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서윤 기자 =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과학 분야 장·차관들이 지난주 한국을 찾았다. ‘2015 세계과학정상회의’라는 행사를 통해 11년 만에 우리나라에서 열린 제12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과학기술장관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세계과학정상회의’는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10개국의 참여를 유도하고 OECD 과기장관회의를 다양한 국제 행사로 확대했다는 의미에서 우리 정부가 지은 명칭이다. 지난 19일 시작한 이 행사는 닷새간의 일정을 마치고 23일 막을 내렸다.
이상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연구위원은 “과학기술 분야 장관들이 한꺼번에 모이는 기회가 많지 않다”며 “OECD와 연계해서 과기장관 회의를 우리나라에서 개최했다는 것만으로 과학기술계 입장에서는 뿌듯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OECD 과기장관회의 화두는 디지털과 혁신이었다. 참가자들은 디지털 기술의 급속한 발전이 개방형 과학(오픈 사이언스), 개방형 혁신, 과학의 대중화에 기여했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또 과학·기술·혁신은 전 지구적 도전과제 해결을 위한 필수요소로써 새로운 투자 기회를 제공하고 고용생산성과 경제 성장을 증대시키며 인류의 삶의 질을 향상할 것이라는 데에도 합의했다.
이번 회의의 가장 큰 성과는 ‘대전선언문’이라고 미래부는 설명했다. ‘글로벌 디지털시대의 과학·기술·혁신을 위한 대전선언문’에는 앞으로 10년간 세계 과학기술 정책 방향이 담겼다. 최양희 장관은 “대전선언문 채택을 통해 향후 세계과학기술 발전의 이정표가 세워졌다고 평가한다”며 “세계 각국과 더 쉽게 교류하고 협력하는 ‘플랫폼’을 갖추게 됐다는 점에서 과학외교의 한 획을 그었다”고 강조했다.
‘대전선언문’이 생뚱맞은 분야라든가 새로운 내용을 얘기한 것은 아니다. 이상현 연구위원은 “감염병, 기후변화 등 전 세계적으로 함께 고민하고 풀어나가야 할 문제들에 대해 이미 진행되고 있는 연구의 정책 방향을 제시한 것”이라며 “과학기술개발 정책의 궁극적인 지향점과 목표를 설정할 때 근거 자료로 많이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과학기술계 현장에서는 과학기술의 방향을 제시한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겠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과학기술이라는 것이 ‘이러저러한 것을 연구해야 한다’거나 ‘이쪽으로 가야 한다’고 해서 연구자들이 결과물을 내놓거나 그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한 과학기술 국가출연연구소에서 단장을 맡고 있는 대학교수는 “‘세계과학정상회의’라는 것도 소위 ‘정상’이라고 하면 한 나라의 수장을 의미하지만 이번 행사는 장·차관들의 회의였다”며 “게다가 ‘과학’이라는 것은 이렇게 장관들을 부른다고 해서 발전되는 게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말 그대로 과학자의 회의는 아니었던 만큼 실제 과학기술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체감하기에는 부족했다는 것이다.
권영근 연세대 생화학과 교수는 “세계적인 행사를 우리가 개최했다는 것은 큰 틀에서 의미가 있다”면서도 “정부가 주관한 행사이다 보니 관료들은 잘 알고 있지만 연구 현장에서는 관련 내용이 공유가 잘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의견을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끝난 후에도 연구자들에게 관련 내용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상현 연구위원은 이에 대해 “‘대전선언문’ 등 회의 결과물을 과학기술계 현장에 잘 전달하고 현장에서도 체감할 수 있도록 홍보가 많이 필요할 것”이라며 “정부가 앞으로 선언문의 내용을 실질적으로 실천할 과학기술 전문가들과 소통하고 홍보하는 데 매진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