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주도 구조조정 강행보다 재계 자율 ‘제2의 승지원 결의’가 현실적

2015-11-09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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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채명석·양성모 기자 = 현재 기업 구조조정은 대기업, 중소기업 가릴 것 없이 전 방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즉 그룹간 자체 빅딜, 그룹내 사업조정에 이어 기업의 인수·합병(M&A), 채권단 보유기업 매각, 사모펀드(PEF)가 최대 주주인 기업의 지분매각 등 다양한 형태로 진행된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합병설로 불거진 정부의 시장개입은 진위 여부를 떠나 이런 기업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기 위한 의도가 다분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단 최근 정부의 개입방식이 △1972년 8월3일 발표된 ‘경영안정과 성장에 관한 긴급명령(8.3조치) △1981년부터 1989년까지 이뤄진 산업합리화계획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한 구조조정시책중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는지가 명확치 않다는 점에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매번 정책때마다 산업계가 받은 고통은 컸다. 하지만 고통만큼의 실익은 없었다는 게 산업계 관계자의 공통된 견해다.

정부도 고민하는 흔적이 역력하다. 제조업·서비스업을 망라하고 당장 대부분의 국내 산업이 공급과잉 상태다. 더 큰 문제는 중국과 일본 등 주변국의 산업도 한국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조선, 철강, 해운, 석유화학 등 대표적 구조조정 대상 산업의 경영난은 이들 국가에서도 벌어져 국내에서만 구조조정을 실시할 경우 오히려 경쟁국 업체에 시장을 빼앗길 가능성도 크다.

특히 1970년대 및 1980년대 산업 구조개편에서는 한국이 후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성장하는 상황이어서 정부 개입이 해외에서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때에는 강력한 통상압박으로 한국의 산업 구조개편을 요구했다.

◆‘하이닉스의 교훈’ 잊지말아야
당시 정부 주도의 구조개편은 지금까지 후유증을 남기고 있다. LG반도체를 인수한 현대반도체, 하이닉스반도체(현 SK하이닉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정부의 강압으로 합병했지만, IT거품 붕괴로 7조원이 넘는 대규모 부실을 떠앉아 생존에 위협이 되자 정부는 하이닉스를 해외 기업에게 매각하기로 했다.

매각을 두고 여론은 찬반이 엇갈린 끝에 채권단은 하이닉스 매각중단을 선언했다. 그러자 인수 참여 업체들은 채권단이 정부를 앞세워 하이닉스에 지원한 신디케이트론(다수 은행이 같은 조건으로 하는 중장기 대출로 만기 때 연장 가능)의 경우, 한국 정부가 특정 기업에게자금을 지원한 ‘산업 보조금’에 해당해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위반된다며 제소했다.

이 건은 무려 10년 가까이 하이닉스와 우리 정부의 발목을 잡았다. 결국 WTO는 한국 정부에 손을 들어줬고, 하이닉스는 한국 기업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이닉스는 정부의 대책없는 개입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나마 하이닉스는 성공작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정부가 강제로 통폐합한 자동차산업은 GM(대우자동차)과 르노(삼성자동차)의 인수 후, 본사의 정책에 맞추느라 기술력을 키우지 못해 외국산 자동차의 대거 유입을 막아내지 못하고 있다.

1개 기업으로 통폐합 전동차와 원자력발전 산업은 독과점의 비효율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으며, 종자산업은 외국계 글로벌 기업에 100% 의존하게 됐다.

◆‘제2의 승지원 결의’ 유도해야
최근 정부가 기업 구조조정에 직접 관여하기로 했다. 산업계에서는 16년전 폐단이 다시 벌어지는 게 아닌가 우려하고 있다. 정부와 채권단이 하이닉스의 교훈을 잊은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터져 나온다.

정부가 이미 밝힌만큼 기업을 살리기 위한 최소한의 개입에 그쳐야 하며, 기업이 자체적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1994년 ‘승지원 결의’에 대한 경험을 살려볼만 하다. 당시 제2이동통신사업자 선정 문제를 놓고 업체간 과열경쟁이 벌어지자 정부는 전국경제인연합회를 통해 재계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라고 떠넘겼다.

첫 회의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개인 영빈관인 승지원에서 개최돼 이를 ‘승지원 결의’로 칭한다. 그해 2월말로 예정된 시한을 두고 포항제철(현 포스코)과 코오롱이 첨예하게 대립했지만 결국 타협을 이뤄냈다. 즉 ‘제2의 승지원 결의’를 통해 재계가 머리를 맞대 풀어내도록 하자는 것이다.

지난해 한화그룹에 화학·방산사업을 매각한 데 이어 올해 롯데그룹과 남은 화학 계열사를 판 삼성그룹의 경우 ‘잘 키운 딸들을 양반댁 규수에게 시집보낸’ 좋은 구조조정 사례로 손꼽힌다.

또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 등 계열사를 되찾는데 SK, LG, 롯데, CJ, 효성, 코오롱그룹 등이 백기사로 참여한 것도 향후 대기업의 자발적 구조조정은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재계 관계자는 “어차피 각 그룹의 주요 계열사 매각 및 인수는 총수의 결정사항이다. 따라서 아예 재계 총수들이 모여 서로의 이해관계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제2의 승지원 결의’를 유도하는 것도 기업 구조조정에 대해 정부와 채권단이 부담을 덜어내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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