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지난 1일은 두산그룹의 모태가 된 박승직상점이 설립된 지 119주년 되는 날이었다.
하루 전 박용곤 (주)두산 명예회장이 지주회사 격인 두산의 집행 임원에서 사임했다고 발표했다. 사실상 공식적인 직함에서 물러나는 것이다. 1963년 OB맥주의 전신인 동양맥주에 입사하며 두산그룹 생활을 시작한 지 52년 만이다. 올해로 83세(1932년생). 고령에 따른 건강을 고려한 조치라는 게 그룹측의 설명이다.
그가 이뤄낸 가장 큰 성과는 1인 총수 체제로 성장했던 두산그룹을 형제경영체제로 전환시켰다는 것이다. 페놀수지 사건으로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고, 외부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동생(박용오 회장)과의 갈등 때에는 그를 쫓아내며 오너 일가 동반퇴진을 지시한 것은 바로 그룹 지배구조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의지 때문이었다.
그룹의 최고 어른이 된 그는 경영에 대한 욕심을 구하지 않고, 용오·용성·용현·용만 등 동생들에게 양보했다. 큰형의 용단을 통해 두산그룹은 현재 가장 든든한 지배구조를 갖추게 됐으며 가장 원만하게 4세 경영후계 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1990~2000년대를 거쳐 두산그룹은 경공업 위주에서 인프라스트럭처비즈니스(ISB)로 사업구조의 대전환을 이뤄냈다. ISB는 하드웨어(HW)와 소프트웨어(SW)가 융합해 고도화 된 엔지니어링 및 금융 노하우를 필요로 하는 거대사업이다.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사업인 만큼 경영 방법도 그만큼 고도화 돼야 한다.
단기간에 이들 지식을 터득하기란 무리다. 이에 두산그룹은 이사회 중심의 경영체제를 구축했다. 이사회에는 오너 3세와 4세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중요한 경영상의 논의는 박 명예회장과 형제, 조카들이 집에서 모여 토론을 진행하고, 여기서 나온 의견들을 이사회에서 내놓으면서 전문경영인들과 대화를 나눈다고 한다.
오너 집단경영체제라는 의사결정의 신속성과 특징과 이사회라는 투명한 의사결정기구를 적절히 융합한 구조가 두산그룹의 특징이다.
두산그룹 회장을 역임한 박용현 두산연강재단 이사장은 “두산에는 그룹 회장직이 없다. 그룹 대표만 있을 뿐이다. 이사회에서 그룹 경영 결정을 내린다고 보면 된다. 투명해졌다고 보면 된다. 오너 한 명이 모든 걸 결정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본다. 주주들도 그걸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의사 결정은 빠르다. 빠를 때는 일주일 안에 결정을 내린다. 의사결정 과정이 오래 걸리지, 실제 결정을 내리는 것은 빠르다”며 두산의 의사결정구조의 우수성을 전했다.
두산그룹은 4세로 경영권 후계가 이뤄진 후에도 이러한 구조가 존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재계 관계자는 “돈독한 우애를 바탕으로 한 허심탄회한 대화를 할 수 있는 분위기이다 보니 한명이 모든 것을 갖고자 하기보다 잘하는 부분을 믿고 맡기고 함께 가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며 “오너 경영체제가 보여줄 수 있는 장점을 부각시키는 두산만의 경영체제가 더 확고히 마련될 것”이라고 전했다.
㎝