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에 甲' 공공기관 예산 확보 '별 따기'

2015-08-03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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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국가예산 탓…물밑 경쟁 치열

쪽지 예산·복잡한 절차도 걸림돌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 예산실 주변은 예산을 배정받기 위해 찾은 관계자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사진=배군득 기자]


아주경제 배군득 기자 = 경제부처 산하 공공기관 대외협력팀에 근무하는 A본부장은 본격적인 예산 시즌에 돌입하면서 밤잠을 설치고 있다. 7월에만 정부세종청사를 매주 3회 이상 방문하는 등 내년 연구개발(R&D) 예산 확보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A본부장은 공공기관 예산 배정이 갈수록 힘들어지는데 회의감을 느낀다. 이전에도 예산 받기는 힘들었지만 지금처럼 어렵지는 않았다.
A본부장은 “예전에는 주무부처에 예산을 신청하면 타당성 등을 심사해 부처 예산으로 반영이 됐는데 요즘엔 주무부처도 기재부와 국회 눈치를 본다”며 “이렇다보니 공공기관은 기재부와 국회까지 직접 로비를 해야 한다. 예산 받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이유”라고 토로했다.

공공기관들이 국가 예산을 배정받기 위한 전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공공기관의 평가가 엄격해지고 부족한 국가 예산으로 사업 수행에 차질을 빚으면서 어떻게든 예산을 확보하려는 물밑 경쟁이 치열해진 것이다.

특히 본격적인 예산시즌에 돌입하면서 공공기관장들은 중앙부처를 분주히 드나들고 있다. 매년 6월부터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 예산실은 중앙부처 뿐만 아니라 산하 공공기관 관계자들까지 북새통을 이룬다.

기재부 예산실 사무관 자리에는 관계자들이 들고 온 커피가 수북하다. 기재부 관계자는 점심시간 이후 예산실 담당자 자리에 어림잡아 10잔 이상의 커피와 음료수가 심심치 않게 쌓인다고 귀띔한다.

공공기관장들은 기재부 예산실 담당 사무관을 만나기 위해 3시간 이상을 기다리는게 일반적이다. 기관장들이 3시간을 기다려 사무관과 면담하는 시간은 고작 4~5분이다.

이같은 진풍경은 최근 예산 시스템의 변수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주무부처에서 예산이 배정되더라도 국회까지 가는 과정에서 삭감이 불가피하다. 아예 사업이 통째로 사라지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렇다보니 공공기관들은 예산을 배정하는 실무자를 찾아 협의하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주무부처를 무장적 믿고 있다가는 다음해 공공기관 평가에서 낙제점을 받을 수 있다는 위기도 한 몫 하는 셈이다.

올해는 더 힘들다. 내년 총선으로 인해 지역을 챙기려는 국회의원들의 쪽지 예산이 기승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쪽지 예산이 배정되면 공공기관 예산이 줄어든다. R&D 기관들이 바짝 긴장하는 이유다. 가장 삭감하기 쉬운 분야가 R&D다.

기재부에서 예산이 통과되더라도 안심하긴 이르다. 국정감사에서부터 부처 예산심사 소위, 예결위, 예결특위를 거쳐야 한다. 국회에 굵직한 이슈라도 발생하면 그동안 공들였던 사업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공공기관들은 대한민국에 ‘예산 갑질’하는 절차가 많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정확한 심사보다는 인맥이나 로비를 잘해야 예산이 수월하게 배정되는 시스템이라고 꼬집는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예산과 재정운용이 정치·사회에서 중요한 의제로 부각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단순히 국가 예산이라는 방향을 넘어 구체적 예산사업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간경제연구소 한 관계자는 “예산운용 기조를 성장에 둘 것인가 아니면 복지에 둘 것인가라는 근본적 대립을 넘어 이제는 4대강 사업, 무상급식, 무상교육, 서민경제 등 구체적 예산사업에 대한 갈등이 급부상하고 있다”며 “제헌헌법의 전통을 갖는 예산제도가 과연 앞으로도 적절히 작동할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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