해석의 여지를 많이 남겨두었다.

작품에 대한 해석은 읽는 사람의 몫이다. 작품을 세상에 내놓은 이상, 그 작품이 어떻게 읽히고 해석되는가는 독자의 자유의지에 따른다. 어떤 문학작품이나 음악이든 평론가들이 해석할 수는 있지만 그 해석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볼 수 없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면 부모에 종속된 것이 아니라 완전히 독립된 또 하나의 인격을 가진 독립된 새로운 사람이듯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나면 홀로 선다.

아이유의 노래와 앨범 자켓에서 소아성애적인 코드를 연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것 역시 개인의 해석이며 표현의 자유다. 하지만 이것을 일반화시켜서 모든 대중이 아이유의 제제에서 소아성애적인 코드가 읽혀지니 이를 금지해야한다고 나설 필요는 없다. 느껴지는 대로 느끼고 내가 느끼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는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아이유 덕에 동녘출판사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판매가 부쩍 늘었다고 한다. 책은 많이 팔리는데 아이유는 비난을 받고 있다. 아이유 덕에 책 판매가 늘었으니 출판사는 고맙다고 이야기를 할지... 여전히 출판사는 아이유를 비난하는 자세를 거둬들이지 않고 있다. 작품에 대한 해설을, 곡에 대한 해석을 듣는 이에게 맡겨주는 아량을 베풀어주는 것은 어떨까?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