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소련 전문가여서 80년대에도 자주 구소련을 방문하였는데 1989년 겪은 에피소드를 얘기해 주었다.
미국대학 총장이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대학 식당에서 줄을 서 한 50분 정도 기다렸는데, 갑자기 주방 아줌마가 큰 소리로 “양배추가 떨어져 더 이상 스프를 못 만드니 줄 선 사람들은 그만 돌아가라”라고 말했다. 이때 대부분 사람들은 포기하고 돌아서는데 한 사람이 자조적으로 소리를 쳤다.
“에따 러시야(이게 러시아다)!”
그 때 미국 총장의 머리를 스친 것이 있었다.
<에따 러시야! 러시아는 예전에도 가난했고, 지금도 가난하고, 앞으로 오랫동안 가난할 것이다. 40년간 냉전체제에서 사회주의 국가의 맹주였던 소련의 소비에트(Soviet) 개념은 허구였다. 러시아는 단 한 번도 국민이 잘 산 적이 없었다. 국민이 부유하지 않고 강대국일 수는 없다.>
1985년 소련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등장한 이후 6년 뒤인 1991년 12월 26일 소련의 해체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010년 9월 공개석상에 처음 등장한 김정은은 고르바초프 서기장과 많은 부분에서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이전의 소련 지도자들과 달리 개혁·개방(페레스트로이카)을 최초로 추진하였다.
1981년 집권한 美 도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정치, 외교, 경제, 군사 등 전방위적으로 소련을 압박하였고, 소련은 더 이상 미국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소련 경제는 파탄 났고, 40년간 지탱해왔던 공산주의 계획경제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외교적으로도 소련은 점점 고립되어 갔다.
서구유럽의 방패막이가 되었던 동독을 포함한 동구권 국가들이 소련을 버리고 서구의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선택하였다.
소련국민들은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 정책을 통해 시장경제를 접하였고, 돈과 사적재산을 소유하기 시작하였다.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소련 역사상 최초로 영부인 라이사 여사를 동반하여 외국을 방문하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자신의 아버지·할아버지와 달리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스위스에서 유학하였다. 유학파 김 위원장은 북한의 개혁·개방을 추구하고 있다. 예컨대 마식령스키장을 개발하여 국내외 관광객을 유치하는데 열을 올린 적도 있다. 하지만 독자적인 북한의 힘으로 역부족이란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은 한반도 주변 강대국인 미국, 중국, 러시아와의 성공적인 정상외교로 북한을 확실히 고립시켜 나가고 있다. 북한주민들은 이미 230만대의 휴대폰을 소지하고 있고, 무너진 사회주의 배급체제를 대체하는 시장이 이미 북한전반에 퍼져있다.
평양을 중심으로 신흥부자들이 돈과 재산을 축적하기 시작하였고 사치스런 생활을 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공식석상에 북한 최초로 부인 리설주를 동행시키고 있다. 또한 그는 미국프로농구(NBA) 스타 출신인 데니스 로드먼과 어울리며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다.
예로부터 왕조와 제국의 붕괴에는 공통적인 몇 가지 조건들이 교집합처럼 얽혀 있다.
어린 왕자의 등극과 그를 둘러싼 섭정들의 세력 다툼, 이어지는 숙청과 수렴청정 역시 빠질 수 없다. 혼란한 정치 상황과 과도한 세금에 백성들의 경제난이 심화되고, 그 틈을 타 외세의 간섭이 시작된다.
붕괴를 눈앞에 둔 지도층의 통제 강화로 사태는 더 악화된다. 이러한 ‘몰락의 징조’ 교집합에 고르바초프 서기장과 김정은 위원장이 상당 부분 겹쳐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선대의 뛰어난 ‘벼랑 끝 전술’을 박근혜 대통령을 상대로 선보였다.
북한의 트레이드마크인 전쟁 공포를 무기로 ‘공도동망(共倒同亡)’ 협박을 하였던 것이다. 선대에서는 ‘공도동망(共倒同亡)’ 협박은 쌀과 비료로 가져다주는 기적을 만들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의 소비예트(Soviet) 개념도 허구란 것을 간파하였다. 이에 박 대통령이 전쟁도 불사한다는 역 ‘벼랑 끝 전술’을 선보이자 나이 어린 김정은 위원장은 바로 꼬리를 내렸다. 그리하여 자칭 ‘최고존엄’ 김정은 위원장은 치욕적인 8·25 '남북 고위급 회담' 공동협의문 발표했다.
로버트 치알디니의 <설득의 심리학>에 언급된 데이비스(Davies)의 이론에 따르면, 혁명은 경제적으로 생활 전반이 호전되고 있다가 갑작스럽게 악화되는 시점에서 가장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따라서 혁명의 주체 세력은 전통적으로 억압받아온 사람들이 아니라, 호전되는 경제적, 사회적 상황에 의해서 보다 나은 삶의 맛을 조금이라도 경험해 본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데이비스의 '소유-억압' 이론은 미국 남북 전쟁, 1960년대의 흑인 폭동, 프랑스 혁명, 러시아 혁명까지 총망라하고 있다. 이러한 혁명들은 삶의 질이 점차 향상되다가 갑자기 악화된 시기에 발생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1991년 소련체제에서 시도된 ‘8월 쿠데타’는 러시아 국민들의 격한 저항으로 단 60시간 만에 실패로 끝났다.
이미 자본주의의 단맛에 젖어 다시 공산주의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러시아 국민들의 저항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북한도 주민 경제활동을 통제하거나 사적 재산을 강탈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북한주민의 격렬한 저항을 받고 좌절될 것이다.
이제 통일은 시간문제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